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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Dec 31. 2023

어머니는 지금 세상과 이별 중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이별

 최근 시어머니의 치매 판정으로 온 집안 식구들은 당황하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순서인 것처럼 받아들이려고 노력도 한다.

 하지만 늘 곁에 있을 것만 같던 존재의 부재를 상상하면 그것처럼 슬픈 일이 또 없다.

 1년 전 남편과의 이별을 경험한 나는 남편 대신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부디 건강하셔서 오랜 투병 생활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아들에 대한 보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런 자식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무심히 이별을 결심한 것 같다.

 


 

 치매라는 것이 의지와는 상관이 없는 병인 것 같다가도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어쩌면 그건 스스로가 선택한 가장 잔인한 자살의 방법은 아닐까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 자살이 될 터였다.

 어머니의 기억은 현재에 없고 자꾸만 과거로 간다. 자식의 얼굴을 지우고, 이름을 지우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우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손자들의 존재를 지워나가는 중이다.

 시집왔을 때 힘들었던 기억, 가난한 집에서 많은 자식을 낳아 그저 잘 먹여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살았던 날들의 기억, 일흔이 넘어서까지 손자들의 보호자 노릇을 해야 했던 기나긴 세월. 그것들의 대한 무게만을 기억한다. 

 사람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기억들의 종류가 다를 것이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들에 대한 추억의 모양도 다를 것이지만, 내가 어머니를 보며 너무나 슬픈 이유는... 어째서 이 분은 다 잊고 있는데, 그 책임감만은 여전히 붙들고 있어야 하는가였다.

 모든 인지기능이 서서히 사라지고 몸을 가누기도 힘든 그 와중에도 이불 위에 머리카락, 부시래기 한 톨 있는 걸 보면 떼어내 버려야 하고, 곁에 있는 나를 향해 애들 올 시간 됐으니 밥통에 밥 있나 확인하라 하고, 창 밖을 보며 날씨가 좋으니 이불 빨아 널자고 하시는 어머니.

 어머니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 힘든 날들에 대한 의무는 도저히 잊히질 않는 모양이었다.

 그놈의 지긋지긋한 살림이 뭐 그리 좋다고 부여잡고 놓지 않으시는지. 그 모습을 보면 며느리의 입장에서도 안쓰럽기 그지없다.

 


 

 어머니는 그 힘들었던 시간을 필사적으로 놓으려 하는 중으로 보인다.

 너무 힘들게 살았다고,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제발 편안히 있고 싶다고 중얼거리면서도 밥통에 밥은 있는지, 방 청소는 했는지를 묻는 빌어먹을 습관들. 

 자식 다섯을 낳아,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힘들 날들에 대한 괴로움이 싫어 부디 놓여나고 싶은 그 마음이 너무 큰 어머니.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 만들었는지 묻기보다, 왜 어머니는 편안한 현실이 바로 앞에 있는 지금 그것들을 버리려 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크기만 하다. 힘들었던 날들에 대한 지배적인 기억으로 하루하루 모든 의지를 내려놓으며 보내는 공허한 시간들.

 어머니의 눈에는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는 반짝임이 없다.

 자식들이 돌아가며 부디 자신만은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에 수도 없이 이름을 묻지만 입을 꾹 다물고 모른다고 고개를 젓기만 하시는 어머니는 더 이상 우리들의 어머니가 아니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부모에 대한 후회만큼 절절한 건 없다. 철이 들기도 전에 돌아가셨던 친정엄마를 기억하면서 다시 과거로 가면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1년만이라도 내게 모든 걸 다해 주었던 사랑만큼이나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후회하며 산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후회는 늘 그렇게 내 가슴이 후벼 판다.

  지금, 어머니는 그때와는 또 다른 후회가 남을 것 같다. 어머니가 얼마나 소중했고, 얼마나 든든한 존재였는지, 또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해도 가 닿지 않는 지금. 이건 너무나 잔인한 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머니 자신에게도, 남겨질 우리들에게도 말이다.

 

 어머니는 가끔 막내 여동생의 곁에 가 계시다가 돌아오고, 결혼해서 살던 오래전 양평에 있던 강을 건너기도 한다. 도시에서 살고 싶던 어머니는 시골 중에서도 깡시골로 시집을 가서 해 본 적 없는 가마솥 밥을 했고, 군불을 지펴 방을 따뜻하게 해야 했고,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시댁에서 겨울을 나기도 해야 했다.

 나이 들어서도 절대 단독주택은 싫다던 어머니. 외딴곳에서 조용히 지내는 것은 무엇보다 싫었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알면서도 자식들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자식들의 뜻에 따라 환경을 바꿔야 했던 어머니의 소망은 그렇게 함께 늙어지고 말았다. 

 어쩌면 우리들은 모두 어머니의 의지가 누구보다 강한 줄 알기 때문에 견딜 것으로 믿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어머니는 당연히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자식들과 웃으며 잘 지내주길 무작정 바라고 있던 것도 같다. 혹시 그때부터였을까... 아니, 막내아들의 죽음 때부터였을까... 아니, 그것도 아니면 주변 친척 어르신들의 장례 소식 때문인것을까... 

 우리는 여전히 어머니의 기억에서 우리가 지워져야 하는 이유를 우리 자신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겁쟁이들이다. 철저하게 하나의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자식들을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와 아내로의 삶이 지겹고 지쳤을 것이라고는 말하지 못하는 못난 자식들이다. 그 말을 해 버리면 결국 우리는 남겨진 후, 살아가는 내내 아프고 슬퍼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겁하지만 우리는 침묵한다.




 어머니는 그런 우리들과는 아무 상관없이 자신의 삶과 이별을 하고 있는 중이다.

 힘겨웠던 날들까지 지워지면, 어머니는 바라던 대로 편안해질 수 있을까?

 생의 끝에 다다라 그 누구도 아닌, 오롯이 자신만의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는 어머니. 나는 어머니를 씻기고 기저귀를 갈고, 입에 죽을 넣어 드리면서 눈 안에 있는 공허함과 혼탁함의 저 너머에 부디, 어머니가 원하는 아름답고 찬란한 날들이 있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느끼고, 하나뿐인 며느리로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그분의 현재를 함께 하겠다고 생각한다.

 2023년이 이제 5분 남았다. 마치 어머니의 힘겨웠던 날들이 5분 남은 것만 같다.

 이별하는 데 절대 알맞은 때는 없는 것이 분명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인사가 누군가에게 가 닿을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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