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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유 Nov 27. 2015

스티브 잡스와 인문학

UI 디자이너를 지망하는 인문학도의 관점에서


나는 영문학, 미디어를 대학에서 4년 동안 공부했고 이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는 학생이다.

인문학 전공과는 별개로 하고 싶은 일은 UI, 브랜딩 디자인이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서 내 전공을 살려 과연 IT업계에서 비전공자 디자이너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내가 UI 디자인을 하고 싶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아이패드 때문이었다. Retina display가 추가된 뉴아이패드가 출시되면서 완전히 애플 제품 라인에 푹 빠져버렸다(물론 그전에도 아이팟, 아이폰을 쓰긴 했지만). 손바닥보다 큰 화면에서 펼쳐지는 너무나 놀라운 Graphic  User Interface 였다. 네 손가락으로 화면을 넘기고 두 손가락으로 사진을 줄였다 늘렸다 하는 모든 것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단지 아이폰, 아이패드 자체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기간의 연동을 해주는 iCloud에 놀라고, Appstore, iTunes가 제공하는 콘텐츠의 방대함에 감동받았다. 알면 알수록 활용도가 매우 높은 애플이 구축한 세계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내가 이렇게 애플에 충성도를 보이기 훨씬 전부터, 맥킨토시부터 시작한 스티브 잡스 신화는 이미 쓰이고 있었다. 특히 화려한 쇼맨십과 언변으로 그의 프레젠테이션은 늘 회자되어 왔다. 스티브 잡스의 수많은 발언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들뜨게 만들었던 것은 아마도 아이패드 2 출시를 알리면서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발언일 것이다.






“Technology is not enough- it’s technology married with liberal arts, married with the humanities, that yields us the result that makes our heart sing.”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인문학과 결합한  기술이다."라는 그의 발언을 의식해서인지, 삼성에서는 인문학 전공자를 대거 채용해 소프트웨어 개발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 내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실패작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회사의 DNA에 기술과 "Liberal Arts"의 교차점이 있다고 하는 애플 조차도 인문학 전공자를 별도로 뽑고 있지 않다. 과연 잡스가 말한 "인문학"이란 무엇이며, 왜 사람들은 이에 그토록 열광하고 삼성은 이를 쫓아가려 하는가?


UI 디자인을 하고 싶은 인문학 전공자로서 나는 이 문제에 대해 한 번쯤은 깊게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인문학을 대학에서 4년이나 배우면서 이를 잘 활용할 수는 없는가? 스티브 잡스가 말한 인문학은 아이폰을 있어 보이게 하는 수사법, 마케팅 수단에 불과한가? 하는 의문에 대한 내 나름의 답으로 스티브 잡스가 말한 인문학에 대해 알아보았다.


먼저 잡스의 인문학을 말하기에 앞서, 내 나름의 인문학에 대한 정의를 먼저 내려보고자 한다.

인문학이란 인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사랑을 담고 있는 모든 것을 총칭한다.

즉, 인간의 가치과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자기화'하는 것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문학'과 그것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고리타분하게 들린다. 마치 모두가 프랑켄슈타인에 대해 들어보고 알고는 있지만 대부분이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라 그를 만든 창조주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 모두가 인문학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만 아무도 인문학, 그 본질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필자도 이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현대 철학자, 노자' 1강에서 인문학 열풍 vs 인문학 위기의 대립 현상에 대해 얘기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인문학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이라는 학문은 이렇게 많은데 왜 우리는 인문적 통찰이나 인문적 창의성, 인문적 상상력은 굉장히 부족한 문화가 되어있는가? 자신이 해야 할 인문적 활동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학(學)에 대한 학습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더 이상 학(學)이 아니라 활동이어야 하며, 활동할 수 없는 인문학적 학습은 오히려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인문학을 학(學)적 체계로 수용하는 일이 아니라 인문적 활동이나 인문적 통찰을 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감각을 확보해 자신이 인문적이 되어야 하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한 인문적인 질문을 필요로 한다. 인문적 통찰, 인문적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해 보는 것이다."


위 글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인문적 통찰은 마냥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역사나 문학의 단편적인 지식(안타깝게도 요즘 기업에서 요구하는 인문학적 소양과 관련이 깊다)을 쌓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잡스가 말한 인문학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문학과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을 인문적 활동보다는 '학(學)' 중심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잡스가 강조하는 인문학과 기술의 결합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플의 성공요인으로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인문학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이를 말하기 앞서 간단한 개인용 컴퓨터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개인용 컴퓨터의 역사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Altair 8800, 1974년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Altair 8800는 부품 형태로 전달되어 조립해서 써야 했다. 소프트웨어가 따로 없고, 전면의  토글스위치로 코드를 입력한다. 결과가 깜빡이는 불빛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그 불빛을 해독할 줄 알아야 한다.








IBM 5150, 1981년

다음으로 IBM PC 호환기종 시장이 형성되고,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라는 명칭이 일반화되었다. 컴퓨터의 인과관계 계산에 입각하여, input 이 있으면 output이 있는 그러한 단면적인 구조였다. DOS 운영체제이다. 인터페이스가 없고 그냥 명령어를 치는 구조인, 하나의 면에서 계속 이야기가 전개될 뿐이다.






그러나 맥킨토시가 등장함에 따라서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1984 년에 등장한 매킨토시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 GUI (Graphic User Interface) 개념을 크게 보급시키는 데 성공하여, 다음 세대 컴퓨터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1985년 매킨토시에서 동작하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이 나왔고, 그 인터페이스는 다음 윈도우응용 프로그램의 원형이 되었다.


더 이상 화면에 명령어를 치는 구조가 아닌 바탕화면에 Graphic을 이용한 아이콘이 있고 그것을 클릭하게 된다.


Graphic User Interface 라 함은,

그래픽을 사용한 기계와 인간의 접점, 즉 face to face, 면과 면의 연결고리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지금 우리가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폰에서 볼 수 있는 앱 아이콘을 떠올리면 된다. 유저들은 앱을 실행시키기 위해 아이콘을 누르는 일종의 명령을 내린다(DOS체제가 지금까지 계속되었다면 앱을 실행시키기 위해 유저들은 명령어를 입력해야 할 것이다). 이는 상당히 직관적이고 편하다. 이것이 GUI이고 스티브 잡스가 말하는 기술과 인문학의 접점이다. GUI를 만든 목적은 인간의 직관을 건드린 것이다. 복잡한 컴퓨터의 명령어(IBM의 DOS운영체제) 가 아닌 그래픽 아이콘 버튼 하나로 명령이 되는 그러한 인터페이스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감성, 직관’에 초점을 맞추고 사용자에게 편리하게 만든 것이다.


문화평론가 최민성 교수는 “깜빡이는 커서 위에 명령어가 나타나는 방식의 번역보다는 아이콘을 클릭하는 방식의 번역이 훨씬 직관적이고, 인간적”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책상 위의 환경을 재현하는 인터페이스는 이해하기 쉽지만 MS-DOS보다 Mac의 OS가 훨씬 더 잘 된 디지털 세계의 번역이다”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맥킨토시에서 시작한 스티브잡스의 혁신은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의 성공으로 이어진다.



.


추억의 아이팟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노래를 들어 mp3 시장이 거의 죽었지만, 그 당시에 아이팟은 실로 대단했다. 디스플레이와 단순한 동그란 홈버튼이 전부인 혁신적인 디자인과 더불어 아이튠즈까지 개발해 불법 다운로드가 큰 문제였던 당시의 음반 산업을 뒤흔들었다.



최초의 아이폰





맥킨토시 이후에 아이팟, 그리고 스티브 잡스 하면 먼저 떠오르는 아이폰 역시 또 새로운  UI이다. 2007년에 출시한 최초의 아이폰은 전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줬다. 후에 출시된 아이폰3G는 현재 사람들이 떠올리는 스마트폰의 형태를 갖춘 최초의 모델이자 기념비적인 제품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아이폰4의 출시로 2010년 국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3%를 차지하며 절정을 찍는다.



나는 아이폰4가 출시되었을때의 그 여파가 잊혀지지 않는다. 기계이지만 그 자체에서 뿜어져나오는 아우라가 있었다.


아이폰 이전의 휴대폰을 생각해보면 매뉴얼을 익혀야 쓸 수 있었다. 사람이 기계에 맞추는 것이다. 애플은 이것을 어떻게 전환시킬지 수많은 고민과 질문을 하였다. 그 고민과 질문 자체가 인문학인 것이다.


문화평론가 최민성 교수는 새로운 GUI의 획을 그었던 아이폰에 대해  "펜을 꺼내서 화면을 건드려야 했던 PDA의 인터페이스보다 손가락의 정전기를 이용, 아이콘을 통제하는 아이폰의 인터페이스가 훨씬 더 친밀한 디지털 세계의 번역"이라고 말한다.


사람, 인문학이 주인이 되는 구조. 그런 구조 위에 설계된 모든 기계들. 아이폰에서 나타나는 작동들은 사용자의 입장에서 설계된 거라는 점은 명백하다. 아무리 애플을 싫어하고 잡스를 미워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애플이 그런 요소에 고민하고 있다는 부분에 공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7년 첫 아이폰이 세상이 나왔을 때 잡스는 꼬집어 말한다. '아이폰 이전의 폰 UI는 너무나 불편하다'고.

아래 동영상을 보면 연구개발에만 수년이 걸린 혁신적인 UI가 나오기까지 애플이 어떤 고민을 하였는지 잘 알 수 있다.

출처: ADMAN info





다음은  Ipad이다. 애플의 아이패드는 스마트기기 시장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아이패드가 처음 출시됐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패를 예상했다. 당시 소형으로 출시된 넷북보다도 부족한 성능과 키보드나 다른 입력기기 없는 터치 방식 등이 불편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1년 중순, 아이패드는 아이폰과 아이포드보다도 훨씬 더 혁명적인 제품임을 증명해낸다. 아이포드와 아이튠즈가 음악 구매와 청취 방법을 바꿨고, 아이폰은 사람들의 휴대폰에 대한 기대치를 바꿔 놓았다. 그런데 아이패드는 무려 다섯 업계를 뒤흔들었다. 소비자들이 책과 신문, 잡지를 사고 읽는 방법을 바꿨으며(물론 영화와 드라마 시청 방법도 바꿨다), 이들 사업에서  거둬들이는 수입만 전체 2,500억 달러, 혹은 미국 GDP의 2%였다.

<다른 태블릿은 실패했는데 아이패드는 어째서 성공했을까?>
By Fred Vogelstein. Translated by casaubon.






다시 요약하자면,

스티브 잡스의 인문학의 요체는, 핵심가치는 과학과 접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 제품으로 표현해내는데 있다. 즉 인간에 초점을 맞춘, 사람이 편리하게 쓸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만들었고 이는 인문학이라는 자산을 잘 활용해서 과학과 접목시킨 것이다. 그것이 발전해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로 진화하였다.



사람들이 아이폰을 사기 위해 며칠 밤을 밖에서 줄을 서며 열광하는 이유는, 오로지 잡스의 뛰어난 마케팅적 감각과 언변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과학의 옷을 입은 인문학이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기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사람에게 다가와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스테이지5 이종욱, BrEacK

나는 이 영상에서 잡스의 철학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향해 있고, 인문학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모든 기계를 만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IT 업계에서 인문학 전공 디자이너로서 나를 어필하기 위해 전공을 어떤 식으로라도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에

실체가 없는 '인문학의 쓸모 있음'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을 얻고 싶었다.(그리고 그 좋은 예가 스티브 잡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이 내 '전공'이 인문학이라고 해서 '나는 인문적 통찰에 능하다'라고 어필하는 것은

잡스가 말한 인문학적 사고에 반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 대해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의 저자 장대익은 아래와 같이 말한다.

"이제 '전공'이 무엇이냐고 묻는 시대는 가고 '질문'이 무엇인가를 묻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이해하는 제너럴리스트냐, 한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스페셜리스트냐'를 구분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통섭적 시야를 가진 전문가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지식의 순수혈통을 따지는 시대에서 잡종적 지식을 선호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감히 나는 이것이 바로 미래 지식의 메가트렌드라고 생각한다.


위 글처럼 지금은 '전공'이 아니라 '질문'이 무엇인가를 묻는 시대이다. 잡스가 대학에서 철학과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곧 중퇴하고 서체 수업을 청강했다는 일화가 말해주듯이, 잡스가 잘한 건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적 '활동' 이었다. 결국 내 전공이 인문학이니 나는 인문적 활동에 능하다고 말하는 건 무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답을 내려다가 오히려 벽에 부딪힌 느낌이다.)


내 짧은 식견으로 스티브 잡스와 그의 인문학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려 하다 보니 결코 쉽지 않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애플이 왜 인문학적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잡스의 말을 곱씹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글을 쓰는가 하면, 이 문제에 대해 '자기화'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결국 내 주위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자기화'하는 과정이다. 한때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던 잡스를 추억하며, 그의 철학을 내 나름의 방식대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문학적 '활동'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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