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의 입구에 쭉쭉 뻗은 아카시아 나무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봄이면 그곳은 아카시아 향이 입구초입부터 계단아래까지 퍼져 향긋한 꽃내가 가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고 기분 좋게 한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저마다의 초록색 나무와 잎들이 길을 감싸않아 어디에 눈을 두어도 푸르름이 가득하고 걸을 때마다 흙의 푹신함으로 걷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 길을 나는 좋아한다.
겨울의 황량함으로 내 마음도 말라가는 것처럼 느껴 봄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언제 봄이 오나 싶었는데 봄이 저만치에서 성큼 왔다. 연녹빛이 싱그러움을 머금고 꽃망울은 팝콘을 터트리는 계절, 새로움과 생명의 사이에서 오는 설렘과 기쁨은 찬란한 아름다움을 온 사방에 펼친다. 매일의 시간에 봄이 저만치씩 갈 때마다 봄이 가는 야속함을 저버리기 위해 봄을 더 즐겼다.
봄비가 오는 어느 날, 비가 내린다는 이유로 밖을 나가지 못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기에 우산을 쓰고 가기로 한다. 비는 걸어도 발이 젖지 않을 만큼 내렸고 공기는 쾌청하여 기분 좋게 걸을 수 있었다.
조용한 숲길 우산을 쓰고 비를 맞이하면 똑똑 물방울이 내게 인사를 하는 것 같고 숲은 비에 젖어 물기를 머금어 녹음은 짙어지고 향은 더 멀리 은은히 퍼져 내 코로 스며 가슴으로 내려와 마음에 스민다.
그렇게 숲을 즐기며 내려가다 입구에 핀 산벚꽃나무를 만난다.
벚나무 역시 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듯 꽃잎을 휘날리며 눈부신 아름다움을 내보이며 자신을 뽐내고 있다. 고개를 살며시 드는 순간 휘날리듯 꽃잎이 내손이 내려앉는다. 아름다움이 내게 전해지는 순간, 시간은 정지된 것 같고 감동이 물밀듯 올라온다. 숲이 전해주는 기쁨의 선물이다.
우산을 쓰고 나오지 않았다면 맞이할 수 없는 삶의 내게 주는 선물 그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파 책사이에 꽃잎을 말려본다.
긴 기다림 끝에 이 아름다움은 너무나 짧게 느껴져 좀 더 오래 지속된다면 참 좋으려만 하고 생각해 본다.
조성진이 한 프로그램에 나와 한곡의 연주에서는 클라이맥스가 있다고 한다. 피아노시모의 점정 여리게, 피아노의 여리게, 메조포르테의 조금 세게, 포르테의 세게 등등과 악세트의 특히 세게, 크레셴도 점점 세게, 데크레센도 점점 여리게 등 음의 크기의 변화로 재미도 있고 또한 잔잔하고 감미로운 연주가 있어야 그 뒤에 클라이막스는 더 빛나고 아름답게 들리는 것이다. 만약 한곡의 연주가 모두 강하게, 강하게만 연주된다면 어느 부분이 중요한지 가늠이 안 가고 힘을 잔뜩 준 연주에서 아름다움이란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한곡의 연주에는 클라이막스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연주를 음미하고 즐기면서 이를 기다리게 되고 클라이막스에 이르렀을때 감동이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일상에서도 기다림 끝에 오는 것들은 더 감미롭고 달콤하다. 1년동안 기다린 휴가는 마음을 여유롭게 하며 끝날 때 쯤이면 아쉬움을 항상 남기게되는데 이 아쉬움은 여운이되어 일상의 삶을 더 열심히 살아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기다림 뒤에 타는 놀이동산의 놀러코스터는 더 짜릿하고 강렬함을 남긴다.
때로는 겨울이 계속될 것처럼 느껴져 기다림에 기다림을 더하고 이내 온 봄은 그러기에 더 반갑다. 이 봄의 아름다움은 계속 언제나 함께 지속되기를 바라지만 쉽게 얻어지는 것, 언제나 계속 있는 것에는 아쉬움도 여운도 없고 그러기에 설렘, 기쁨도 덜할 것이다. 만약 봄이 1년 내내 계속되고 벚꽃이 오래도록피어 언제나 우리가 볼 수 있다면 이렇게 아름답다 느끼지 않을 것이다. 앙상하고 횡량한 가지 끝 기다림 뒤에 피어난 꽃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고 그 시간은 짧기에 더 귀한시간으로 다가오며 그렇기에 더 오랜 여운을 남긴다. 우리의 삶 또한 잔잔함 뒤에 펼쳐지는 리듬의 향연의 기쁨은 더 오래도록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황홀한 봄이 온다는 불변의 진리를 믿으며 봄을 기다리는 지금을 즐겨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