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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파스 Y Dec 04. 2023

스토브리그

국대를 지냈다 해외용병으로 돌아온 로버트길의 서사

처음 메로나를 먹었을 때의 충격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너무 맛있어서 한 번에 4개나 사 먹고 배가 아파 화장실에 간 것도 그렇고...

실은 나는 무엇이든 하나에 꽂히면 질릴 때까지 하는 편이다. 이 와중 건축은 해도 해도 질리지가 않아 참 다행이고..ㅎㅎㅎ


암튼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한번 보고 재밌으면 몇 번이고 본다. 나의 아저씨도 5번 이상을 봤고 이번에 다루는 스토브리그도 그렇다.


팀을 재정비하는 기간이라 하는 스토브리그 중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다루는 만큼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해외용병 영입 에피소드다.



가이드를 하러 나온 덩치 좋은 사나이.

통역을 하는 내내 선수들이 아는 용어와 전문지식에 대한 디테일이 있고 손을 잡아보니 투수손인 이 남자의 이름은 길창주. 미국에선 로버트길이라 불린다.


가이드를 마치고 연습 중인 길창주를 발견한 운영팀장 이세영. 잠시 나온 단장 백승수도 함께 이를 목격한다.

가뜩이나 적은 예산을 가지고 시작한 이들은 미리 점찍어둔 용병을 다른 팀에게 먼저 빼앗기고 그렇다고 썩 마음에 드는 선수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불같은 강속구를 원하는 곳에 던질 줄 아는 능력. 딱 이들이 찾던 선수다.


잠시 얘기를 나눈다. 길창주 선수는 병역기피로 인해 국내여론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야구위원회에서도 영구정지를 먹은 상황. 그는 메이저리그에서 합당한 성적을 받고 사람들을 납득시켜 한국에서 활동하길 원했다.

그러나 병역기피의 이유는 단순히 선수생활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당시에 사랑하는 아내가 아픈 상황이었다. 신장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한국엔 대기자가 너무 많은 대신 상대적으로 적은 미국에서 수술을 받는 것이 좋았고 그러기 위해선 미국국적을 취득하는 것이 이로웠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상황을 그냥 얘기해도 됐었다. 그럼 한방에 시끄러운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내를 방패막 삼아 자신의 위신을 안위하는데 이용하고 싶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아내를 위한 자신의 선택이었고 아내가 핑곗거리로 전락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 싫었을 것이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길창주 선수. 아내는 인형에 눈을 붙이고 있었다. 여의치 않은 집안 상황. 아내는 자기 때문에 야구를 못하게 된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이 비록 단순하지만 무엇이든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는 것이다. 비록 만삭의 몸이 되었다 해도 말이다.

이런 아내의 마음을 아는 길창주도 때를 기다리며 낮에는 가이드, 밤에는 묵묵히 훈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면을 먹고 싶다는 핑계로 단장과 일행은 길창주의 집으로 갔다.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보기 위해 그가 사는 공간을 천천히 둘러본다. 라면을 담은 용기에 흠이 있다며 바꿔주겠다는 길창주. 백승수는 먹는데 아무 지장 없다며 맛있게 먹는다. 흠 없는 사람 없고 길창주에게 있는 흠이란 사람들에겐 밝힌 순 없지만 정말 합당한 이유가 있기에 결국 정말 아무 문제없다는 뜻이다.



야구협회에 영구정지 철회를 요청하고 이미 8년 전에 해제 됐다는 통보를 받은 백승수. 그대로 협상을 진행한다. 그러나 망설이는 길창주. 이유는 아내와 얽힌 사연을 밝히지 않은 채 국내 여론을 잠재울 힘이 없다는 이유다. 백승수는 말한다.

"길창주 선수. 절실할 이유가 정말로 없습니까?"

자신의 화려했던 과거는 이미 잊은 지 오래고 지켜야 할 사람을 위해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들어온 제의는 정말 그토록 원하는 기회였지만 아내를 내세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망설인다. 그러나 결국 지켜야 할 사람이 늘어났고 그에 따른 절실함과 간절함이 앞서면 이깟 비난 따윈 아무래도 좋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말한다. 단장이 계약을 제의했다고 다시 야구할 수 있게 됐다고. 아내는 울며 말한다. 자기 때문에 야구 못하게 될까 봐 정말 무서웠다고.

그래 이거다. 서로에 대한 미안함을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보냈던 고생의 나날을 이제야 보상받게 된 것이다.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오다 한꺼번에 보상을 받게 되자 오열하는 길창주와 아내 ⓒSBS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기자회견 당시 백승수의 말발이었다. 내내 다그치듯 길창주를 이끌고 온 것처럼 보이지만 기자회견 장면 아니 대사를 들어보면 얼마나 길창주 선수를 위하는지 알 수 있다. 기자회견에서 길창주 선수의 아내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모든 질문에 역공을 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끝까지 아내를 지키고 싶어 하는 길창주의 마음을 깊이 있게 헤아려 준 것이다.



예전에 추신수 선수가 한 프로그램에 나와 들려준 사연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마이너리그에서 정말 많은 고생을 했는데 아내는 혼자서 첫 아이를 출산했고 그것도 스스로 운전해서 병원에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다. 물론 산후조리원에 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집으로 왔다는 것. 그리곤 마사지 자격증을 따서 매일 훈련 후 돌아온 남편을 위해 마사지해주었다는 것이다.

이 얘기를 들은 남편들은 말한다.

"봐라, 추신수 아내를. 얼마나 대단하냐 너도 저렇게 해주면 내가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는 말한다.

"당신이 추신수만큼 벌어와 봐. 내가 마사지가 아니라 더 한 것도 하지."


하지만 인터뷰에서 밝힌 추신수의 사연은 저런 대화를 무색하게 만든다. 아내가 눈이 안 좋아 심각한 상황까지 갔을 때 추신수는 주저 없이 필요하면 내 눈을 줄 테니 걱정 말라했다는 것이다. 야구를 정말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던 추신수가 아내를 위해서라면 다시는 야구를 못하게 되더라도 언제라도 자신의 눈을 줄 수 있는 그 마음이 있다는 것. 늘 고생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


아내는 돈을 잘 벌든 말든 그저 사랑하는 남편이 좋아하는 야구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출산도 혼자 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자 마시지를 시작했으며 기왕 하는 거 더 잘하도록 자격증도 딴 것이다.


결국 추신수나 길창주나 상황은 다르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은 똑같다.

결국은 서로를 위해 했다는 것. 마이너건 메이저건 상관없이 그저 서로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왔을 뿐이다. 서로를 핑계삼지 않는 것.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내가 너 때문에, 혹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 데가 아닌 말하지 않아도 헤아려주고 자신의 최선을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 우리는 이런 관계가 절실하다.

정말로 절실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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