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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Apr 29. 2024

마침내 손녀딸 포대기로 업었다

시어머니 되고 보니 ( 여섯 번째)

4월 25일 친정아버지 기일이다.

아버지 덕분에 고향 섬진강 둑에 피어있는 철쭉을 해년마다 볼 수 있다.

지금은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꽃이지만 고향에서 보는 꽃은 남다르다.

금요일 퇴근 후에  형부, 언니, 내 짝꿍이랑 오후 7시 정도 출발 했다. 피곤했는지 차타자 마자  잠이 들었다. 아버지 기일이라는 고리가 없으면 형제들끼리  만나기 쉽지 않다.


시집과 행사가 겹쳤지만 친정집과 가까운 지역이라 오랜만에 시집 형제들도 만나게 되었다. 조카딸 결혼식을 마치고 시숙님과 시누이. 고모부랑 함께 오랜만에 카페에서 회포를 풀었다.  




이틀 동안 먼 거리 다녀온 터라  월요일 아침 일어나기가 힘이 들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좀 이른 시간 손녀딸 돌보기 위해 서둘러 집을 나섰다.

마침 달려오는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하필 빈 좌석이 없었다. 기다렸다 뒤에 오는 차를 탈걸,  요즘 금값이 된 사과도 친정 오빠가 박스째 주었다.

삼촌 사과가 제일 맛있다는 아들 말을  들었던 터라  사과까지 챙겼더니 제법 가방도  무겁다. 좌석이 없어서 임산부 석 옆에 서서 한 손으로 고리를 잡았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임산부 석에 앉아 있는 게 눈에 거슬렸다.

어쩌면 빈자리로 있었다면  내가 앉고 싶었던 마음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차가 달리자  혀를 차더니  짜증 부리는 학생의 모습을 보고  심기가 불편했다.

나 때문에 짜증 낸 건 아니겠지.


그런데 차가 언덕배기에 올라 채며 흔들리자 학생이 대놓고 십 원짜리 욕을 하고 혀를 찼다. 순간 같이 화를 내고 싶었지만 어머! 학생 미안해요 가방으로 혹시 맞았나요? 했더니 씨~ 아까부터 왜 자꾸 기대길 기대요 하며 소리쳤다.

그랬어요? 차가 흔들리니 할 수 없네요 미안해요 하자 재수 더럽네 하며 의외의 말로 맞받아쳤다.  임산부도 아닌데 왜 그 자리에 앉았느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런데 좁은 버스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내 쪽을 쳐다보고 있다.  갑자기 내 얼굴이 빨개졌다. 다행히  환승하려고  버스에서 내렸지만 기분 나쁘고 속상했다. 어린 학생의 버릇없는 행동을 보고  따끔하게 나무라지도 못한 나의 행동도 비겁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환승한 마을버스는 좌석이 넉넉했다.

좋지 않은 마음으로 아들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손녀딸이 나를 보자마자 웃으면서 쏜살같이 기어 왔다. 

아이들에게는 특유한 향이 풍긴다.  안은 채 뒤통수에 대고 몇 번이나 이쁜 것이 이쁜 냄새까지 풍긴다며 뽀뽀세례를 여러 번 치렀다.  며느리와 아들은 바삐 출근하고 난 뒤 손녀딸과 식물 키우는 장난감과 그림 낱말 카드로 놀았다. 벌써 원숭이 하면 알아듣고 그림을 찾아서 올린다.

핸드폰이 그려진 카드를 들고 귀에  갖다 대는 모습이 예뻐서 왈칵 안아버렸다.



월요일이라 유아원 준비물이 많았다.

일주일 동안 덮었던 낮잠 이불 세탁한 것,  기저귀, 물 티슈, 이유식 가방까지  짐이 제법 많았. 다 들고 갈 수 없어서 꾀를 냈다. 차가 없으니 이럴 때 좀 불편하다.

그래도 손녀딸과 함께 아파트 단지 내

피어있는 철쭉을 볼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차 안에서 자연을 보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좋겠지.

유모차에 짐을 싣고 소원이던 손녀딸을 '마침내  포대기를 띠고' 업었다.  이안아! 철쭉이 이쁘게 피었네  이쁘지? 등에서 알아듣는 듯 고개를 젖히고 웅얼거린다.

아파트 단지에  분홍, 주황, 흰색으로 핀 철쭉이 줄지어 서서 봄 햇살에  우리 손녀처럼 활짝 피어올랐다.


유아원 도착해서 헤어질 때도 선생님 품에 안겨서 손을 흔들어 주는 손녀가 기특하다.

적응도 잘하고 애착관계 형성이 잘 되었는지 헤어질 때도 손 흔드는 손녀가 이쁘기 한량없다.


빈 유모차에 포대기를 얹고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 오는 길이다. 예쁜 비니를 쓴  육십 대 중반 되시는 분이 유모차가 참 이쁘네요 하며  말을 걸다.

네~~ 유모차에 유아원에 가져갈 짐이 많아 싣고 아이는  업어서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손자인가요? 손녀인가요? 손녀인데  재롱도  많이 피우고 자식 키울 때보다 더 예요.

"시어머니 되고 보니"  옛날 생각이 많이 나요.  시어머니께서 칠십이 다 돼서 손자 보기 힘들다 하시더니  지금  제가 그 나이가 되었네요.


마실만 다녀오셔도 마루에 포대기 풀고

'아이고 힘들다' 아이! 니 새끼 인자 니가 바라 배고픈디 젖 멕이고  하시던 생각이 나네요. 이긴 한데 힘이 부치긴 해요.


힘든 것보다 좋은 게 훨씬 더 많지요 요즘 젊은이들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데 손녀를 안겨주셨으니  좋으시겠어요.


맞아요! 힘든 것보다 좋은 것이 더 많치요  아침마다 손녀딸 영상 보고 웃네요

노랫소리 들리면 손뼉 치고, 핸드폰 들고 귀에 갖다 대고 기침하면 따라 하고 하루하루 성장하는  모습 보면 대견하고 기특해요.



맞아요! 우리 아이들 키울 때는 멋모르고 키웠고 손자, 손녀는 참말로 이요.




그런데  요즘 놀이터에 유모차보다  반려견을 태운 개모차가 더 많아요.   반려견 정성 들인 것만큼 자녀 낳아서 키우면  좋을 텐데 아쉬워요.

맞아요!

요즘  아이들만 보면 다들 자기 자식처럼 예뻐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분은 팔동으로 가시고 나는 우리 동으로 오면서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다.


사실 직장 다니면서 자녀 키우기가  힘든 현실이긴 하다. 우리 집만 해도 며느리가 새 학기가 되어  직장 복귀하게 되니

엄마 손이 필요한 시기인데 유아원을 보낸다.

출근 시간과 맞지 않아 유아원에 열 시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아침 두 시간 정도 돌바 주고 있다. 사는 곳이 가까워서 도와줄 수 있어 다행이다. 나날이 손 짓 발짓 하며 커가는 손녀딸 보는 큰 기쁨이고 행복이다. 그러나 육아문제는 큰 숙제이긴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침에 만났던 학생이 잠시 스쳐 지나간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학교 가는 길에 짜증을 냈을까?

옛날에는 동네 어르신들이 내 자식 남의 자식 따지지 않고 잘못하면 혼내주기도 했다. 인사를 하지 않거나 친구끼리 싸워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꾸중하고 타일렀다.


 아침일을 생각하 심정이 복잡하다.

학생에게 올바른 가르침은 커녕  한마디 하지 못한 이 남아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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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정아버지 # 추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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