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애써온 수많은 것이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기대하고 믿었던 사람이 어느 날 너무나 냉소적인 눈으로 가슴에 구멍을 내고 그 구멍으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와 마음이 시리고 애리는 것 같았다.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고 아무렇지 않게 평화롭게 웃고 싶었다. 내가 쌓은 시간을 보상받으며 편하게 지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잊고 싶었고 무엇인가에 매달리지 않으면 미칠 것만 같았다.
공부... 합격만 한다면 다른 삶이 나에게 펼쳐질 것이니 지금 아픈 것이 괜찮다며... 합격만 한다면 이 시간쯤은 다 보상받고 남들에게 으스댈 수 있으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 그렇게 나를 위로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조금씩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시콜콜한 농담과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눈빛,
옅은 미소가,
함께하는 웃음으로
누군가 곁에 있다는 따뜻함이,
소소하게 나누는 차 한잔의 여유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안부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누군가 마음 담아 정성껏 준비한 식사와 나눔이
때로는 바람이~
맑은 웃음 같은 하늘이
구멍을 조금씩 메었다.
그래서 합격하지 않아도 이대로의 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안해졌으니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고. 합격하면 어떡하지 지금 이대로도 좋고 이곳을 떠나기 싫고 지금을 즐기고 싶은데...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고민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막상 불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오니 힘이 빠지고, 무엇을 해야 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어린양이 된 것 같았다.
잠잠히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지금의 노력이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 봐. 함께 웃고 즐거워했던 사람이 어느새 냉정하고 차갑게 변할까 봐. 고뇌하고 고군분투하며 애쓴 그 시간이 허무로 돌아갈까 봐. 마음 주고 정을 주었지만 그렇게 시간보다 못한 소원한 사이가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머뭇거리며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내 밑 마음. 그 마음들이 합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문득 노인과 바다가 떠오른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바다에 나가 자신의 배보다 더 큰 청새치를 낚는다. 이 청새치가 매달린 팽팽한 낚싯줄을 손에 쥔췌 몇 날 며칠을 땀 흘리고 사투한다. 그는 자신의 항구에 도달할 때쯤이면 어쩌면 상어에 물어 뜯겨 청새치가 남아있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알지만 절대 물러서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어두운 밤을 이기고 뜨는 해를 바라보는 것은 반복하며 고군분투한다. 마침내 항구에 다다렀을 때 그에게는 남아있는 청새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노인은 터덜터덜한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쓰러진다. 하지만 그가 잡았던 것이 청새치였든 상어였든 상관없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저 밑바닥부터 올라온 굳은 인내와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책에 나오지는 않았지만 다음장면을 상상해 본다.
아마도 노인은 며칠은 그렇게 쓰러져 있겠지만 이내 다시 일어나 이전이 경험으로 더 많은 준비를 하여 다시 바다로 나가지 않을까
노인이 바다에서 느꼈던 팽팽한 낚싯줄의 힘은 어느 누구도 느낄 수 없는 그만의 것이며 그 힘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지금 허탈하고 두려울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내가 쌓아온 시간이 지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여도
끝을 알 수 없는 그 순간에도 희망하며 매일의 시간을 보낸 나
포기할것이가 계속할것이가 매일의 싸움에서 이긴 나
작은 것들을 쌓아 올리고 기뻐하였던 내가 그런 내가 있는 것이다. 그런 내가 모여 나로 존재하는 것이니 지금도 충분히 멋지고 괜찮다 말해주고 싶다.
포기하지 않고 그 과정을 마쳤고 절망할 순간에 희망하며 매일매일의 삶을 잘 살아왔다고. 많이 애썼고 사랑하고 고맙다고.
어느 시간이든 허무한 시간은 없고 애씀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니 다시금 힘을 내어 일어나 바다로 나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