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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Apr 21. 2024

화전놀이 (고흥댁 아홉 번째 이야기)


카톡 방 깨우는 소리에 핸드폰을 켰다.

남편은 핸드폰을 열더니 곧장 컴퓨터를 켠다. 말씀과 함께 성화를 그린 둘째 오빠가 보내준 사랑의 편지였다. " 아이 우표도 없이 어찌게 편지가 요 속으로 온다냐" 엄마는 핸드폰을 볼 때마다 참 요새 세상은 요상흔 것도 많다 하시며 놀라워하신다.

하긴 스티브 잡스가 만든 메신저 우리 세대도 따라갈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물며 백세를 바라보는 어머니께서 어찌 이해할 수 있을까?

백 년 전 사진기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왔을 때 혼을 빼앗아간다는 물건으로 다들 오해했었다고 한다.

엄마도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보여 드릴 때마다 사진관도 안 갔는데 내 얼굴이 어찌 그 속에 있느냐고 하셨다.




일세기를 살아오신 어머니께서는 걸어서 전해온 부고장, 급할 때 몇 자 적어서 보낸 전보, 편지, 수동으로 돌린 전화에 이어 핸드폰까지 빠르게 진화해 온 것들로 숨이 벅찬 건 당연하다.

나도 자녀들과 경험한 세계가 다르다 보니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현시대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아 소통이 잘 안 된다.

작은 화면으로 성경 읽는 게 불편하게 여기자 남편은 날마다 컴퓨터로 타이핑하고 출력해서 어머니께 드렸다. 지식 욕구가 많으신 어머니는 무엇이든 읽기를 좋아하셨다.

가끔 목이 막혀 " 아이 나이가 든 게 요것 쪼께 읽어도 목이 멕이고 기침이 난다"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그만두라고 했지만 남편은 따뜻한 물 한잔 드리고 기다렸다가 "어머니 지금은 괜찮흐요" 다시 해봅시다 하며 기어이 녹음을 마쳤다. 그때마다

나는 칭찬보다 '인정 중독"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런데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난 뒤 요양보호사 자격증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치매예방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 책 읽기, 손빨래, 바느질 등이라고 한다.​

아는 집사님께서 어머니가 천으로 만든 쿠션을 보고 난 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셨다.

요새는 참말로 책도 좋고 사진도 선명하고 이쁘다 하시며 "한국 보자기"에 대한 책을 머리맡에 두고 밤 한 시까지 보셨다.​

물론 금방 잃어버리긴 하시지만~​

바느질도 잘하시고 무슨 책이든 손에 잡히기만 하면 돋보기도 쓰지 않고 보신다. 주무시다 실수하면 속옷도 직접 빨아서 널어놓았다.




주간보호 센터 가시기 위해 날마다 3층 오르락내리락하시고, 프로그램대로 하루 일과를 보내시니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나 보다.​ 에제르 남편은 아침에도 어머니 밥상 보며 한소리 한다.​

노인들은 변비로 자칫 고생할 수 있다. 양배추 삶아서 장도 몇 가지 준비해 두고 입맛에 맞게 찍어서 드시도록 해라 상추 겉절이. 부드러운 계란찜, 사골국 등​ 누구 어머니인지 헷갈린다.

갈수록 귀가 멀어 엉뚱한 소리도 잘하시고 짠맛을 잃어버려 소금도 사골국에 듬뿍 넣어 드신다. 적게 넣으라고 하면 "음식은 원래 짭짤해야 맛나다" 하신다.​

남편이 오히려 어머니 하시는 행동을 그대로 받아준다. 고향이 같아서 서로 정서가 같고 소통이 되니 말벗이 되어 준다.


어머이!

요만 때 시골에서는 화전놀이 했지라이

내가 농사일도 잘 못하고 일이 느려도

자들 할매가 참 좋았네

생정 숭 안 보고 우리 공떡은 일 흐면 뒷손이 안 가게 얌전하게 잘한다고

칭찬만 했네


자네 장인은 집에 없어도

어른들이 잘해준 게 살았제

근디 상할아부지는 일 못한다고

어지간히 나를 미워하기는 했네

나락 덕석도 착 못 챈다고 한디

무건 덕석을 일도 안해본 내가

 어찌께 딱 챈당가

참말로 그때마다 속은 상하대만은




요맘때 모다들 보리밭 어지간히 메놓고

장구재비 뒤따라서 화전놀이 갔제

곡조가 안 맞아도 이미자 노래깨나 불렀네

자들 새 돔에 당숙모가 목청이 참말로 좋았네 장구 잘 치기는 방구 각시가 잘 쳤제

장구채 하나 들고 장구 뚜들면 모다들

그 앞에서 술 한잔 묵고 저 고름짝

풀어진 지도 모르고 덩실덩실

춤추고 놀았제




​자들 할매도 논 것을 좋아해서 꼭 화전놀이 끝나면 다들 우리 집으로 왔네

누구 집 메느리들은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흔디 우리 집 메느리들은 놀지도

모른다고 그때는 화를 냈제

그래도 닭 잡아서 죽 끼래줘서 다들

잘 묵고 놀았네

그때가 좋았네 참말로




어머이

먼 노래 좋아흐요

잘 부른 노래 있소

한번 불러보쇼

미쳤든갑다

저 할매 백 살 묶어감서 노망했다고

욕 흘라고

어머이는 "사공의 뱃노래" 좋아흐지라

한번 불러볼라요

핸드폰은 켜드리자 어이!

그 속에서 노래도 나온

참말로 존 세상이네


" 사공에 뱃노래 가물거리는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에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인가 목포의 설음"


아이고 목이 멕혀서 참말로 못 불겠네 ~​

2018 0420


# 컴퓨터# 사공의 뱃노래 # 치매예방 # 바는질#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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