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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권리

14. 1985년 6월 4일

by 글마중 김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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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며느리가 만든 케이크


K가 처음으로 묻는 말에 응- 하고 대답했다. 아직 성대 기능이 덜 회복되어 힘이 없고 헝헝거렸지만 그래도 그게 어딘가?


아침 일찍 들른 주치의를 알아보고 K가 웃었다. 주치의는 굉장히 기뻐했다. 잠 못 자면서 치료한 의사로서의 값진 보람을 느끼는 순간일 것이다.


오전에 신경과 과장이 주치의와 인턴들을 데리고 회진 와서 K에게 물었다.

“병원에 온 지 대략 며칠쯤 된 것 같으세요?”

K는 대답하지 못했다. 과장이 목에 건 청진기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그럼 이게 뭐죠?”

청진기.

“이게 뭔지 크게 대답해 보세요!”

“청진기!”

“네, 아주 좋습니다.”


약국에 갔다 오는데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응급실로 들어갔다.


누가 또 죽음의 문턱에 있구나!


너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앵앵거리는 소리가 뇌수를 흔들었다. 그때마다 병원 앞에 있는 교회 첨탑을 보며 기도했다. 저 환자도 꼭 살려주십시오!


주사기에 미음을 넣으며 K한테 물었다.

“이 주사기 용량이 30CC야. 아홉 번 먹으면 총 몇 CC 일까?”

K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는 간단하게 줄여서 물었다.

“30 × 9 = ?”

K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70!”

“그럼 3 × 9 = ?”

“70!”

너는 호들갑을 떨었다.

“K 선생님 아주 잘 맞히셨습니다. 상품으로 맛있는 과일 주스를 드리겠습니다!”


음악이 듣고 싶다고 해서 오후에 친정어머니가 라디오를 가지고 왔다. 며칠 만에 K의 형도 오고. 돌아갈 때 친정어머니가 갈게 하니까 예! 하더니 형이 간다고 하니까 응! 했다.


관절 운동을 하는데 마비된 오른발이 왼발과 똑 같이 따뜻했다. 항상 차가웠기 때문에 신기해서 발바닥을 간질였다. 어제까지 아무것도 모르더니 간지러운지 화를 냈다.


어머어머 마비된 오른쪽도 다 풀렸나 봐!


기쁨에 들뜬 너와 달리 K는 계속 괴로워하며 혀를 찼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했다.

“그럼 똥 마려워서?”

“응.”


너는 사뭇 도망가는 동물 사료 모양의 똥 덩어리 4개를 간신히 끄집어냈다. 전날은 11개.


오줌을 두 번째 싸고 화를 냈다.

“왜 그래. 오줌 싼 게 자존심 상해서?”

K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오줌 마려우면 오줌해. 따라 해 봐 오줌.”

“오줌!”

그때부터 K는 오줌이라고 의사 표시를 했다.


K는 그날 미음 270CC 물 120CC씩 네 번과 두유와 과일 주스 200CC씩 두 번 주사기로 투여했다. 자주 사레가 들어 아주 곤혹스러웠다.


기저귀 갈기와 자세 바꾸기가 전날보다 훨씬 쉬워졌다.


집 떠난 지는 몇 달 된 것 같고

병원에 온 지는 2주일밖에 안 된 것 같다.


7월 7일 K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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