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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Feb 21. 2023

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를 기억해

이별은 늦을수록 좋은 줄 알았어

컴퓨터 작업용 안경으로 바꾸고 워드를 켰다.

남편을 추억하기 위한, 아니 추억하는 거 말고 남편과 이별하기 위한 오늘의 단락을 써 본다.     





남편을 떠올리면 그날이 생각난다.

남편이 병원 진료를 받고 왔던 어느 날의 오후.

나는 병원을 잘 따라가지 않았다. 남편은 늘 혼자 진료를 보러 다녔고,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의 말을 간단하게 전달했다.

약물 치료를 시작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늘 같은 말이었다. 

인 조절이 필요해요. 칼륨 섭취를 줄이셔야 해요. 단백질도 적당량만 먹어야 하고요.

과일도 많이 드시지 마세요.

남편은 병원에 다녀오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항상 먹지 말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의사였고, 의사들은 늘 그렇듯이, 너무나 평온하게 환자의 병을 진단할 뿐, 마음은 또는 삶에 대한 진단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남편은 나날이 말라갔다. 신부전을 진단받고 나서, 먹지 말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생기던 식욕도 달아나기 일쑤였다. 원래도 식탐이 없던 남편이었는데, 큰 키가 무색하게 몸무게가 점점 줄어들어갔다.     

나트륨을 줄이는 식단에 익숙해지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약물 치료로 남편의 쪼그라든 신장이 버티고 있는 줄 알았다.         




 

그날 오후. 병원에 다녀온 남편은 역시나 침울했다.

나는 소파에 그와 나란히 앉은 후 조심스럽게 팔짱을 꼈다. 

남편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나 이제 투석해야 한다고 하네.”

한참 후에 남편이 꺼낸 그 말이 남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나란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둘 다 TV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큰 키만큼이나 커다란 손. 긴 손가락, 살은 없고 뼈만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여전히 따뜻한 그 손가락에 깍지를 꼈다.     

“투석 하자. 괜찮아. 내가 있잖아.”


나는 남편에게 희망이고 싶었다. 남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던 그날 이후로, 나는 그러기를 늘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나의 희망이지 남편의 희망이 되진 못했던 것 같다.     

남편의 상실감은 그때부터 더 커져갔다. 

야근 많이 하던 회사에서 나와, 2년을 집에 있으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우울하던 그가 나는 답답했었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사라져 가고 점점 자신 속으로 침잠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가 의지를 보여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직 어린 아들을 위해서라도 남편을 사랑하는 나를 위해서라도 스스로 문 밖으로 나와 주길 바라고 있던 시간이 있었다.


혼자 모든 감정을 감당하던 남편은 나와 그 감정을 공유하지 않음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있던 것이었다. 당시에 나는 그것을 몰랐다.

      

그랬던 남편이 다시 힘을 내기 시작한 건, 작은 물류회사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일을 하던 때부터였다. 

내가 자영업을 하면서 알게 된 단골손님 남편의 회사.

남편의 사정을 이해했고, 남편은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이라 회사 생활을 하며 인정도 받았고, 후배들도 따르는 사람이었다.

돈을 번다는 것 보다, 일을 다시 한다는 것에 조금씩 희망을 갖게 되던 날들.  

   

투석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은 그에게서 그런 자의적인 삶을 거두어가겠다는 선언인 것이었다. 의사들은 병을 볼 뿐, 환자의 마음이나 삶은 안중에 없는 것을 다시 확신했다. 

신장은 절대 나아지지 않고, 그렇게 서서히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죽음으로 가는 것을 이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은 자가 투석을 위해 병원에서 배에 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일상이 펼쳐졌다.     





남편은 늘 인내하는 사람이었다. 

머릿속으로 많은 상상을 하고, 상상했던 일들을 실천하는 나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

그런 남편이 처음엔 너무 답답했다. 연애를 하던 시절엔 너무나 생각이 깊은 나머지, 통화를 하던 중에 내가 던진 질문에 5분 이상 대답 없이 생각만 하던 때도 있었다.

자는 줄 알았다. 숨소리도 나지 않는 그 시간을 내가 견딘 것은 오로지 사랑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잘 견딘 것이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신중하고 또 신중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런 사람이 결혼 전에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너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어. 내가 결정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나는 어느새 그것들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면 너무 힘들어.”     

그랬다. 나는 성격이 급했고, 어떤 이슈가 생기면 결론을 내리고 남편에게 통보를 했고, 약속을 잡았고, 행동을 유도했다.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한 적이 없던 나였다.


나는 그의 그런 말을 듣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사실 기뻤다.

아, 이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드디어 말하는구나. 그리고 이렇게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화도 내지 않고, 삐지지도 않고, 내게 말하는구나. 나에게 말해주고 있구나.     

그런 남편과 결혼을 하고, 남편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남편의 속도를 이해했고, 나의 속도가 그에게 맞춰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이 견뎌내고 있는 시간들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고 했지만, 어느새 나는 그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음으로 공유해나가고 있던 것이다.

그 공유와 이해 속에서 나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걱정 마, 내가 있잖아.”

깍지 긴 손을 풀어, 나는 남편을 힘껏 안아주었다. 절대로 이 남자를 이대로 놓아줄 수 없었다. 

창 밖에는 해가 멀리 넘어가고 있었고, 우린 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마중 갔고, 시장에서 장을 봤고, 저녁밥을 지었다.     


그날 이후로, 더 바빠져야 할 나를 알았기에 마음속으로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널 지켜줄게, 남편.  

   

나는 그날의 남편을 기억한다. 

남편의 손에서 전해오던 온기. 늘 내 손을 굳게 잡아주던 믿음직함. 내 손을 꼭 쥐어주던 감사함. 

우리는 정말 괜찮기를 원했고, 그 마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말은, 그런 날의 말은, 생각보다 힘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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