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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초이 Mar 01. 2021

[발리 여행기 3] 모두가 마음속에 그리는 , 짱구

짱구에서 만난 인연들

누군가 코로나가 끝나면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지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발리’라고 말을 꺼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언제 여행을 다시 갈 수 있을까 싶다.

서랍장에 1년 넘게 묻혀있던 발리 여행기를 꺼내보며, 잊지 말자 발리의 여운을!




힙합의 대명사 짱구

짱구는 쿠타보다는 윗 쪽으로 올라가면 자리하고 있는 발리의 또 다른 유명 지역이다. 활동적인 파도가 이어져 서핑을 조금 더 중급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찾는 지역이기도 하다. 저녁 즈음에는 맥주 한 병을 손에 들고 바다 위로 떨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파티처럼 마무리할 수 있다. 파티가 있는 힙한 짱구에는 스타일리시한 사람들로 가득하다.

쿠타에서 일정이 길어지는 바람에 짱구에 머물 시간은 줄어들었다. 짱구에서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혼자 놀기에 심심해져 디노마드 인들이 모여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가기로 했다. ‘발리에서 머무는 디노마드를 위한 숙소 라니, 듣기만 해도 낭만적인 타이틀이다.



고카

쿠타에서 짱구까지 버스로 저렴한 가격에 이동이 가능했지만, 아침 서핑을 하고 나니 남은 체력으로 캐리어를 끌고 가는 것이 무리였다. 고민은 잠깐, 고카(고젝 서비스에서 차량을 선택)를 찾아보니 1시간 이동에 1~2만 원 사이라 바로 라이더를 불렀다.


라이더는 더 높은 가격을 부르긴 했지만, 몇 번의 가벼운 흥정 끝에 1.3만 원 즈음의 적당한 흥정가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직접 만나 가벼운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다 보니 1시간도 훌쩍 지났다.

짱구에는 도착했지만 내비게이션은 멈추질 않았다. 굽이진 골목을 돌아서, 돌아서 산속으로 향했고 운전을 해주는 친구도 이런 곳은 처음이라며 정말 이 곳이 맞냐고 물었다. 짱구에 도착한 기념인지 비도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고 서로 헛웃음을 지었다. 짱구에 와서 이런 곳에 머무는 사람은 처음 본다며 한번 들어가면 시내로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뚜벅이 여행자는 나뿐이었고, 모두들 스쿠터가 있었기 때문에 그 깊은(?) 산속까지 올 수 있었다. 발리는 혼자 여행을 가도 좋은 것이 이동 시 비용이 저렴해 부담 없다.


짱구의 위치 (쿠타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이동 거리)





숙소

산속 외진 곳에 자리한 숙소는 시골 할머니 댁에서 본듯한 오래된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작은 간판에 써진 이름은 분명 숙소 이름이 맞는데, 주변은 풀로 무성했고 사진에서 본 작은 풀장? 은 사용하지 않은지 꽤 되었는지 오래된 이끼와 허름한 잡동사니들로 채워져 있었다. 나를 태워준 친구도 이게 숙소가 맞냐며 허탈 웃음을 지었고, 날이 흐려지며 빗방울도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하자 불안함은 극대화되었다. 잘못된 선택을 한 건 아닌지 갑자기 쿠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직원처럼 보이는 한 친구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짧은 체크인 시간 동안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잠시 윗 층 마루를 소개해주겠다며 안내해주었다.

나무로 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자 눈 앞에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오픈된 마루에서는 발리의 초록 풍경이 끝없이 펼쳐졌고 그 위에 노을이 지며 따스한 빛이 나무 위로 떨어졌다. 드넓은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하기에 바쁜 순간에 시원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마루에 앉아 몇 친구가 자유롭게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숙소 방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정말 제대로 찾아왔다! 싶을 정도로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Tribe Theory Startup House


리로이

파란 하늘과 초록 밭을 바라보며 일하는 한 친구의 모니터에는 개발 코드가 보였다. 갑자기 친숙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내가 찾던 디노마드를 발견했다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뒤에서 조심스럽게 풍경 사진을 찍자 그 친구는 낌새를 채고 먼저 인사를 건네주었다. 스위스에서 온 리로이라는 개발자라고 했다. (태어나서 처음 듣는 이름이 너무 예뻐서 나중에 영어 이름으로 내가 쓰고 싶어 졌다. 아니면 한국식 이름으로 ‘이로이’도 예쁠 것 같다) 어쨌든 나도 앱을 만든다며 짧게 몇 마디를 나누었다. 나는 처음으로 디노마드를 만나서 신기했고 그는 원하는 곳을 여행하며 개발을 한다고 했다. 진짜 디노마드의 삶을 살고 있어서 부러웠다. 언제까지 개발을 할 것인지 물어보니 당연하다는 듯 웃으며 죽기 전까지는 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가도 좋은 나라에 살고 있고, 평생 어디서든지 일을 해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듯해서 그 자유로움이 굉장히 부러웠다. 아마 발리에서 만나고 싶었던 이상적인 디지털 노매드의 삶을 이룬 친구를 직접 만난 기분이었다.


발리에서 처음만난 디노마드 친구




맛있는 건강식


자르벤

택시업체의 반발로 고잭도 잡기 쉽지 않은 화려한 짱구의 시내가 익숙하지 않은 나는 마루가 편해 숙소에서 계속 머물렀다. 다행히 판매하는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요리를 하는 자르벤은 정말 재미있는 친구였는데, 마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포스로 섬세하게 요리를 하는 친구였다. 식당을 곧 낼 것이라 했는데 그의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짱구 시내에서 식당을 찾다 겨우 찾은 가장 힙해 보이는 곳에서 식사를 망쳤는데(사진조차 남기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자르벤의 집 밥 음식을 먹으니 힐링이 되는 듯했다. 이렇게 달달하고 건강한 음식이라면 발리에서 정착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보면 레시피는 간단했지만 재료가 좋았던지 발리에서 먹은 음식 중 탑 중 하나이다. 언젠가 레스토랑을 차리면 그의 요리를 먹기 위해서 다시 발리에 가야겠다.



프리만

프리만이라는 친구가 먹는 매우 큰 그린빈에 호기심이 생겨 말을 건넸다. 발리의 건강식의 스케일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건네받은 한 알을 씹어보니 익숙한 완두콩 맛이 느껴졌다. 이름은 쁘따이(Stink Beans)라고 알려주었는데 이를 밥반찬으로 먹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발리의 수더분한 건강식이라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동을 표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소주, 고추장, 김치를 좋아하는 토종 한국인의 입맛을 가진 친구였다. 여권도 아직 없는 토종 발리인 프리만에게 누군가 한국 음식을 전파한 게 신기했다.

제대로 된 짱쿠 투어를 하지 못한 것 같아 물어보니, 본인은 남쪽 짱구, 스미냑, 룸복을 추천한다고 했다. 그중 룸복은 지금 이 곳보다 몇 십배는 아름답다며 꼭 가보라고 했다. 이미 충분히 발리에 매료되었는데 이보다 더 멋진 곳들이 있다니, 김치를 들고 발리에서 팔아볼지 순간 상상해보았다.




아일랜드 친구

아침에 늦게 일어나 잠깐 이야기를 나눈 아일랜드 친구는 가끔씩 해외로 나와 노마드로 몇 개월씩 업무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행복한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CS업무를 한다고 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느 나라에서나 쉽지 않을 듯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직업인데 노마드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축복이다 싶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 누구보다 대화가 잘 통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어쩐지 내가 영어 실력이 늘었는지 잠깐 오해했는데 알고 보니 나의 한국식 영어를 편하게 받아주었다 싶었다.


짱구의 날 좋은 순간들






모닝요가

하루는 숙소에서 하는 이벤트를 따라나가 요가를 배웠다. 요가를 하는 내내 강렬한 발리 햇살 아래서 눈부심과 싸우며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했다. 요가 시간이 어찌 지나갔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끝나고 멜론, 수박, 파파야, 소이밀크, 시리얼, 코코넛 워터 등 건강식으로 차려진 아침까지 얻어먹으니 발리에 온 듯 실감이 났다. 다 같이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들 발리의 자유로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중 눈이 정말 아름다웠던 한 개발자 커플은 사우스 아프리카에서 왔다고 했다.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는 행복한 개발자를 다시 만나니 부럽고 부러웠다.

 



노마드 전용 숙소에서 머물며 밖을 돌아다니기보다 작은 숙소 안에서 머물며 사람들을 만나고, 작은 인연들이 생겨났다.

아마 다음에도 온다면 이 곳에 머물고 싶다. 쿠타에서 머물렀던 시간들은 짧지만, 발리에서 노마드로 산다면 어떤 느낌일지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 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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