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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롯한 하루 Mar 10. 2021

3월 10일의 너에게

3월 10일의 너에게 편지를 쓰기 전, 오늘의 나를 이야기할게. 카톡을 보니 2019년 4월이 우리 대화의 마지막이네. 나를 탓하며 언젠가 네게 보여줄 이 글을 쓴다.


아침을 먹고 힘을 잔뜩 충전한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건 언제나 힘든 일이지. 오늘은 아이가 좋아하는 물감에 물을 섞어 물감 총을 만들었어. '우와' 소리를 지르는 아이를 보며 성공했다는 마음을 가득 안고 나갔지. 흙과 돌, 나뭇잎 위에 색을 입히는 아이를 보며 잠시 숨을 돌렸어. 간식으로 포도를 가져갔는데 아이가 통을 놓치는 바람에 몇 개 먹지 못하고 다 쏟아버렸어. 떨어진 포도알을 보며 아깝기도 했지만, 밖에서도 치워야 할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 혼자 투덜거렸지.


집에 와서 아이를 씻기고 당근과 양파, 다진 돼지고기를 넣고 만든 볶음밥에 치즈를 올려주니 넙죽 받아먹더라. 요즘 아이가 밥을 안 먹어서 힘들었는데 역시 답은 치즈인가 봐. 1시가 다 되어 낮잠을 재우려고 방에 들어갔는데 나도 피곤했는지 잠들어버렸어. 평소와 달리 요란스럽고 길게 가는 핸드폰 진동을 무시하고 다시 자고 싶었지만, 어느새 깬 아이가 핸드폰을 가지고 놀고 있었어. 느낌이 이상해서 폰을 확인하는데 M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고 다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어.


그 후에 단체 톡방에 네가 쓴 글을 확인했지. 여러분으로 시작해서 남겨진 나와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 달라는 말을 보고 나는 요즘 유행하는 카톡 피싱을 의심했다. 너답지 않은 담담한 글을 보며 몇 번을 읽고 또 읽다가 너에게 전화했고 예상대로 너는 받지 않았지. 그러던 중 M에게서 전화가 왔고, 너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머니가 아프니 함께 기도해 달라고 했었지. 하지만 늘 밝은 너의 카톡 사진을 보며 잘 지내고 있을 거라 믿었어.


하지만 너는 힘들었겠지.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보살필 만큼. 우리가 만났던 게 내가 출산하고 친정에 머물던 2019년이지? 엄마 찬스 쓰고 나갔을 때, 일찍 나온 너를 제일 먼저 만났지. 출산으로 퉁퉁 부은 나와 달리 향긋한 샴푸 냄새와 나풀대는 치마를 입고 나타난 너를 보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다섯 중 결혼을 안 한건 너와 M 뿐이라 우린 너희의 연애와 일상을 궁금해하다가 곧 육아 이야기로 빠졌고, 그날따라 말수가 적어 보이는 네가 걱정이 돼 집에 가서 너에게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우리 둘의 연락은 끊어졌네. 단체 톡방으로 이야기했다, 멀리 있다는 말로 변명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버렸네. 어머니의 투병을 혼자 감당했을, 이제는 그 이후를 감당하고 있을 너를 생각하니 온종일 마음이 아려온다. 결혼하고 친구들이 멀리 흩어진 상황이 슬프고, 마지막 만났을 때처럼 웃으며 너를 대하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될 지금도 슬프다.


아이가 잠들어서야 하루를 휘감은 감정을 어둠에 숨긴 채 너에게 카톡을 보냈다. 지금 보니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로 시작한 글에 비겁함이 삐져나온다. 그동안이라는 수많은 일상 중 하나를 널 위해 쓰지 못했다. '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는 이기적이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너의 아픔을 섣불리 아는 체하는 것 같아서. 3월에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10일 지난 오늘 새벽, 어머니를 먼저 보낸 너를 나는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 나는 이 상황이 낯설고 무섭다.


너에게 다녀온 M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은 실감이 안 난다고... 슬프긴 한데 아직 괜찮다고... 하지만 나는 이 순간 너를 위해 기도하려 한다. 여든을 사신 아버지를 보내고 어린아이처럼 울던 우리 엄마처럼 되지 않기를. 음식을 보며 추억이 떠오르지 않기를. 꿈에 나와서 며칠 동안 마음이 먹먹해지지 않기를. 이를 감당할 수 없다면 카톡 사진의 너처럼 웃을 수 있기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는 3월 10일의 너에게 글을 쓴다. 네가 웃을 수 있는 언젠가 보여줄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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