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은 산림을 가리키는 말이면서 ‘예(濊)족’을 가리는 말임을 알았다. 그런데 예족이 일어난 땅이 가섭원과 같이 산림이 우거진 곳이었다면 예족(濊族)이나 산림(山林)은 전혀 다른 뜻을 나타내는 말이 아닐 것이다. 한편, 오늘날 경상도, 전라도, 충남의 남부, 강원도 등지에서는 ‘가스나’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가스나는 가시나 혹은 가시내라고도 하는데, 북한 지역에서는 이 말을 ‘간나(갓나)’라고 한다. 이 모두가 '여자'를 가리켜 쓰는 말이다.
유창돈은 《이조어사전》에서 ‘가사ᆡ’를 ‘女子의’라고 풀이하고 있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의 “가사ᆡ 樣 무르시고”이라는 구절의 ‘가사ᆡ’를 ‘갓+아ᆡ’로 분석한 셈이니, ‘갓’을 곧 ‘여자’라는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또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의 “그 가싀엄의 ᄭ굼에”라는 구절은 ‘그 丈母의 꿈에’로 풀이하여 ‘가싀엄’을 ‘갓+의+엄’으로 분석해 놓았다. 여기서도 ‘갓’은 ‘여자’ 혹은 ‘아내’의 뜻을 담고 있다.
또 가스나의 중세 한국어형은 16세기 문헌에 보이는 '가사ᆞ나하ᆡ/갓나하ᆡ'이다. '가사ᆞ나하ᆡ'는 '가사ᆞ간+아하ᆡ'로 분석된다. ‘가사ᆞ간’의 기본형은 ‘가사ᆞ다’일 가능성이 큰데, 실현된 형태는 ‘가사ᆡ다’이다. 현대 국어의 ‘가시다’에 대응된다. 가시다는 두 가지의 뜻을 지닌다. 하나는 ‘갈증이 싹 가신다.’와 같이 어떤 상태나 기운이 없어지거나 달라진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그릇을 가시다’처럼 물 등으로 깨끗이 씻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사나하ᆡ’는 궂은 티가 말끔히 씻기어 깨끗한 혹은 깨끗해진 아이라는 뜻이다. 씩씩한 아이라는 뜻을 지닌 중세어 사ᆞ나하ᆡ(사ᆞ간+아하ᆡ)가 이와 대응되는 말이다.
그러니 가사ᆞ나하ᆡ가 처음부터 ‘여아(女兒)’라는 뜻을 지닌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어떤 연유 때문에 ‘갓’ 혹은 ‘가사ᆞ간’이 ‘여자’라는 뜻을 품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갓’이 옛날부터 ‘산림’이라는 뜻을 담고 있었고, 또 그런 곳에 삶의 터전을 닦고 문명의 꽃을 피운 ‘예족(濊族)’을 가리키기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예족에게 범 토템 신앙이 있었던 것은 여러 사료가 증명해준다. 호랑이의 서식지와 생태를 감안해 볼 때, 이것은 예족이 산림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단군 이야기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곰 서낭을 믿었던 겨레(貊)는 북녘에서 들어온 선진 겨레와 손을 잡지만, 범 서낭을 믿었던 예족(濊族)은 그들의 전통 서낭을 지켜냈다.
그 믿음은 ‘갓’을 거룩하게 여기며 떠받드는 신념에 뿌리를 두고, 겨레의 힘을 모으고자 한 데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갓’의 임자인 ‘범’을 서낭으로 모시고 자신들의 미래를 축원하면서 내부 단결을 도모하였을 것이다. 그들에게 ‘갓’은 거룩한 세계요, ‘범님’은 그곳을 주재하는 거룩한 서낭이었을 것이다.
이 사실은 현재 러시아 연해주 북쪽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부리야트부족의 무신이 호랑이라는 데서 어느정도 증명된다. 게다가 이 지역 일대가 옛 동부여의 강토였다는 역사적 사실은우리를 더욱 현혹한다.
바로 그 지점에 여사제 습속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글쓴이의 짐작이다. 만일 그랬다면 적어도 예족의 여사제는 곧 ‘산림의 아이’가 되는 것이고, 그 아이의 성별은 여자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가사ᆞ나하ᆡ’는 ‘가사ᆞ간 아하ᆡ’로서 산림의 딸, 서낭의 아이, 곧 몸과 마음이 깨끗한 여아라는 뜻으로 확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중세국어에 와서 ‘갓’은 ‘여자’라는 뜻을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이 단어 자체가 없으며, 표준어 '가시버시', 제주 방언 '가시-(처-)'에 흔적이 남아 있다. 이로써 ‘가사ᆞ나하ᆡ’는 ‘여아(女兒)’라는 어원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가스나'는 남부 방언의 전설모음화로 인해 발음이 ‘가시나’로 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표준말은 아니지만 일부 남도에서는 동물을 교미시킬 때에 ‘갓붙이다’라는 말을 쓰는데, 여기서도 갓이 여자를 이르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노녘 땅에서는 갓나이라고 하면서 ‘갓’을 쓰고, 마녘 땅에서는 가시나라고 하면서 ‘가시’를 쓴다. 또 중세어 갓어리는 계집질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요즈음엔 이미 죽어 사어가 된 지 오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