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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Dec 21. 2021

지속 가능한 크리스마스에 대한 생각

크리스마스 시즌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

우리 가족은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는 집이라, 어렸을 적 호기심으로 몇 번 가 본 교회가 나의 종교활동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딱 한 해 크리스마스를 교회에서 보냈는데, 여전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교회에서 했던 활동들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성가복을 입었던 게 생각나는 것을 보면 성가대도 했던 모양이고, 크리스마스 특별 예배를 위한 연극에서 어떤 역할을 맡기도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인상이 썩 나쁘지만은 않았다.


교회를 몇 번 나간 것과는 별도로 크리스마스에 대한 우리 집의 철학은 나름 확실했다. 예수가 탄생한 날은 (종교가 없는) 우리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에 특별한 날로 대하지 않았다. 머리맡에 양말을 두고 선물을 몇 번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흔하디 흔한 크리스마스 데코도 없었고, 크리스마스 케이크도 가끔 가다 살까 말까, 필수품 같은 것은 아니었다. 딱 한 번 집에서 크리스마스 관련 데코를 샀던 기억은 있다. 에펠탑처럼 생긴 철 구조물에 반짝이는 조명이 있고 구조물 중간쯤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써져있던, 몇 해는 우려먹을 수 있는 그런 장식품이었다. 또, 중학생이 되면서 크리스마스는 점점 암묵적으로 커플들을 위한 날이 되어갔고, 학창 시절 연애사가 없는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귤 까먹는 평범 한 겨울날로 받아들여졌다. 신기하게도, 크리스마스를 특별 대우하지 않았던 우리 가족의 방식에 전혀 반항심이 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영화의 클래식이 된 "러브 액츄얼리"의 한 장면. 인기에 힘입어 최근 새로 개봉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 커플들을 위한 날"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확고해졌다. 반짝이는 조명과 화려한 데코가 있는 크리스마스 밤은 더 로맨틱하기 때문인가? (개인적으로 공감은 못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쏟아져 나오는 사랑에 관한 노래, 드라마틱한 영화 속 사랑이야기, 연인에게 선물을 조장하는 광고들. 연인과 100일을 크리스마스 날에 기념하기 위해 날짜에 맞춰 사귀는 커플들까지 있었다! 천만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들을 다 겪을 필요는 없었다.


잠깐, 내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불편하게 느끼는 이유가 솔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얼른 화제 전환을 해 벨기에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에 대해 지금부터 얘기해볼까 한다.


지금의 남편과 함께한 지 10년이 지났으니, 대충 세어보아도 다섯 번은 넘게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다행히 시댁도 종교가 없는데,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에 가족들끼리 선물을 주고받고, 다음 날 온 가족이 모여 정오부터 한 저녁 6-7시까지 긴긴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커플의 날이라기보다 전통적인 가족의 날이다. 시댁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은 매년 빠질 수 없는 머스트 아이템이고, 길가에서도 잘 보이게 집 앞 정원 장식도 잊지 않으신다. 혼자 살고 있는 이모나 이모부도 꼭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은 하신다.

어린아이들이 선물을 받는 날은 크리스마스가 아닌 12월 초인 St. Nicolas (세인트 니콜라스. 현지에서는 생 니콜라) 날이므로 여전히 여기는 산타클로스보다 생니콜라가 더 유명한 것도 특이점이다. 또 유럽의 크리스마스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크리스마스 시장이다. 크리스마스 장식에 둘러싸여 뱅쇼를 마시며 기분 좋게 축제 분위기를 구경하는 것은 이 시즌에만 할 수 있는 독보적인 것임에 틀림이 없다.

유럽에서도 가장 예쁜 크리스마스 시장으로 유명한 프랑스 알자스 지역의 한 마을 모습 (@Eguisheim)

시댁과 우리도 전통을 중요시하지만, 크리스마스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4년 전쯤부터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먼저 환경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선물 과대포장에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고, 우리들은 먼저 포장 재활용을 했다. 그런 다음, 신문지나 예쁜 잡지로 포장을 하는 방법도 택했고, 이미 사용했던 종이가방에 선물을 넣는 방법도 택해왔다. 물론, 불필요한 선물은 하지 않고, 서로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 무엇인지 물어본 다음 꼭 유용하게 사용하는 물건만 선물로 하는 것은 예전부터 지켜오던 필수사항이었다.


매년 이맘때쯤 핫이슈로 떠오르는 것은, 크리스마스 트리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기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농약이 쓰이는지, 고작 2-3주간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7년에서 10년 기른 나무를 자르는 것이 합리적인지, 또 그 짧은 시간 동안 사용된 후 폐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오염물질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 이런 얘기가 반복적으로 나오지만 대다수의 가정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진짜 나무 밑동을 잘라 데려오는 크리스마스 트리다. 4년 전 남편과 단란한 집에 들어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물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꾸몄냐고. 우리는 합리적인 이유로 트리 꾸미기를 하지 않기 결정했는데, 우리를 조금 측은하게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을 잊을 수 없다. 매년 크리스마스 장식이 있는 집에서 자란 남편이지만, 집집마다 굳이 트리를 꾸밀 필요가 없다고 함께 생각해주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덕분에 매년 잘 자라고 있던 나무를 잘라 데려오며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트리를 집까지 실어다 오고 내다 버리러 가는 수고를 안 해도 되지 않는가.

인공 트리를 사서 오래오래 쓰면 되지 않느냐고. 나도 그게 더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리서치를 좀 해봤으나, 한 구석도 재활용이 되지 않는 인공 트리는 20년을 넘게 사용해야 그나마 환경에 도움이 되기 시작한단다.

안녕? 예쁘지만 너희는 일회용이란다. (출처: Le Soir 벨기에 국영신문)

결론적으로 나는 나이를 먹고 머리가 커지면서, 크리스마스가 점점 더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커플의 날이 단순히 이해되지 않아서지만, 한국 문화의 일부분이 아닌 이 날이 자본주의 괴물을 만나* 반짝임으로 사람들의 눈속임을 점점 유도하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미니어처 화장품이 잔뜩 들어 하루하루 새로운 선물을 (아니, 쓰레기를) 획득하는 재미가 있는 어드밴트 캘린더가 추천 선물로 뜨는 때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4월 22일 지구의 날, 전 세계가 같은 시간에 10분간 소등을 하며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하지만, 3주에서 길면 한 달 정도 구석구석 더 빛으로 장식하지 못해 안달 나는 때가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토양의 지속성을 생각해 유기농 식재료의 수요가 점점 늘어나면서도, 농약 잔뜩 뿌려 키워 낸 크리스마스 트리를 "에잇, 1년에 한 번인데 뭐"하며 사 오는 아이러니함이 있는 때가 크리스마스 시즌인 것이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크리스마스의 이미지는 대부분 코카콜라 마케팅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북극곰은 말할 것도 없고, 산타클로스의 전형적인 "볼 빨간, 풍채 좋은, 흰 수염" 할아버지의 모습은 코카콜라에서 만들어 낸 산타클로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리는 코카콜라의 노예가 될 것인가?


세상이 아이러니함 투성이다. 내년이면 아이가 태어나 우리는 단란한 세 가족이 된다. 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지 않고 과연 앞으로도 우리 엄마, 아빠가 그랬듯, 내 소신을 지킬 수 있을까. 어떤 게 지속 가능한 크리스마스 문화일까, 또 그걸 찾아 어떻게 우리 가정의 문화로 녹여내야 할까. 우리 엄마가 했듯, 정월대보름을 크리스마스보다 더 제대로 챙기는 그런 자본주의 괴물에 굴복하지 않은 건전한 가정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연말에만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평소에도 이타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나는 될 수 있을까.


이런 불편한 고민들을 떨쳐내고 온전히 크리스마스 불빛을 즐길 수 없는 나라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게 내 몫이구나 싶다. 언젠가는 이 불편함이 장작이 되어 내 열정을 건전하게 태울 날이 있을 거라 믿는다. 브런치에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쓰며 그날을 준비하는 거라고. 그러고 보니 2022년이 코 앞이고, 이 글이 2021년의 내 마지막 글이다. 내년에는 어떤 불편함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걱정되면서도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볼 세상이 있기에 설렌다.


메인사진출처 : The Best Christmas Festivals in Korea : Seoul & Busan - My Korea 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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