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3~16장 <남해읍성과 귀양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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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에 들어오니 작은 성이 있는지라. 북문으로 들어 관문을 자나 성 남문으로 나가니 관가 하인 하나가 와서 주인을 잡았으니 가자 하고 가르치는데, 말을 모라 바삐 가니 주인의 자식 아이놈이 마중 나와 강포한 소리를 하고 집을 막기를 심히 하니 바다 섬 인심이 극악한 줄 들었던 것이지만 소견에 극히 이상하고도 놀랍고, 우기려 들면 이상한 언행이 있을 듯싶기에 그 아이 꾸짖지도 않고 내 종에 당부하여 아이 말을 들은 체도 말라 하고 말 머리를 돌이켜 남문 밖으로 도로 와 임시 처소에 앉고, 관가 하인을 불러 말하기를 내 귀양으로 이리 왔더니 보수주인을 관가에서 정하여 맡기는 것이 법이니 주인을 정하여 달라고 하니 남문 밖 백성 김시위의 집으로 정하여 주어서 그리 가니 김시위는 잡소리를 아니 하고 좋게 대접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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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처소에 앉아 있을 때 참판 정광충이 급히 와 보고 이전 못 본 사연하고 그자는 패부진(임금이 불러도 나가지 않는 죄를 짓는 일) 하고 왔으니 새로 오는 이는 무슨 사연인가 묻고 그자가 머물기는 북문 바깥이니 나더러 북문 밖으로 옮아와 이웃하여 지내자고 하니 내 대답하기를 내 수찬 벼슬을 하여 한 번 사직 상소도 못하고 즉시 나아가지 못할 까닭이 있었기에 패부진하였더니 이 땅으로 자리에서 쫓아내라는 어명이 있었기에 이리 왔노라 하고 내 숙소는 관가에서 그리 정하여 주었으니 어찌 친구와 상종하기 위하여 고쳐 옮기겠는가 하니 정 참판이 대답하기를 성남, 성북이 많이 멀지 않으니 서로 상종이나 자주 하자 하고 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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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나와 보고 저녁밥을 하여 보냈길래 사양치 못하여 먹고 관가에서 통인과 사령과 식모를 보내노라 하고 이전의 다른 유배객들도 이 하인들을 빌어 부리더라 하거늘 내 생각하니 옛적 선비 장자들이 적소에서 이런 하인 부린 일이 있으니 나도 못 할 일이 아니지만 내 심부름꾼 한 명이 있으니 족히 심부름할 것이고, 밥은 주인이 할 것이고 또 이전에 들으니 우리 계구 한공(외숙 한억증)이 옥당으로서 안주 귀양 가실 때 관 하인 빌어 부리지 않았다 하였으니 나도 사양하고 부리지 아니하니 혹 답답한 적도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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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울서 길 떠나올 때 급하기 약간 행자(노자)를 가지고 왔으나 행로 구간이 특심한지라. 여러 고을을 지나고 아는 수령이 혹 있어도 구걸하는 혐의 있을까 하여 한 곳도 전갈하여 오노라 말을 알리지 아니하고 어음 새벽길이 있어도 횃군도 빌리지 아니하더니 충청감영과 전라감영에서 (내가) 지나가는 줄 듣고 주막으로 나와 보고 신행 착실히 하기에 받아 오고 남원에 들어오니 원은 출장 가고 관아에 있는 손이 이전 원의 아내의 사촌인 줄 알고 주막으로 나와 보고 남해까지 갈 양식과 행자를 챙겨 주니 받아 왔지만, 사촌 누이동생을 생각하니 이전 서흥과 원주에서 놀던 일이 어제 같건마는 인세 변하였으니 마음에 측연하더라. 남해 들어온 후는 경상감영에서 보낸 것으로 지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