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사진가 에릭 요한슨의 작품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요한슨의 작품이기도 한데요, 작품 제목은 <Full Moon Service>, 그러니까 ‘보름달 서비스’ 정도가 되겠네요.
사진에는 두 인물과 여러 개의 달이 등장합니다. 어떤 달은 비교적 밝고 어떤 달은 비교적 어둡습니다. 어떤 것은 붉은빛 달을 표현한 것인 듯한 반면, 어떤 것은 반달을 표현한 것인 듯하네요.
과학을 배우기 전에도 우리는 밤하늘의 달 모양의 변화는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매번 모양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모양을 되찾는 달의 변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의 동심은 ‘달의 모양은 누가 바꾸는 것이지?’하는 질문을 던졌을지도 모릅니다.
요한슨은 그 동심이 던져주는 재미있는 상상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가 어렸을 적에 던졌던 ‘달의 모양은 누가 바꾸는 것이지?’라는 질문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물론 이제는 그 역시 달의 모양이 바뀌는 과학적인 이유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온전히 그의 상상력만으로 순수한 질문에 대한 순수한 답변을 내밀어 보입니다.
정말로 달의 모양을 바꿔주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그는 사진을 찍습니다. 요한슨의 홈페이지에 업로드된 ‘Behind The Scene’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이 사진에서 ‘달 집배원’들이 집고 있는 것은 커다란 공입니다. 그 공의 자리에 빛과 그림자의 모양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끔 달의 사진을 합성한 것이지요.
이처럼 요한슨은 순간의 사실들을 조합하여 환상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그의 사진은 ‘초현실주의 사진’이라고 불리죠. 재미있지 않나요? 가장 사실적인 장르인 ‘사진’으로 가장 환상적인 장르인 ‘초현실’을 만들어내니 말입니다.
한 작품 더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위의 작품과 유사한 동심에서 나온 질문이 만들어낸 사진입니다. 요한슨은 ‘달의 모양은 누가 바꾸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달 모양을 바꾸어 주는 달 집배원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이번에는 ‘낮과 밤의 하늘은 누가 바꾸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시계를 보며 낮과 밤을 바꾸어 주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와 너무 많은 것을 당연시하며 살아갑니다. 분명 처음에는 달의 모양이 바뀌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하늘이 어두워지고, 다시 또 밝아지는 것이 새롭고 신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금방 그것에 적응하고, 이에 과학적 지식까지 더해져 의문 없이 굳혀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차 궁금한 것에 환상적인 답변을 내놓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과학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현명한 삶을 위해 과학은 꼭 배워야 하지요.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한 곳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은 아닐 것입니다. 막스 뮐러의 말처럼, “하나만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니 말입니다. 사실과 환상을 구분할 줄만 안다면, 환상은 매력적인 도구가 되어줄 것입니다.
우리를 제한시키는 유일한 것은 우리의 상상력이다.
우리의 생각의 창을 한 곳에만 뚫어두지 말고, 이곳저곳으로 넓혀나가는 것은 어떨까요? 요한슨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상상력이 우리를 제한할 수 없게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