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는 괜찮지 않아서
아침에 눈을 뜨니 햇빛이 너무 예뻤다.
그래서 그런 마음이 든 걸까.. 그래서 그런 기억들이 떠오른 걸까...
나는 인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복도 남편복도 그 밖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복도...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다.
팔자에 없다던 부모복을 생각하면
나는 아버지복은 없을지 몰라도 어머니복은 많은 사람이었다.
힘든 삶 속에서도 자식을 지키고자 노력했고, 자신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엄마의 모습.
국민학교도 나오지 못해서 홀로 글을 깨우쳤던 엄마가 책을 읽고 불경을 외고
아팠어도 쉬지 않겠다며 일을 했고,
청소 노동자로 살아도 건물주를 만나 직급을 얻어내던 그 당찬 엄마.
나의 좋은 술친구였고,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태도를 가르치던 스승이었던 엄마.
내게 사랑을 듬뿍 주어서 내 아이에게 받은 사랑을 듬뿍 줄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엄마.
나는 엄마복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사주를 보면 결혼을 하지 않아도 좋겠다고 했었다.
남편복이 없어서 혼자서 사는 게 결혼하는 것보다 이익이 더 많다고...
그런 내가 결혼을 하고 남편의 투병생활로 가장 역할을 했을 때에도
나는 결혼을 권장하는 사람이었다.
결혼에 있어서 중요한 건, 미완성의 인간이 또 다른 미완성의 인간을 만나
서로의 빈틈을 채워주고, 함께 생을 걸어가는 것.
내 남편은 늘 나와 이야기를 했고, 우리는 가장 좋은 수다 친구였다.
그로 인해 나는 채워졌고, 흔들리지 않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고, 행복으로 충만할 수 있었다.
남편이 생을 마감하고 홀로 남겨진 지금도 나는 결혼을 꼭 하라고 말한다.
잘 맞던 톱니바퀴는 남편의 죽음으로 틀어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여전히 잘 맞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내게 사람들이 남편복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복 있는 사람이었다.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내가 부르면 와 주는 친구들.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인연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지인들.
나를 믿어주고, 내 일을 믿어주는 고마운 사람들.
나는 이제 보니 더할 나위 없이 복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햇빛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마음이 감사로 가득 차고 벅차오르는 건.
이 예쁜 햇빛을 보면 사진을 찍고 싶어 진다.
주말에 만든 새 제품을 예쁜 바구니에 넣고 햇빛을 가득 담아 사진을 찍고 나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의지가 꺾이고 사는 게 참 힘들다 싶다가도,
오늘처럼 감성이 가득한 날 찾아오는 감사한 순간들은,
그로 인해 떠오르는 감사한 사람들은
또다시 나를 살게 한다.
이 어두운 터널이 분명히 끝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한다.
그것이 감사의 힘이라는 것을 이제야 안다.
나이 오십에, 이 소중함을 알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