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의 해를 떠나보내며
2018년은 참 정신없이 지나간 한 해였던 것 같다. 연초에 무언가를 계획하지 않고 그냥 얼떨결에? 2018년을 맞이해서 그런지, 올 한 해는 말 그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것 같다. 올 초, 모든 걸 다 던져버리고 Yolo를 외치며 한 달간 유럽여행을 떠났다. 나의 드림시티였던 베를린에서 어떤 기회가 있을지, 과연 살만한 곳일지 탐색하기 위해 그렇게 한 달간 유유자적 가진 것 없이 에어비엔비를 전전하며 베를린에 머물렀다. 애초에 김삿갓처럼 떠돌기 위해 간 여행이지만, 하필이면 제일 추울 때 가서 벌벌 떨며 고생한 기억이 가득하다. 생고생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귀국 후에도 베를린에 다시 가겠다는 나의 열망은 더 커졌고 차근차근 해외취업을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해외취업을 하려면 충분한 자금이 필요했다. 한 달간의 유럽여행으로 잔고는 바닥이 났었기에, 탈조를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다시 프리랜서 일을 시작했고, 일과 병행하면서 해외취업 플랜을 차근차근 짜 보려 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쉬운 게 어딨겠나. 일을 하면서 취업준비를 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시 플랜을 바꿔서 외주 일을 끝낸후에 본격적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이직을 하려면 포트폴리오를 멋지게 만들어야 하는데 무얼 제대로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다. 다른 디자이너들 웹사이트는 온갖 화려하고 멋진 인터렉션 가득한 것들이 많은데 나의 것은 아무리 시간을 투자해도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느리지만 천천히... 조금씩 살을 붙여가면서 여태까지 작업해온 것들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 힘들었던 건 해외취업을 목표로 웹 포트폴리오를 만들려고 하니, 영어가 문제였다. 우리말로도 잘 전달하기 힘든 내용을 다시 영어로 고급지고, 전문성 있는 톤으로 전달하려고 하니 머리가 아주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어찌어찌해서 마무리지었더니, 이제는 코딩이라는 더~~ 높은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뭐 하나를 구현하려고 해도 어디서부터 뭘 어떻게 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감이 안 오니... 많은 삽질 끝에 나름대로 그럴듯해 보이는 웹사이트를 하나 만들었다. 코드를 다시 보면 개판이겠지만 어쨌든 완성을 했다.
포트폴리오 웹사이트와 이력서가 완성된 후, 찔러보고 싶은 회사를 리스트업 해봤다. 실리콘밸리에 있는 큰 회사부터 시작해 베를린 거점 스타트업까지 공격적으로 넣어봤다. 매주마다 하나둘씩 Unfortunately로 시작하는 메일을 받을 땐 속이 상했지만 그래도 크게 상심하지 않았다. 언젠간 나와 핏이 맞는 회사가 있을 거란 마음 한켠의 믿음? 이 있었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데 그게 번번이 좌절되고, 미래는 너무나 불확실하고 불투명한데 나란 인간은 왜 이렇게 나약한지.. 이런저런 고민이 정말 많기도 했다. 졸업 후에 딱히 취준이란 걸 해보지 않았는데, 이제야 직접 경험해보니 이게 참 멘탈을 관리하기 힘든 거구나 알게 되었다. 예전에 취준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들한테 조금 더 힘이 되지 못해서 후회스러웠고, 반대로 내가 방황할때 함께 해준 사람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렇게 준비만 하다가 2018년이 가버릴 줄 알았는데 그래도 다행히 10월 즈음에 나와 핏이 맞는 회사를 찾아 입사하게 되었고 벌써 두 달째 감사히 잘 다니고 있는 중이다. 꿈에 그리던 베를린에서 일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사실은 지금 다니는 회사에 정을 붙이기 시작하면서 언제 그런 꿈을 꿨냐는 듯, 서울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2018년 초, 방랑컨셉의 유럽여행을 시작으로, 나에게는 이번 한 해가 정말 방랑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무엇하나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실패의 쓰라림도 느끼고, 너무나도 새로운 코딩의 세계에서 또 무수한 좌절감을 맛봤다. 눈에 띄는 성장이란 게 보이지 않으니 계속 제자리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괜찮은 한 해였다. 개인적인 성취도 성취지만, 앞으로 더 오래오래 함께할 인연들을 만나서 너무나 감사하다. 19년은 지금까지 함께한 사람들에게 잘하고, 함께하게된 새동료들과도 진득하고 오래가는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
2018년, 그래도 감사한 한 해였다. 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