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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Nov 30. 2023

고3 담임 앞에서 재수를 말하다2

내가 종수에게 어떻게 말을 꺼낼까 고민하던 차에 종수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때다 싶어 종수에게 차분히 말을 걸었다.


"그래. 종수야 수능시험 치르느라 고생많았어. 어떻게 결과는 괜찮은 것 같니?"

"......."


종수는 고개를 숙인채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이 어떤 의미인지는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한동안 답이 없던 종수가 이윽고 내게 다시 말을 건넸다.


"저.... 선생님. 사실은 수능 시험을 잘 못 봤어요. 처음 시험장 들어갈 때는 별로 긴장이 안된다 싶었는데 막상 문제지를 보고 시험이 시작되는 순간 시험지가 하얗게 보이더라고요. 글도 잘 안 읽히고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서 결국 문제도 제대로 못 푼 것 같아요. 시험 끝나고 나니 멍해지고 이후로는 내가 그때 왜 그랬나 후회와 절망밖에 안 들어요...."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2학기 때 하향추세였던 종수의 모의고사 성적을 생각 해보면 사실 애당초 잘 볼 것이라 기대하는 것도 무리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종수가 제대로 된 자기 실력 발휘조차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시험이 어려워도 최선은 다하고 결과를 받아들였다면 그나마 아쉬움은 덜 했을텐데......종수가 너무 긴장해서 문제조차 제대로 못 풀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종수야.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니?"

"글쎄요...지금은 앞이 너무나 막막해서 대체 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생각하고 있었던 수능 최저도 못 맞춰서 수시 쓴 곳도 다 떨어졌고 정시는 더더욱 안될 것 같아요.  1년동안 그래도 누구보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결과가 이렇게 나와서 솔직히 저 자신이나 세상이 야속하기도 합니다."


종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나의 고3 시절이 주마등 같이 떠올랐다. 그래.....종수야 수능(세상)은 결코 만만하거나 쉬운 것이 아니다. 그걸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던 사람이 20년 전의 바로 나였다.


"종수야. 솔직히 말하자면 선생님도 고3때 첫 수능은 실패했었단다. 선생님도 당시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했기에 진짜 열심히 했다. 너 사당오락이라는 말 들어봤지? 그걸 실천했던 사람도 나였다. 그때는 매일 열심히 하면 하늘이 감동해서라도 좋은 결과를 줄거라는 순진한 기대감도 있었기에 매일 잠 시간도 4시간 정도만 자고 매일 좋은 대학 합격시켜달라고 기도도 했었다. 그런데..... 막상 수능 결과는 비참하더구나. 그렇게 열심히 안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나보다 훨씬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좋은 대학에 합격해서 환호성을 지를 때 정말 세상이 왜 나한테 이러는건지 원망스럽더구나. 그동안의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간 것 같아 너처럼 고3 담임쌤을 뵈었을 때는 정말 서럽게 하루종일 울었단다."




종수는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말이지. 막상 그렇게 울어도 세상은 달라지는게 없더구나..... 그 때 내가 깨달은게 뭔지 아니? 결국 세상은 만만치 않다는거였다. 특히 나 같이 능력없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더욱 견고하게 다가오더라. 수능은 노력한다고 잘 나오는 것이 아니더라. 결국 실력을 부단히 쌓아서 시험장에서 내 실력을 증명해야만 한다는거. 또 그러기 위해서는 늘 독하고 간절한 마음을 품고 악착같이 준비하고 집중해야 한다는거. 그래야만 실력이 조금씩 올라가고 어느 정도 원하는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것이더구나."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다시 말했다.


"아마 지금은 종수 너에게 뭘 말해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 억울해서 지금부터 공부한다 해서 사실 당장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이고 허공에다 헛방망이질만 계속 하는 느낌일거다. 대학교도 다 떨어지니 지금은 그냥 모든게 막막하고 답답할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절망해도 내일 또 살아야 하는게 우리 사람이란다. 컴컴하던 눈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앞을 보고 전진해야 하는게 우리의 할 일이란다. 그건 대학을 합격한 아이든 재수를 하는 아이든 누구나 다 해당이 되는거란다. 지금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그냥 아무 생각없이 놀거라. 주말에 신나게 하루종일 영화만 봐도 좋고 어디 먼 바닷가에 가서 겨울바다도 둘러보고 오려무나. 아마 네가 찾는 길이 다시 조금은 보일거다."    


나는 계속 말을 이어나가던 중 종수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종수는 나에게 진심어린 조언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종수는 이후 주말에 가족과 멀리 여행을 떠나 정말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또 가족들과 이야기하며 내년부터는 다시 독한 마음을 가지고 새롭게 수능을 준비하기로 이야기 되었다고 소식을 전해왔다.



종수에게 올해 1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그저 실패한 한 해로만 기억될까 아니면 노력한만큼 많은 교훈과 시행착오를 겪었던 뜻깊은 한해로 기억될까?


나의 경우를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나 역시 수능을 다시 준비하면서 상당히 답답하고 좌절섞인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런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세상은 정말 만만치 않으며 그렇기에 더욱 매사 뭐든지 계획적이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는거. 그리고 내 능력으로도 안되는 것들이 많으며 때론 그런 것들을 깨끗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 또한 세상을 원망하기보다 그 세상을 받아들이고 좁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어떻게 나라는 자아를 실천하고 삶의 의미를 찾을지 늘 고민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나는 그런 힘든 과정 속에서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한층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종수에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내가 그랬듯 종수도 이 힘들고 아픈 과정을 잘 소화하고 이겨낸다면 그만큼 성숙하고 진정한 성인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종수의 밝은 앞날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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