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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솔 Oct 17. 2022

의원면직일까지 열심히 일한 걸 후회합니다


 공무원 카페에 의원면직을 결정한 누군가의 글이 올라오면 댓글창엔 주로 '질병휴직 몰아 쓰고 남은 연차도 다 쓰고 나와라'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면직을 결심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인 상태일 테니 푹 쉬면서 스스로의 건강을 돌보는 게 낫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사실 공무원의 일이라는 게 그렇게 전문성이 있지도 않고 조직은 어떻게든 굴러가게 되어있으니 퇴직 예정자가 며칠 더 의자에 앉아있어봤자 팀 분위기만 뻘쭘해질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인사과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원면직이 처리되기까지 걸린 3주라는 기간 동안 반차를 한 번 썼고, 가끔은 야근도 했다. 그 당시 나에게 남은 연차는 8일이 있었고 진단서 없이 쓸 수 있는 질병휴직도 5일이 남아있었으나 나는 같은 과 사람들도 이틀 전까지 내가 면직하는 걸 몰랐을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이 일했다. 단언컨대 그건, 책임감 때문이 아니라 죄책감 때문이었다.  




 맞다. 나는 그 과에서 내가 일을 못하고 싹싹하지도 못해 팀 분위기를 망쳤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말알바를 한 기간이 도합 4년을 넘는 내가, 어딜 가든 일 잘하고 성실하다고 칭찬만 들어온 내가, 착하다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던 내가, 그곳에선 일도 못하고 성격도 이상한 '무개념 9급'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면직이라곤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일을 하는 건 내 속죄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참, 내가 열심히 일하다 떠났다는 사실을 본인들의 이익에 이용하려고만 할 뿐, 나에게 고마워하지는 않았다. 나는 의원면직일까지 열심히 일한 걸 후회한다. 바로 아래와 같은 이유들 때문에.




1. 너는 이것도 못 버티고 힘들어서 관두는 거지만 힘들어서 관두는 건 아니야


"세솔 주사님도 공무원이 첫 사회생활이죠?"


 그건 내가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은 말이었다. 맥락도 없이 불쑥. 같은 과의 A는 내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이번이 첫 직장생활인지 아닌지 A가 자신만만하게 물어볼 수 있던 이유를 추측하기란 어렵지 않다. 내가 공무원이 첫 직장이라 겨우 이 정도를 힘들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A는 행복해질 테니.


 나와 이전 근무지에서 함께 일했던 B는 내가 면직한 후 평소에 알고 지내던 A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고 한다. "A 주사님, 세솔이 힘들어서 그만둔 거예요?" 그리고 A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 세솔 주사님 힘들어서 그만둔 거 아니야. 다른 거 하고 싶어서 그만뒀어."


 둘만 있을 땐 나를 고작 공무원 일을 힘들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놓고, 바깥의 사람들에겐 혹시나 같은 팀 동료였던 본인의 평판이 나빠질까봐 내가 힘들어한 적이 없다고 말했단다. 대체 나는 일하느라 힘들었던 걸까 힘들지 않았던 걸까? 대답해주세요, A님.




2. 팀장님이 날 싫어했단 소리에 놀라던 C


 C도 B와 같이 이전 근무지에서 함께 일한 동료로, C는 연차가 제법 됐고 발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C 정도면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팀장님이 나를 세워놓고 소리를 지른 일이나 매일 아침 9시 이전까지 신문 스크랩을 시킨 일이나 어떤 민원인이 와도 나를 한번도 보호해주지 않은 일이나 뭐 그런 것들을.


 하지만 내가 면직 후에 C와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이런이런 일이 있었다고 고백하니 C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내가 조용히 나가주니까 다들 합심하고 입을 닫고있구나 싶어 정말 눈물이 찔끔 나왔다.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마지막날까지 민원인에게 쌍욕을 들어가며 버텼던 걸까?




3. "네가 내 자식이면 가만히 안 놔뒀다"는 D


 D와는 같은 과였지만 대화 한 마디 나눠본 적 없는 사이였다. D는 나이가 50대 중반 정도 되어보였는데, 나의 의원면직 공문이 뜬 날 갑자기 나를 찾아오더니 내 팔을 찰싹찰싹 때리며 위와 같은 말을 하더라. "네가 내 자식이면 가만히 안 놔뒀다."고. 


 그러더니 작은 목소리로 "내 아들은 시험 붙을 능력도 없지만."라 궁시렁거렸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만 해도 나에겐 관심이 없어 보이고 나와 시간을 보내주지 않는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그 덕에 얻은 게 많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20대가 넘은 자식의 삶을 당신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진 않으시니까 말이다.




 이러이러한 일들을 겪고 난 후 나는 내가 뭣하러 며칠을 더 고생하고, 그 며칠간 겪은 트라우마 때문에 아직도 고생하는 길을 택했나 후회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런 일들을 겪은 덕에 지금의 회사에서 사람들끼리 갈등을 겪는다 해도 웬만한 일들은 다 넘길 수 있는 '안온함'을 얻게 되었다. 말하자면 이런 상태랄까. '하하. 그때에 비하면 이건 천국이지, 암.'


 그렇다고 의원면직을 앞둔 공무원들에게 나처럼 열심히 일하다 나오라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고마워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데에 비해 당신이 얻게 될 고통은 아주 클 게 분명하니까. 그러니 퇴직하기로 결정했으면, 본인만 생각하시라. '다들 못 들어와서 안달인 조직'이라니까, 나 하나 며칠 일찍 나간다고 엄청난 민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이상 공무원이 마지막날까지 열심히 일하면 어떤 일을 겪는지 알고싶은 분들께 이 글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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