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1985년 6월 8일
작가 : 문경무
작품명 : 산토리니
처음으로 미음 대신 고기죽이 나왔다.
너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이제 링거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주치의가 잡고 일어나 앉는 연습이 필요하다며 끈을 매 주고 갔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했다. K는 끈을 잡아당기고 너는 뒷머리를 받치고 힘껏 밀어 반쯤 일어났다.
“아 - 구구!”
K가 어지럽다고 비명을 올렸다. 야호! 오늘 반쯤 일어났으니 며칠 뒤에는 앉을 것이다.
팔다리 운동을 해주며 네가 물었다.
“당신은 애들이 몇이나 있어?”
“셋.”
전날은 둘이라더니 하루 사이에 막내를 기억했다.
“작은아씨는?”
“둘.”
작은 시누이네도 셋인데 둘밖에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다.
네가 K의 손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지하에 가서 약 갈아올게.”
“응.”
“당신도 내 손에 뽀뽀해야지.”
K는 힘없이 너의 손을 끌어다 입을 댔다.
주치의가 말했다. 사업가인 VIP 환자가 미국에서 온다고. 3일 안에 특실을 비워야 한다며 2인실과 6인실은 없고 특실만 있다고. 너는 특실로 가고 싶었지만 K의 형과 시어머니 등쌀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망설였다.
1985년 6월 10일. K는 기운 없고 어지럽다며 밥을 달라고 했다. 주치의한테 연락해 점심에 밥을 받았다. K는 천천히 반 공기를 받아먹었다.
너는 밥만 먹으면 K가 다 낫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냥 넘어가는 죽과 달리 밥은 우물거릴 때마다 오른쪽 입가로 질질 흘러내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K가 오후 내내 괴로워해서 왜 그러냐니까 안경이 쓰고 싶다고 했다.
안경!
네가 화장대 서랍에 넣으며 다시는 못 쓸지 몰라 눈물짓던 안경이었다. K의 형수한테 부탁해서 안경을 가져왔다. K는 안경을 써도 앞이 잘 안 보인다고 더 괴로워했다. 이어서 팔다리가 안 움직이고 말도 잘 안 나온다고 비관했다.
괴로워하는 K를 보니 가슴이 무너졌다.
병원에 온 지 나흘째 되는 날 시어머니가 담담한 표정으로 너와 K의 형을 중환자실 밖으로 불러냈다.
”아무래도 살아날 가망이 없다. 딱해서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구나. 어차피 떠날 거 더 고생시키지 말고 편하게 보내주자. 어서 매형 매제랑 사촌 형 부르고 친척들한테 연락해라. 이대로 장례식장으로 내려가자꾸나! ”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네가 소리쳤다.
”어머니, 저는 살아있는 K를 관에 넣을 수 없어요!”
맞다. 그런 기막힌 대화를 나눈 날도 있었다.
뭐가 문제인가?
K가 살아있는데!
다시 괜찮아진 너는 전에 K한테 들었던 친구 이야기를 했다. 바람피우다 들통나서 아내를 상전처럼 모시고 산다는 내용이었다. K는 언제 괴로워했느냐는 듯 뱃살을 잡고 웃었다.
자기 전에 아래로 미끄러진 몸을 네가 힘껏 끌어올렸다. K가 왼쪽 다리에 힘을 주고 엉덩이를 번쩍 들자 쑥 올라갔다. 네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자 따라서 좋아했다.
1985년 6월 12일.
6인실이 비었다고 했다.
6인실은 아직 무리일 것 같았으나 그마저 누가 입원해 병실이 없을까 봐 K에게 이러저러해서 입원실을 6인실로 옮기겠다고 했더니 선선하게 그러하고 했다.
대답은 그렇게 했으면서도 6인실로 들어가자 K는 또 왜! 왜! 하며 너의 멱살을 잡고 침대를 부술 듯 몸부림을 쳤다. 다른 환자와 보호자들이 놀라 숨을 죽이고 너희 부부를 지켜보았다. K의 얼굴은 금방 검붉게 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K는 더 크게 소리며 탄식했다.
”아이고! 아이고!”
난동 소식을 듣고 온 주치의한테 특실로 옮기겠다고 하니까 벌써 다른 환자가 입원했다고 했다. 두 시간 넘게 괴로워하는 K를 보고 너도 소리 내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네가 운다는 말을 전해 들은 수간호사가 달려와 K를 보더니 펄쩍 뛰며 저대로 두면 큰일 난다고 우선 신경과 회복실에서 진정시키자고 했다.
회복실로 온 K는 편하게 잠들었고 이틀 뒤 특실로 옮겼다.
너는 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무능한 너를 용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