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사색가라 부르겠어요.
내가 '좋아한다'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얼마전부터 스스로를 인간혐오주의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들의 공통점 중 하나은 나와 물리적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인데
그 중 한명이 나의 심리 상담 선생님이다.
그녀는 센서티브하면서도 유쾌한 면이 있다.
다방면으로 매력적인 사람처럼 보인다.
그녀가 내게 해주는 피드백은 주로 유효하다.
스스로를 다잡는 데 도움을 받기도 하고 내가 놓친 부분을 잘 잡아내어 준다.
(상담비용 10만원과 부가세 1만원이 아깝지 않을만큼.)
아마도 나는 그녀와 함께 서로가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가느다란 실처럼 이어져 있더라도 영영 놓치고 싶지는 않은 유형의 사람이다.
나는 센서티브한 사람이 좋다.
보이지 않는 서로의 선을 읽어주는 사람이 좋다.
언듯봐서는 무관심으로 보일 수 있는 적절한 거리감과
대면했을 때는 그보다는 포근한, 돈독한 분위기가 좋다.
그런 그녀가 내 말 허리를 끊어먹으며 말했다.
"사색이요."
앞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녀가 단번에 나를 사색가로 변신시켜 주었다.
방황하는 사람에서 사색가로 돌변한 나는 급하게 안정감을 찾았다.
어쩌면 나는 항상 정의되고 싶었던게 아닐까.
나는 정체성에 대해 항상 고민했고
안팎에서 찾아내고 싶어하였으며
그것이 보물상자같은 것이라고 여겼다.
결국 오늘날까지 작고 반짝이는 소중한 것을 손에 쥐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타이틀이 적당히 마음에 든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색가입니다.
제 머리통 안은 하루 종일 시끄럽죠.
그 목소리를 잠재우려면 시덥잖은 이야기를 들어 대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연애의 참견이라는 프로그램을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뻔하고 적당히 귀엽고 흔한 이야기들이 퍽 위안이 됩니다.
그걸 틀어두고 집안일을 하면 얼마나 좋게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사람이 된 것 같고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세계평화와 우주의 근원과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문제는 제 역량밖이거든요.
뭐, 그렇다고요.
퇴고없는 글을 쓰며 가뿐해지는 기분을 만끽하며
다시 엄마모드 스위치를 켠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