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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Jan 29. 2024

 유과와 강정  

 돌에 구었던 유과와 강정 맛을 아시나요?

요즘 일찍 초저녁에 잠이 들면 새벽 녁에 잠이 깬다.

오늘 할  생각하기보다 괜한 공상 하다

나이 든 탓인지 옛날 기억들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특히 설이 가까워오니 하루 종일 설음식 준비하느라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던 때가 그립다.  

유년의 기억 속에 느꼈던 부엌냄새가 지금도 코끝에서 맴돈다.  

부엌문 열고 들어서면 입구에 나무 한단 정도 들어가는 나무 청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중간에서 가스 공급해 주던 곳이었다. 나무가 소진되기 전 일 도와주시는  삼촌들이 한 짐씩 채워놓았다. 가을에  허가받고 산에서 벌목해 온 솔갱이 단이 뒤꼍 나무청에 높이 쌓였다.

설이 가까워지면 쌓아 놓은 나무 곳간에도 비어가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와 마른 솔잎 향기가 좋았다. 유과나 강정 만들려면 주재료인 쌀이 필요했다.

사실 유과나 강정 만들기 위해서는 봄부터 고해야 먹을 수 있었다.

어디 과자뿐이겠는가? 모든 먹거리는 대부분 봄부터 시작되었다.  




항상 우리 집 농사짓는 회의는 밥상머리에서 이루어졌다.  

인자 볍씨 담글 때가 안 됐냐? 할머니께서 물어보자 삼촌은 마시던 숭늉 대접을 내려놓았다.

집 앞 논에 물이 어지간히 찼은 게 담가도 돼 것 그만이라오 하고 마시던 숭늉을 마저 들이켰다.

대대로 내려온 집 앞 못자리 물이 채워 찰랑 거리자 써레질로 하루 종일 논을 골랐다.

고르고 난  후에 모판 만들고 다듬느라 밀가루 반죽 주물 듯 흙을 주 물어댔다. 

드디어 모판이 완성되자 몇 칠전 담갔던 볍씨를 뿌렸다. 봄바람과 햇살로  삼촌들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벌써 싹이 나서 푸른빛이  바람결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모내기 철이 되었다. 이 집 저 집 서로 품앗이로  모내기하느라 바빴다.

학교 다녀오는 길에 모 밥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모가 뿌리내리자 뜨거운 뙤약볕에서 가끔 불어오는 바람으로 사그락 사그락 소리 내며 자랐다. 연한 연둣빛에서 초록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여름이 무르익어가자 자주 비가 쏟아지자  안간힘을 쓰고 땅속에서 뿌리박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할머니는 배롱나무 꽃이 핀걸 보니 부지런히 피살이를 해야 긋다.

배롱나무 꽃이  세 번 피었다 지면 낱알도 다 영근다고 한다. 처서가 지나고 폭풍이 몰아쳤다

다 영글어가기 시작한 나락이 폭풍에 다 쓸어져서 논 가운데 넓은 마당이 생겼다

삼촌들은 쓰러진 나락 세우느라 바지는 정강이까지 몰아붙였다. 삼촌들 팔목과 정강이는 거친 나락이 스칠 때  긁힌 자국으로  핏발이  선명했다.




황금들판에 메뚜기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이제 나락 베기가 시작될 참이었다.

우물가 확독 밑에 박아둔 숫돌에 낫 슥삭 슥삭 갈다 손끝으로 만져보는  삼촌들 표정이 비장했다.

한 손으로 나락포기 잡고 한 손으로 착 착 쳐대는 소리에 메뚜기들이 놀래서 날아갔다.

드디어 몇 칠 동안 마른 벼를 탈곡하는 날이다. 볏짚을 탈곡기 안으로 밀어 넣은 삼촌들, 볏단을 나르는 사람, 옆에서 볏짚을 떼어주는 아줌마들 여러 명의 마을 사람들이 탈곡하는 일을 도와주었다.  

장정 두 분이  탈곡기에 한쪽 발을 올리고 구르기 시작하면  와릉 와릉  소리가 해가 지도록 들렸다.

탈곡 마친 볏 알은 덕석에서 말리는 동안 닭들을 쫓느라 간지대가 한몫 톡톡히 했다.

드디어 쌀 방아 찧던 날 가마니가 마루에 쌓일 때마다 내 마음도 넉넉해졌다.




설이 돌아오 방아 찧다 나온 싸라기랑 합쳐서 밥을 지었다. 

엿기름 넣고 단 밥 만들어서 베 주머니에 넣고 감미료만 짜느라 처마에 고드름이 맺혔어도 이마에 땀이 

솓았다. 짜낸 감미료 무쇠 솥에 넣고 그때부터 통장작으로 고기 시작했다.

유과나 강정, 떡 찍어먹는 조총은 갈색이 될 때 따로 떠놓았다. 진한 커피색이 되도록 고운 조총은 엿을 만들었다. 몇 칠 동안 물에 담가서 발효된 찹쌀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도록 푹 쪘다. 확독에서 떡메로 치느라  정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반죽에서 때왈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삼촌들 입에서 나오는 으쌰! 가 어우러져 반들반들하게 찧어냈다.




지금 나온 유과는 조랭이 모양이지만 옛날에는 유과는 넓적하니 둥근 모양이었다.

탁구공 보다  반죽을 조금 크게 떼어서 동글동글 원 그리듯 밀대로 밀서로 붙지 않도록 밀가루  솔솔 뿌려 두었다. 장작불로 뜨겁게 덥힌 방에 과를 바싹 말 밀가루 털어내고  참기름  발라주다.

무쇠 솥뚜껑에  미리 작은 돌을 구었다가 유과를 넣으면 살아있는 것처럼 구불구불 퍼져 나갔다.  잘 구워진 유과에 끓인 조청 바르고 쌀 튀밥으로 가루 낸 고명을 올려주었다.

채 썬 김 듬성듬성 올려주면 한층 멋스러웠다.  오래도록 먹어도 기름 찌든 냄새가 나지 않았다.

    

요즘 유과는 조랭이 모양으로 기름에  튀겨 조청 묻혀서 쌀 튀밥으로 가루 낸 옷을 입힌다.

강정도 종류가 많았다. 서숙, 들깨, 참깨, 쌀강정도  조청 끓여서 붓고 굳기 전에 재빨리  뒤적거려 암반에 펴서 모양을 만들었다. 그리고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서 굳으면  포대에 담 두었다.

쌀 강정은  밥알이 붙지 않도록 씻어서, 깨끗한 무명 보  뽀득뽀득 소리 나게 말린 밥알은 구워진 모래 속에 묻었다. 하얀 꽃처럼 밥알이 톡톡 불거져 나올 때  재빨리 모래랑 같이 얼개미에 쳐댔다 

 모래는 얼개미 밑으로 솔 솔 빠지고 누에고치처럼 하얗게 핀  밥알강정처럼  조청을 끓여서 부어 주었다. 뒤적뒤적 골고루 섞어주고 굳기 전  반듯하게 만들어 잘라주었다.




한 달 내내 설음식과 다과를 만들어 낸 부엌에서는 솔갱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와 고소하고 달달한 냄새가 넉넉했다설이 가까워지자 실겅에 올려진 석작에는 맛있는 것들로 꽉 차 있었다. 그 풍성했던 기억이  행복으로 남았다. 그러나 그 시절 설빔 짓고 각가지 다과와 음식  만드느라 날마다 몸베 바지에 물이 마르지 않았던 리 어머니! 그래도 백세가 가까워 오자 그때가 그래도 좋았노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이제 다시 올 수 없는 다 잊혀간 우리 시대 설 문화이다. 편리한 세상이 되었건만 명절만 돌아오면 서로 다투다가 이혼건수가 많아진 기사를 보며 씁쓸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 유과 # 쌀 튀밥 # 모판 # 설 # 종갓집# 설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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