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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Dec 31. 2023

엄마의 방


엄마 방에는 시간이 멈춘 채로 있다.


솜털이 보송보송한 앳된 신랑, 신부 결혼사진이 안방에 그대로 걸려있다.

아버지 열여섯  어머니 열일곱 살 때이다.

부모님이 생전에 살아계셨던 대문만 보아도 마음이 울컥다.

대문 한쪽 편지함에 밀린 우편물이 혓바닥 내밀 듯 있었다.

대문 밀치면 삐그덕 소리와 함께 엄마가 잘 가꾸어 놓은 푸른 잔디가 마당에서 누운 채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 니그들 온 줄 알았으면 밥을 해놀건디, 미리 전화흐제 그랬냐"

몇 칠전부터 엄마 보러 가요 몇 번이나 일렀건만 언제부터인가

금방 잊으시고 처음 듣는 것처럼 하셨다.     

작은 텃밭에서 고들빼기도  캐서 김치도 담가놓고

"맛난가 모르것다 그냥 조물조물했다"  

솔도 베났승게 니기들이 전을 부치던지 오이랑 같이 무쳐묵 던 지 해라 "하셨다.

그냥 주물 주물 했다는 고들빼기김치에는 밤채를 썰갖은양념을 넣어서 담가두셨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엄마의 시간표가 멈췄다.

안방에는 지나간 달력이 그대로 걸려있었고 밥통에 밥도 비어있었다.

" 밥 묵을라고 봉께 밥이 없드라" 하시면서 금방 쌀 씻어서 흐면된다

불 때서 밥 한 것도 아니고 전기가 밥 해준데 먼 걱정이다냐 하셨다.     

가끔 학원에서 퇴근하고 오는 길에 전화드리면 지금 몇 시냐?

아침이냐? "아니 지금 밤 열 시 좀 넘었는디요"

그래 내가 언제부터 잤는가 모르것다. “저녁밥은 드셨어”?

금매 모르것다. 점점 어머니의 기억이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어머니 살아생전  어제 일처럼 떠오르는 추억과 함께 고향으로 가는 날이다.

부엌문 밀치고 나서면 키  맞추고 나란히 서있는 장독대가 있었다.

오늘처럼 눈이 내리는 날에는 하얀 이불 푹신하게 뒤집어쓰고 눈사람이 되었다.

왼편 장독대는 항상 땅 밑에 묻혀있었다.  

김장철이 되면 바케스에 물을 떠서 몇 번씩  씻어냈다.

새 또랑 밭에서 뽑아온 어른 주먹보다 좀 더  큰 조선무 깨끗하게 씻어서 독 안에 차곡차곡 쌓았다. 중간중간 속이 노랗게 꽉 찬 배추를 사이사이에  실고추랑 대추 채  곱게 썰어 넣고 깨끗한 짚으로 묶어 넣었다.   

   

옛날 할머님이나 어머니는 소금 몇 컵, 물 몇 리터, 무 몇 개 필요 없었다.

무가 해년마다 똑같이 자라지는 않았다.

무조건 독 안에 들어갈 만큼 무를 넣으면 되었다.

소금은 우리 집 놋 대접 나중에는 스텐으로 바꾸었지만 두 대접정도 무 사이사이에 뿌렸다. 생강, 마늘도 꽁꽁 찧어서  베주머니에 넣고 독 안에 푹 집어넣었다.

묻어둔 항아리 크기에 맞추어 양철로 된 바케스로 두 개만  물을 부으면 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마무리로 대파. 무청, 청 갓, 대나무 잎으로 무를 덮었다.



그리고 싱건지 단지에 짚으로 만든 토시로 멋을 내고 뚜껑을 닫았다.

가을걷이할 때 미리 속은 무로 싱건지 담아서 먹어도 시원하니 맛있었다.

김장 때 담은 싱건지는 동짓날 팥죽 끓이고 나서  처음으로 꺼냈다.

“잘 익었는가 모르것다.” 하시며 조롱박으로 싱건지 국물 떠서 간 보시며 "참말로 맛나고 시원하다 "하셨다. 정말 싱건지 탁! 쏘는 맛을 어떻게 사이다에 비교할 수 있을까?    


오늘처럼 눈이 내린 날에는 장독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뚜껑을 열었다.  

무청 속에 숨어 있는 무를 꺼내고 조롱박으로 지긋이 누르면 싱건지 물이 푹 올라왔다.

한 바가지 뜨고 무도 서 너 개 담아서 할머니 상에는 가는 채로 곱게 썰었다.

삼촌들 상에는 툼벙 툼벙 썰어놓았다.      

찬바람 날 때 열었던 풋고추가 익지 않고 고추 대 매달린 채 뽑혀 리어카에 실려왔다.

틈만 나면 어머니는 뚝 뚝 따서 장에 담 궈 놓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푹 삭은 고추가 연한 빛으로 변해 있었다.

쫑쫑 썰어서 깨소금 듬뿍 넣고 양념장 만들었다. 싱건지 넣고 참기름 한 방울 쳐서 밥 비벼 먹으면 그날 저녁 진수성찬 못지않게 맛난 냄새가 진동했다.

손님 오신 날에는 짚으로 묶어두었던 잘 익은 배추를 꺼냈다.

배추 속에 넣어두었던 실 고추와 대추채,

청각이 노랗고 빨갛 파랗게 하얀 사발 안에서 꽃을 피웠다.



톡! 쏘는 맛을 보려고  해년마다 싱건지를 담지만 옛날 뒤 곁 장독대에서 익었던 맛 낼 수가 없다.

엄마 손 맛이 따로 있것지

엄마만의 손맛이~

 


엄마 기일을 앞두고 ~~~



# 싱건지 # 장독대 # 풋고추 #조롱박 # 참기름 # 배추 # 생강 # 마늘 # 손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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