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죽을 권리조차
2023년 영국 거리에서
2025년 7월 9일. K와 50년 동안 살았다. K는 유난히 먹는 걸 좋아했고 언제나 잘 먹었다. 그랬던 K가 열흘 전부터 밥을 먹지 않았다. 밥과 국을 입에 넣으면 욱하고 헛구역질부터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유와 과일은 잘 먹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기운 없다고 밤낮없이 잠만 잤다.
네덜란드 사는 딸과 사위와 두 손녀가 1년 만에 왔다. K는 무척 반가워하며 사위와 같이 밥을 먹겠다고 했다. 큰아들 도움으로 간신히 휠체어를 타고 나와 식탁에 앉았다.
K는 딸네 가족과 먹은 아침을 끝으로 다시는 식탁까지 나오지 못했다. 식탁에서의 마지막 식사가 된 것이었다.
딸이 너한테 말했다.
“아빠 이제는 진짜 요양원으로 모실 때가 되었네.”
“질펀하게 오줌 싸고 성질내면 화가 치밀어서 요양원 생각 안 한 거 아니야. 몸집이 커서 기저귀 갈기도 힘들고 약을 한 주먹씩 먹으니까 오줌 묻은 시트에서 냄새가 진동해서 미치겠더라.”
“그러니까. 왜 사서 고생하냐고요. 엄마라도 건강해야지.”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요령도 생기고 완벽하려던 욕심을 버리니까 편해지는 거 있지.”
“엄마 큰아들이 무거운 아빠 들어서 힘겹게 휠체어로 옮길 때 얼마나 아슬아슬했는지 알아요? 저러다 크게 다치면 어쩌려고? 엄마 마음 하나 편 하자고 큰아들 고생시킨다는 생각은 안 해? 우리 집 희생양이야. 그만 좀 부려 먹어요!”
“아빠가 요양원 가기 싫다니까 이러지. 힘 닫는 데까지 내가 다할게.”
“이 상태가 아주 오래 지속될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겠어요?”
“감당하지 못할 정도가 되면 그때 요양원에 모시자.”
기적 같은 4년 전으로 사무치게 돌아가고 싶다.
네가 여행 가고 없을 때 K의 하루다.
시야 장애로 앞이 잘 안 보이고
편마비로 보행이 매우 불편했으나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신문 보고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고
레인지에 밥 데워 먹고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현관 의자에 앉아 보조기 신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
복지관 차를 탔다.
K는 매일 복지관으로 갔다.
사람을 좋아하고 친화력이 뛰어나
복지관 다니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오후 4시 반이 되면
복지관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와
비밀번호 눌러 현관문을 열고
의자에 앉아 보조기 벗고
옷 갈아입고
저녁 먹고
빈 그릇 세척기에 넣고
이 모든 걸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었다.
2025년 7월 9일의 K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와상환자다.
2030년 3월 13일 아침이 밝았다. K의 생일날이다. 너는 미역국을 끓이고 K가 좋아하는 부지깽이나물을 볶고 딸기를 씻어 상을 차렸으나 그 아침 K는 눈을 뜨지 않았다.
너와 55년을 살고 여든다섯에 훌쩍 떠난 것이다.
주변에서는 네가 희생했다고 하지만
K는 언제 어디서든 이렇게 말했다.
너를 위해 산다고.
K가 없으면 하늘이 무너질 줄 알았다. 세상이 텅 빈 것 같아 눈물은 났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소화가 안 돼서 병원을 찾았다.
위암 말기로 9개월밖에 못 산다고 했다.
너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고통은 지나치게 두려웠다.
딸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어떻게 지내?"
왠지 딸한테 미안해서 선뜻 입이 안 떨어져 더듬더듬 말했다. 위암말기라는 데 앞으로 찾아올 고통이 무섭다고.
딸이 선선하게 말했다.
"잘 아는 의료기관 있으니까 걱정 말고 얼른 네덜란드로 와요."
너는 부지런히 주민센터와 병원과 법원을 오가며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서류를 갖추었다.
2030년 9월 1일 오후 4시 비행기가 인천공항 활주로를 벗어나 하늘로 비상했다.
너는 몹시 아까웠다.
사후 장기 기증을 유전자가 같은 한국인에게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는 장기 기증률이 매우 낮아 기증자를 기다리다 생명을 잃는 환자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 10월 16일 심정지 상태에도 장기 기증이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듬해부터 시행되었다. 그랬음에도 장기는 여전히 부족했다.
그때였다.
구름밭에서 낯익은 가족사 상담사인 네가 나타났다.
“너는 끝까지 이기적이구나. 아이 셋을 산지옥에 빠트려 죽을 권리조차 없는 주제에 안락사하러 네덜란드까지 가시겠다?”
너는 아이 셋에게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자 또 너를 조롱했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 있니? 진즉 깨달았어야지!"
2035년 너의 고국 대한민국도 안락사가 합법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