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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Jan 02. 2022

[아프리카 생활기] 여자 혼자 나이지리아에 살기 (2)

나이지리아 사람들이 말한다, "You will be fine."

사무실에 출근을 하는 그림부터가 한국 회사에서와의 경험과는 많이 다르다. Ayo라는 내가 가장 아끼는 동료는 매일 아침 내 얼굴이 저 멀리 메인 입구에서 보일때부터 외친다. "Welcome!" 안녕도 아니고 '환영한다'는 그의 한마디. 사무실에 출근을 하는게 이렇게 환영받을 일인가? 그리고 이어서 내게 건네는 이 동료의 진심어린 한마디는 내가 사무실 문을 열면서 가장 기다려지는 선물이다. "Welcome to another beautiful day!"


지금 내가 나이지리아에 살 수 있게 하는 건 오롯이 우리 동료들이다. 일에 지친다 싶으면 사무실을 어슬렁거리며 한 명 한 명에게 농담을 건네고 하루의 피로를 웃어넘기는 시간이 있어서. 그리고 내 오른쪽에 앉은 Mojoy라는 나의 허그머신(Hug Machine)이 있어서 ㅡ 어느샌가 한달째 이런 전통(?)이 이어져왔는데, 우린 지칠 때 파티션을 건너 서로에게 다가가 "I need one." 간단히 말을 건넨다. 그럼 서로 깔깔 웃으면서 일어나 마스크를 끼고 서로를 껴안아준다.


입사한지 한 달이 지난 시점에 맞은 나의 생일




1. You will be fine.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말은 바로 이 말이 아닌가 싶다. 입사 초기 업무 적응 기간동안 너무 많이 힘들었다. 대기업의 공급망 관리라는 업무는 정말 두통 그 자체였다. 나와 평생을 거리두기하며 살았던 숫자와 친해져야 하는 업무였기에 더욱 그랬다. 나의 힘듦을 지켜보던 Ayo와 내 왼쪽에 앉은 동료 Stephen은 내가 주최해야 하는 첫 미팅에서, 날 잘 알지도 못하면서 "You will be fine. You are doing great already," 이라고 말해주었다. 처음 내 반응은 '남은 힘들어 죽겠는데 왜 이렇게 쉽게 다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거야?'였다.


첫 두 달간 일에 대한 긴장감을 달고 살아서 그런가 편도가 붓기 시작하더니 컨디션이 최악이 되어서 출근을 못하고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더니 장난스런 목소리로 "안녕, 르네?" 하는 것이었다. 전화 주시는 분이 누구냐고 물었는데 깔깔거리더니 너 괜찮냐고 묻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사무실 전화로 내게 안부를 묻는 Ayo였다. 푹 쉬라고 말하며 "You will be fine." 뒤이어 Stephen에게도 전화가 왔다. 당연히 "You will be fine" 하나 더 추가. 마지막으로 회사 메신저로 너 왜 사무실에 없냐고 또 다른 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몸이 안좋다고 하니 격려의 메시지 마지막에는 또 한 번 "You will be fine" 이었다.


넌 괜찮아 질거야, 라고 말하는 이들의 진심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을까? 내게 괜찮을거라 말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묻기 시작했다. 형식적으로 괜찮아 질거라는 말이 아니라 이들의 You will be fine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의 Driver Nelson을 포함한 동료들과 마주앉아 이야기 나누어본 결과 이게 나이지리아의 정수와도 같은 마음가짐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하루 하루가 서바이벌인 수많은 나이지리아 인들에게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서바이벌에 필요한 무기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말이 이들에겐 가볍지 않은 것이다. 가벼운 위안의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나의 안녕을 빌어주는 무게가 느껴지는 그들의 You will be fine이 내게도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참 글을 쓰고 있는데 전기가 나가버리는 일상 해프닝




2. When you are down, put a smile on your face.


지난 1편에서 설명했듯이 비가 한참 내릴 때 천장 누수가 시작되더니 며칠만에 무너져버렸다. 업무와 더불어 다양한 스트레스 요인들이 있었는데 거실 식탁에 앉아있던 내 뒷편에서 우두두 천장이 무너지니 나는 이성을 잃고 부동산 업자 Ladipo에게 전화해 쏘아부쳤다. 도착하자마자 커튼이며 가구며 내가 직접 리드하며 부엌 집기까지 챙겼는데 무엇하나 알아서 되는 법이 없는 나이지리아에 한참 지친 때였다. 다음날 출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고 라디포가 상황을 살피러 방문을 한 것이다. 이 친구 얼굴을 보니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집에 발생했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가까워져 버린 아이러니한 관계가 바로 우리 둘 사이였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더니 왜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냐며 묻는거였다. 내가 출근 시간이 임박해가는걸 잊고 하소연을 하는데 점잖게 들어주더니 마지막에 내게 묻는거였다. 

"나이지리아 사람이라면 이럴 때 어쩌는지 알아?"

"어쩌는데?"

"웃어버리지."


웃어버리다. 이 친구가 떠난 길을 따라 나도 출근을 서둘렀는데 웃어버리라는 이 친구의 말이 계속 메아리를 치는거다. 나이지리아에 도착하자마자 렌트비가 무색한 집 상태를 보고 라디포를 상대로 하나부터 열까지 컴플레인하면서 집의 구색을 갖추어 나갔었다. 천장이 무너지자 마자 "또 시작이다," 하며 도대체 나이지리아는 왜 이러나 싶었는데 이 친구의 이 말을 들으니 내 마음에 스스로 짓눌러두었던 커다란 바위가 굴러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이동을 책임져주는 드라이버 Nelson과 그의 가족을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초대해서 크리스마스 식사를 대접했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내게 당연한 것들을 나이지리아에 고스란히 투영해 모든걸 내게 맞추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것과 올바른 것들은 지극히 내 사정이다. 이런식으로 나이지리아에서 생활할 수는 없는 법이었고 어리석은 방식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리고 내게 동료, 그리고 업자 이상인 이 친구들을 통해 나이지리아를 이해하고 또 조금씩 좋아하게 되다 보니 구름이 걷히고 무지개가 떴다.




며칠전 저녁까지 먹고 늦게 퇴근한 날 집에 돌아오니 지난번에 고쳤던 부엌 파이프가 또 문제가 있는지 부엌 바닥 전부 흥건해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라면서 아쉬운 인사를 전하려 해요. 너무나 새로운 곳에 와서 적응하고 나다운 삶을 구축해 나가는데 집중하기 위해 당분간 편이례는 연재를 쉬어갈 수 밖에 없게 됐어요. 먹이례와 돈이례, 두 동료들이 제 부재를 더욱 멋지게 채워줄거라 믿습니다. 조만간 좀 더 저다운 모습을 찾아 돌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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