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정한온기 Dec 13. 2021

문과 아내의 기억력













내가 길을 걷다가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다. 영화에 나온 음악이었는데" 무심코 지나가는 건물 옆에서

"여기 우리 왔었는데 그때 당신은 통 넓은 청바지에 하얀 남방을 입고 있었는데 기억나?"

한참 전에 갔던  여행 때와 같은 숙소에서

"그때 우리 여기에서 크게 싸웠던 거 기억나? 우리 하루만 더 놀다 가려고 급하게 다시 숙소 잡았는데 엄청 저렴하게 잘 수 있었는데 기억나?"


그리고..


"기억나? 우리 여기에서 뜨겁게 사랑했었는데...."

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걸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은 부부가 되었다.

슬프기보다 이게 수순인가 다들 이렇게 지내는 거겠지 라며

나를 애써 위로했다.  그러면서 들여다본 거울 속의 내 모습에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은 속으로 넣어둔 채  난 남편에게 말했다


" 여보 나 참 많이 늙었지?"


흰머리는 이제 듬성듬성 이 아닌 앞쪽에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고 마스크를 써서 인지 얼굴 아래쪽보다 광대뼈 위쪽으로 기미가 유난히 도드라진 내 얼굴,젊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때의 마음과 느낌은 잃고 싶지 않을 뿐인데 스스럼없이 우리의 사랑을 이야기 하기에는 이제 스스럼없지가 않다. 밥 먹여주는 기억도 아닌데 뭘 이렇게 기억 속에 쌓아두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나도 그냥 좀 잊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고 싶은 날이네 나만 기억하고 동반자의 기억에서는 희미해져 가고 있는데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