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다는 것
부모님께 백과사전을 처음 받았은 시절이 기억난다. 동물, 사람, 자연현상 등 주제가 다양했으며 자세한 풀이와 이야기가 있어 좋았다. 두꺼운 두께는 들고 다니기 힘들었으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찾아보는 재미는 있었다.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다른 출판사의 백과사전을 사야 했다. 문제는 알고 있으나 답을 찾는 과정이 늘 고역이었다.
그래서 많은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하루에 많아야 몇 개, 일주일에 몇십 개가 고작이었다. 내가 찾은 답은 비록 남들만큼 많지도 않고 그 깊이가 얕으나 그때 찾은 답의 내용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고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세상 살면서 주변에 똑똑한 친구 한 명씩은 있을 것이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수준의 광활한 지식과 언제나 명쾌한 대답을 하는 친구. 그 친구의 지식의 한계는 곧 나의 한계였다. 나보다 많은 책을 읽고 나보다 많은 경험을 한 그 녀석을 통해 나도 세상의 견문을 넓히는 시절이 있었다.
컴퓨터를 사고 접하게 된 인터넷... 이제 답을 찾기가 수월해졌다. net이라는 온라인상의 거대한 그물망에 온갖 정보가 다 들어가 있다. 그 그물망 안에서 내가 원하는 답은 어지간하면 다 찾을 수 있다. 하루에도 검색해 보는 질문이 수십 개가 넘으며 답을 처리하는 속도는 비교도 안되게 빨라졌다.
재밌는 건 그물의 크기는 무한정이며 답을 얻은 사람이 언제든 그물 안에 자신의 정보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되었다. 신빙성 있는 정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정보도 많아졌다. 따라서 질문을 잘 던져야 좋은 답을 건질 수 있다. 예전과는 반대로 답을 구하기 위한 과정에 드는 시간보다 답을 얻기 위한 질문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
Chat GPT가 이슈다. 어떠한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는 걸 떠나 잘 대답해 준다. 그야말로 우문현답... 질문이 아무리 개떡 같아도 찰떡 같이 알아듣고 대답해 준다. 시도 지어주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아무리 모르는 분야도 이 친구가 대답해 주는 답으로 적으면 전문가 행세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정말 편해졌다. 질문도 답도... 누군가 대신해주는 것. 그게 우리가 편해질 수 있은 이유다. 예전엔 내가 모르는 분야의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의 지식을 책으로 접하고, 나 대신 누군가 대신 던져 놓은 정보를 가득 담아 놓은 인터넷에서 답을 구했다면 이제는 질문도 답도 '알아서' 해주는 챗봇이 나왔다.
편해지는 것. 누군가 나의 수고를 대신해주는 것. 그러나 내가 스스로 해야 할 부분까지 편해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단편적 정보와 생각이 난무하고 생각의 깊이와 이해를 더하기를 불편해하는 세상이 될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