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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동훈 Jan 10. 2024

당신도 충분히 '업셋' 할 수 있다.

10년 전 클럽에서 배드민턴을 배울 때 캐빈(가명)이라는 분이 한 명 있었다. 몸도 둥글 넙적하고 치는 폼도 초보티가 팍팍 났던 캐빈은 아무한테도 관심 받지 못했다.


너무 실력이 떨어지다보니 사람들은 캐빈과 배드민턴 치는 것을 시간 아깝다 생각했다. 클럽에서는 상급자들과 자꾸 쳐서 각자 실력을 한단계 끌어올리는게 목적이었지, 초보자를 가르쳐주러 클럽 다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캐빈은 준초보였던 나에게 매달렸다.


'제발 나랑 한번 쳐줘.'


캐빈의 간절한 눈빛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몇 번 응했지만 솔직히 귀찮기는 마찬가지였다. 게임도 안되, 실력도 안늘어, 재미도 없어, 나는 되도록이면 캐빈과 마주치지 않으려 하였다.


하지만 캐빈은 그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루 2시간씩 클럽에서 열심히 운동했다.


쳐주는 사람이 있으면 쳐주는대로 열심히 했고, 쳐주는 사람이 없을 땐 혼자 스탭 연습을 하면서까지 꾸준히 자기 실력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했다. 어느 날부터는 카메라를 가져와서 게임하는 자기 모습을 계속 촬영해 가기도 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서 자기가 친 게임과 폼을 복기하려는 의도 같았다.


그러든 말든 나는 저렇게 한다고 과연 얼마나 달라지겠나 생각했다. 아마 클럽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캐빈의 실력은 급속도로 늘고 있었다. 어느날 나랑 게임했을 때는 근소한 점수차까지 따라잡더니, 2주 뒤에는 역전을 해버렸고, 한달 뒤에는 도저히 내가 따라올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실력이 올라갔던 것이다. 그때부터 캐빈은 더이상 나를 상대로 보지 않고 오히려 나랑 게임치는 횟수를 줄여 나갔다.


업셋. 다른 말로는 언더독의 반란.


캐빈은 가장 낮은 위치에서 어느 순간 클럽에서 상급자로서 당당히 인정받는 수준으로까지 올라갔다. 특히 체육을 전공했던 것도 아니고 운동과는 도저히 거리가 멀어보이는 몸으로도 '사람이 하나에 몰입하여 진심을 다하면 이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구나' 캐빈은 보여주었다.


나는 그 이후로 누구나 노력하면 업셋 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그리고 이를 학교 아이들에게도 전파하고자 노력 중이다.


실제 이번 3학년 모 여학생의 대입 면접을 도와줄 때 일이다. 면접을 2주 앞두고 해당 여학생은 경직된 표정에 자신감이 너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면접에서 '필패' 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난 사람은 단기간에도 충분히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넣었다.


목소리를 크게 해라. 말을 할 때 마음을 차분하게 해라.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해라. 잠이 안오면 차라리 잠이 올 때까지 니가 적은 면접 노트를 봐라. 그리고 계속 연습해라. 면접장에 들어가기 전까지 계속 되뇌어라.


마지막으로


계속 니 모습을 촬영하고 피드백하고 또다시 촬영해라.


다행히 학생은 내가 주문한 많은 미션들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계속 자신의 모습을 촬영했고 부모님과 매일 면접 피드백을 하면서 연습 준비를 꾸준히 하였다고 한다. 덕분에 2주라는 그 짧은 기간에도 아이의 면접 실력이 계속 올라오는게 보였다.


괄목상대(刮目相對) 


실제 모의면접을 진행한 선생님들은 학생이 단기간에 굉장히 달라진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학생은 본인이 희망하는 대학에 최초합격을 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너무 기뻐 집안 잔치까지 열 정도였다고 한다.



그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어떠한가?


실제 나도 이런 업셋 가능성을 지금도 충분히 믿고 있는 편이다.


예전 글에 썼듯이 6개월 전부터 수영을 배우고 나인데 현재 상황을 잠깐 이야기하면 초급 시절부터 같이 배웠던 남자회원들은 지금 모두 다 그만뒀다. 아마 일상이 바쁘거나 단계가 올라가니 다들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나는 반대로 꾸준히 강습을 받고 매일 수영장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6개월이 지나 이제 중급단계에서 나는 수영을 '좀' 배웠던 사람들과 같이 강습을 받으며 가장 초보자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꿈꾼다. 언젠가는 업셋의 순간이 다가오기를. 그렇게 언더독의 반란을 완성하여 사람들이 나를 괄목상대로 바라볼 수 있기를. 


 그 순간을 꿈꾸며 나는 오늘도 열심히 팔을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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