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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이례 Dec 09. 2022

억압받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남겨줘야 하는 것

올해 5월 페미니즘이라는 대주제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양성평등주의자로 스스로를 소개한 바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글을 주로 쓰는 나를 발견하였고, 결국에 양성평등을 위해서는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자문자답의 덫에 걸렸다. 왜 덫이라고 표현했느냐. 여성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낸다면 나는 페미니스트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양성평등주의자라고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꽤나 복잡한 질문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졌기 때문이다. 이번 글의 주제로 한국의 남성이 어떤 차별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서 쓰려고 오래전부터 마음을 먹었다. 이 글을 통해서 성별로 나뉜 두 그룹의 의견을 중립적으로 풀어놓고,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것이 남녀평등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이런 글은 논리적인 근거들을 찾기가 힘들어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을 쓰기 어렵다 판단이 들었다. 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그 경험 중 느낀 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내가 감히 남성차별에 대한 글을 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한국 남성들이 겪는 고충을 다각도로 잘 이해하고 싶어졌다. 평등 문제는 좀 더 포괄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안티 페미니스트 대통령, 윤석열은 병사 월급을 2025년까지 200만원으로 올릴 것을 약속했다.

우리는 성평등을 얘기할 때, 쉽게 젠더 프레임에 갇힌다. 남성, 여성,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가 어떻게까지 차별을 받는지 따져내고, 누가 더 희생자인지를 가려내야만 할 것 같은 싸움이다. 그때그때 사항에 따라, 정치인에 따라, 희생자는 남성이 되기도 하고 여성이 되기도 한다. 희생자에게는 피해보상차원 같은 지원이 결정되고, 우리는 이 지원을 더 받기 위해 성평등을 내걸고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2022년 대선에서 많은 후보들이 내걸었던 정치공약들은 "누가 더 많은 피해보상을 하는가"가 쟁점인 것만 같았다.


읽을거리 : [홍성철의 까칠하게 세상 읽기] 병사 월급 200만원이 쏘아 올린 공


가장 큰 오류는 성평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 메시지를 전달하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논쟁 방식을 선택해야 더 효과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남성이 사회에서 어떤 특권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비교를 하며 적대적 분위기를 만드는 게 정말 도움이 될까? 어떤 부문에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책을 남녀노소 없이 통감할 수 있도록 설파하는 것이 더 건설적이지 않을까. 반대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남성만이 군대를 가야 하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는 군대를 가지 않는 여성의 잘못이 아니다. 군대를 가지 않음으로써 얼마나 많은 특권을 여성들이 누리고 있는지 백가지 근거를 들어봤자, 그것이 남성에게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직접적으로 해결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성별로 사회를 큰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거라는 단순 무지한 생각은 이제 없어져야 마땅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꼭 한 번 읽어보리라.

이 글을 시작하며 초반에 관심을 가진 키워드는 "한국 남성"이었다. 이 키워드로 검색을 하면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라는 책이 금방 검색 결과로 나온다. 여섯 명의 작가가 각자 다른 시각과 주제로 남성성에 대하여 얘기하는 책인데, 내가 가지지 못한 시각으로 주제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여러 서평과 요약, 리뷰들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모든 논쟁에 공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회 속에 규정된 "남성성"에 대해 질문을 하고, 이 시대에 남성성, 여성성이라는 키워드가 여전히 적합한가에 대해서 고찰하게 하는 책의 전반적인 메시지는 반가웠다.


우리나라는 성별로 나뉜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유독 많은 나라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이에 따라 해야 할 것,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는 마당에 이쯤 되면 "한국에서 자유롭기"는 도대체 가능이나 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억압에서 자유로운 사회계층은 단 하나도 없다. 이 사회에 아주 많은 억압들이 있고, 모든 억압은 방식을 불문하고 개인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특히나 개인의 성향은 철저히 무시된 채,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만이 한 개인에게 강요되는 상황은 근본적으로 가장 폭력적인 억압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유독 눈물이 많았던 내 남동생은 "남자는 울면 안 돼"라는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사회성 없고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회사원은 회식의 늪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 남자라서 씩씩해야 하고 리더십 있어야 하며, 여자라서 꼼꼼하고 멀티태스킹을 잘해야 할 필요 없다. 또, 남자라서 가계를 책임져야 하고, 여자라서 요리를 꼭 잘해야 한다는 그런 공식 따위에는 이제 가운데 손가락 살짝 들어줘도 괜찮다.


남자는 남성성에서 자유로워져야 하고, 여자들 역시 여성성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남성성, 여성성이라는 단어를 재해석하고, 새로의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이 이 단어들은 "구어"라고 표현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이미 많은 성고정 관념들이 뿌리 박혀 우리네의 사고방식을 바꾸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똑같은 오류의 경험을 다음 세대가 겪지 않도록 잘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고정 관념에서 비롯된 많은 억압들을 덜어주어, 우리 다음 세대들은 본인의 성향에 맞춰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도와야 한다.


그 첫 시작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쉽게 내뱉는 말에 어떤 내재된 억압이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리고 본인의 말이 상대방에게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아주 중요한 첫 단추이다. 그런 다음, 사려 깊은 단어 선택을 하도록 스스로 주의를 기울여 보는 것, 남녀노소 구별 없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하도록 노력해보는 것이 대단해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소소한 실천 거리라고 믿는다.


메인사진 출처 : Justin Tran


더 읽을거리 :

~다움 대신 도움’을 위하여 -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천정환 교수

한국, 남자 - 문화평론가/사회학자인 최태섭이 남성의 입장에서 쓰면서도, 남성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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