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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Nov 25. 2024

조미료 잔혹사

향신료 전쟁

최광용 지음 / 316쪽 / 20,000원 / 한겨레출판



『향신료 전쟁』은 육두구와 정향을 놓고 유럽의 열강들이 싸웠던 기록이고 이 고래 싸움에 동남아 원주민이 대량 학살된 비극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런 대참극을 불러온 육두구와 정향은 무엇일까? 향신료라고 쓰면 뭔가 신비로운 것 같지만, 사실 향신료라는 것은 조미료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겨우 조미료 때문에 이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서양 요리는 고기가 주된 재료인데 육두구는 고기의 잡내를 확 사라지게 해주는 마법 같은 조미료다. 중국 요리인 동파육에도 사용한다. 정향은 입냄새도 잡아준다. 입안을 화하게 만들어주는 은단의 주재료가 바로 정향이다. 정향은 카레의 주재료이고 역시 고기 잡내를 잡아주는 데도 사용한다. 즉 서양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고기 맛을 살려주는 아주 훌륭한 조미료였다. 

육두구 열매와 씨

육두구, 정향과 같이 서양 요리에 필수적인 조미료에 후추도 있다. 그런데 이 조미료들은 유럽에서는 아무 데서도 구할 수가 없었다. 이들은 모두 동남아의 식물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유럽인들은 그나마 후추는 인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육두구와 정향은 어디서 나오는지를 몰랐다. 서양 요리에 흔히 쓰이는 시나몬도 스리랑카에서 나오는 것으로 역시 서양에는 없는 물건이었다.


이들 향신료는 중동의 이슬람 국가를 거쳐 베네치아 상인들이 유럽에 유통했다. 독점 무역이었으므로 그 가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높았고 베네치아 상인들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공급량을 조절했다. 이 때문에 유럽 국가들은 아시아와 직거래하기를 희망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지원하에 대서양을 횡단했고, 그 결과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을 약탈해 큰 부를 이루었지만 원래 목적이었던 향신료는 구하지 못했다. 

정향. 정향나무의 꽃봉오리를 말린 것으 작은 못을 닮았다.

스페인의 이웃 나라인 포르투갈은 아프리카를 뺑 돌아서 인도에 가는 데 성공했고 후추를 구입한 것을 넘어서서 시나몬, 육두구, 정향 산지도 개척했다. 이때부터 포르투갈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포르투갈의 황금 창고였던 육두구 생산지인 반다 제도를 신흥 강국 네덜란드가 탈취했다. 네덜란드는 반다 제도를 놓고 영국과 대립했는데, 이때 반다 제도의 원주민을 거의 다 학살했다. 그런 뒤에 다른 지역에서 데려온 사람들을 부려서 육두구를 재배했다. 말을 듣지 않는 섬 주민을 다 죽이고 그 섬의 육두구를 멸종시키기도 했다. 철저히 육두구를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고자 했다. 원주민만 죽인 것이 아니라 경쟁 관계에 있던 영국인들 역시 붙잡아다 처형시켰다. 이 사건은 결국 두 차례에 걸친 영국-네덜란드 전쟁으로 이어졌다. 

동남아의 향신료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서 영국과 네덜란드는 모두 동인도회사를 세웠다. 우리나라에 표류한 것으로 유명한 하멜도 바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직원이었다.


조미료는 사람의 입맛을 높여주는 소중한 식재료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그렇게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이었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에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조미료를 독점하기 위한 인간의 욕심은 무시무시하기만 하다.


『향신료 전쟁』은 이런 이야기를 향신료 산지에서 오랜 시간 근무했던 저자의 입담으로 과거와 현재, 서양과 동양을 오가며 풀어냈다. 직접 현장에서 겪은 일들을 향신료처럼 곁들여 이야기의 향취를 드높였다. 책 말미에 실린 향신료 정보도 알뜰하고 유익하다.


이문영_역사작가, 『정생, 꿈 밖은 위험해!』 저자


- 이 콘텐츠는 <동네책방동네도서관> 2024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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