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죽을 권리

12. 차도

by 글마중 김범순
KakaoTalk_20250830_171624856.jpg

프랑스 센 강가 교회 지붕


K는 특실로 옮기자 퉁퉁 부은 눈을 잠깐씩 떠보며 편안하게 잠을 잤다.


시어머니는 모내기한다고 시골로 갔다. K의 형수한테 매일 너의 삼시 세끼를 해 나르라고 엄명을 내리고. K의 형수가 미역국을 끓여 왔다.


네가 미역국에 밥을 말아먹는데 K가 눈을 반짝 뜨고 입맛을 다셨다. 감격한 네가 얼른 다가가 물었다.

“밥 먹고 싶어?”

K는 찡그리며 아주 기분 나빠했다.

“당신도 조금 전에 점심 먹었잖아.”

K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아까 주사기로 먹은 게 점심이야!”

K는 에이! 하고 화를 냈다.


입으로 음식 먹은 기억이 없는 K로서는 분통 터지는 일일 것이다.


저녁 식후 약을 가져온 간호사가 엄마 해 보세요, 하니까 입만 크게 벌렸다.


학부모가 사 온 빵을 베어 먹으며 침대 곁을 지나갔다. K의 눈이 또 반짝하고 빛났다.

“이거 줄까?”

K는 있는 힘을 다 끌어모아 응! 했다. 처음으로 한 대답이었다. 너는 또 감격했다.


이렇게 나날이 회복하면 머지않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에 주치의가 보리차를 수저로 흘려 넣는 것을 보았던 너는 얼른 부드러운 크림을 수저로 떠서 K의 입에 넣었다. K는 쩝쩝거리며 아주 맛있게 먹고 혀를 내밀어 입술에 묻은 크림까지 핥았다.


K는 변비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며칠 전부터 변비약을 복용하고 인턴이 약물을 주입하면서 여러 번 관장했으나 소용없었다. 그때마다 K는 아오! 아오! 하고 비명을 질렀다. 기도가 뚫려 있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자 비명 지르는 K의 얼굴은 시뻘게지며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저러다 또 혈압 치솟겠다!


이럴 때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밖에 없었다. 손가락으로 파내는 것이다.


20일 넘게 대장 안에서 수분을 몽땅 뺏긴 똥은 동물 사료처럼 동글납작한 모양으로 단단하게 압착되어 좀처럼 떼어지지 않았다. K는 배변이 시원치 않자 사뭇 화를 냈다.


이제 너는 손가락에서 쥐가 나도록 똥을 파내는 게 주요 일과가 되었다.


며칠에 걸쳐 웬만큼 꺼내자 작은 똥 덩어리들은 약 올리듯 요리조리 네 손가락을 피해 직장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렸다.


K 대학 후배 유 선생이 동생을 데리고 왔다. 너는 K가 다 낫기라도 한 듯 신바람이 났다. 유 선생 남동생은 K의 고교 후배이면서 한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소문만 명의였다. 너는 유 선생한테 K가 편마비 되었다고 여러 번 한방 치료를 간곡하게 부탁했었다.


유 선생 남동생은 침착하게 진맥하고 두 시간 넘게 침을 놓았다. 그는 치료를 끝내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대학병원 입원실에서 치료하려니까 도둑질 같아서 더는 못하겠네요. 나중에 퇴원하면 댁으로 가겠습니다.”


너 역시 주치의나 인턴, 간호사가 올까 봐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2개월 병가 1년 휴직 처분이 났다.

모레부터 임시 교사가 수업을 맡는다고 했다.


쿵!

너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소식을 전하던 학교장과 서무과장이 그런 너에게 아무 걱정 말고 간호에만 전념하라며 위로했다.


병원에 온 지 22일 되는 날 아침 도뇨관을 제거했다. 요도에 도뇨관을 장기간 삽입하고 있으면 세균에 감염될 수 있어 불편하더라도 비닐 튜브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K의 몸에 붙은 무언가가 제거될 때마다 너는 희망에 부풀었다. 이렇게 나날이 회복하다 보면 머잖아 오른쪽의 마비도 풀려 학교에 출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K의 왼손은 아직도 침대 난간에 묶여 있다.

K는 끊임없이 왼손을 움직여 매듭을 풀었다.

너는 풀린 만큼 다시 묶고.


드디어 K가 여러 번 묶은 매듭을 모두 풀었다. 그러고는 코에서 위까지 삽입한 비위관을 잡아 빼버렸다.


긴장한 의사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의사가 비위관을 코에 넣으면 K는 삼키지 않고 기침을 하며 입으로 뱉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의료진도 힘들고 K는 더 힘들었다. 30분 넘게 고생한 끝에 간신히 위까지 넣는 데 성공했다.


K 식도에서 튄 피가 천장까지 날아갔다.


사흘이 지나자 K는 그렇게 호된 고생을 했으면서도 끈을 풀어달라고 계속 화를 냈다. 네가 튜브를 절대 빼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풀어주겠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했다.


왼손이 자유로워진 K는 축 늘어진 오른팔을 한동안 만졌다. 그러고는 몇 번 꼬집어보더니 조심스럽게 들어서 편안한 자리에 놓았다.


K는 약속한 대로 튜브를 빼지 않았다. 튜브 넣을 때 힘들었던 것을 잊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걱정스러워 너는 K의 허락을 받고 손을 묶어 놓았다.


95kg에 육박하는 K

50kg의 너


너는 기저귀 갈기와 시트 바꾸기가 가장 힘들었다. K는 이날 부터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번쩍 들었다. 한결 수월해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죽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