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들어가며 : 여전히 길을 잃었지만, 이제는 길을 찾지 않는다.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다른 수많은 순간들의 퇴적 속에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순간들은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지나갔지만 섬뜩할 만큼 자취도 없다. 결정적 순간이 반드시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년기나 청년기 전체에 걸쳐 계속되면서 겉보기에는 더할 수 없이 평범할 뿐인 여러 해의 세월을 유별난 광채로 물들이기도 한다. "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을 때 산책을 나가는 편이다. 어떤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것을 좋아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걷는다. 길을 잃었기 때문에 산책한다. 산책은 어떤 말도 해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기꺼이 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갖춰 신고 운동화 끈을 다시 매고는 걷기 시작한다. 산책을 통해 담담하게 나의 현재를 위로 받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 따뜻하기만 한 문장보다는 나의 현재를 정확하게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정확한 문장으로부터 위로 받는다. 산책은 정확한 문장처럼 나를 위로한다. 길을 잃은 상태는 목적지 없는 산책을 통해 담백하게 형상화되고, 우리는 비로소 현재를 직시할 수 있게 된다.
삶이 길을 잃은 그 순간부터 삶은 무한한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선사했다. 그렇게 삶은 슬프고 아름다운 모순이 되었다. 길을 잃은 순간 다시는 원래의 길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저, 끊임없이 헤쳐나가야만 할 뿐이다. 이 단순한 한 문장을 알기 전까지 나는 계속해서 산책을 나갔다. 답답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길을 잃었다고 느낀 순간, 나는 코로나의 한복판에 있었다. 어쩌면 할 게 산책 말고는 없어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길을 잃었을 때 멈춰서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게 또 있을까? 나는 멈춰 서지 않고 계속해서 걸었다.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이 한창이던 시기를 틈 타 멀고 긴 산책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걷고 또 걷고 싶었다. 짧은 산책으로는 도저히 지금의 혼란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딘가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통장에 남아있던 돈을 탈탈 털어 2개월로 계획했던 여행은, 반년으로 길어졌고 또 일 년으로 길어졌다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은 그러므로 나의 방황을 담은 산책기이다. 글을 쓰면서 혼란스러웠던 시간을 세공하여 간직하고자 했으나, 여전히 그러지 못한 시간들이 더 많다.
속수무책으로 여행하고 산책했다. 내 주변의 누군가와 무언가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것만큼 내가 무력해지는 게 없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인생의 초반, 캄캄한 곳에 떨어져 어쩔 줄 몰라 시작해야만 했던 그 산책은 평생에 걸쳐 이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글은 완결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쓰겠다. 나는 다음 권으로 넘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