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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밥 짓는 사람 Nov 08. 2023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

간판이 바뀌어도 말이야.

출근길 동선은 일정하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막히는 동부간선도로를 피해'  ' 어린이보호구역에서의 속도위반 딱지를 얹고'  ' 아침을 먹을까 말까 하는 빵집을 지나' 내 하루가 시작하는 매장까지 도착하는 길.


징크스처럼 같은 길이 아니면 하루의 운이 다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오타니 쇼헤이처럼 '쓰레기를 줍는 것이 남의 행운을 줍는 것' 같이 사소한 철학이 결합된 행동은 아니더라도 말이다. 자영업자들에게는 사소하면서도 루틴이 제법 갖춰진 하루의 길이 있다. 식재료 마트를 경유하는 날이 아니라면 하루를 곱게 시작하기 위해서 가는 길은 일정하다. 그리고 풍경도 일정하다.


남양주 시골길에서 시선 둘 곳이 없다가 서울로 들어와 골목 여기저기에 식별하기 좋은 간판들을 살피며 도착하던 며칠 전.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내 기억에는 8월 개업이었다) 가게의 간판이 바뀐 것을 봤다.

지나가는 길이고 우리 매장과는 거리가 멀어 가게 안을 살펴볼 일은 없었는데, 간판명과 가게 규모가 마음에 걸렸다. 쓰였다 정도가 맞겠다. 내가 포장 전문 매장을 하던 크기의 매장. 7-8평 정도의 가게, 인테리어 업체를 쓰지 않고 직접 품을 팔고 서투르지만 진한 색으로 무엇을 파는지 식별 가능하게만 해놓은 심미성 떨어지는 간판. 그리고 손님 한 명이 설 자리도 없는 공간과 가족들이 서서 새 물건을 뜯으며 준비하는 모습.

포장 전문 배달전문 매장의 형태다. 비록 나는 실패했지만, 언제든지 다시 도전해서 '아이템과 운'이 따른다면 성공을 거두고 싶은 형태.  내가 지나가는 시간이 식자재를 받고 준비하는 시간이다. 자주 가는 빵집이 근처에 있어  속도를 줄이게 되고 , 매장 안을 힐끗 쳐다보는 경우가 있었다. 개업하고 며칠은 동네 주민들이 줄을 서고 , 오토바이가 대기하고 있는 풍경. '매장 규모와 음식 가격을 생각하니 중박 이상은 하겠는데'라는 계산을 하고  속으로 부러운 마음도 좀 갖고 있었다. 마침 여름이라 우리 가게는 비수기로 들어섰으니 말이다.


자주 가던 빵집에 빵도 없고 오토로 직원들만 돌리는지 암튼 나와는 잘 안 맞았다. 빵집을 바꾸는 수밖에 골목을 돌아 옆골목 빵집에서 아침을 해결했다. 여름을 정면으로 이겨내는 것 때문에 다른 곳으로 시선을 낭비할 여력이 없었다. 내 밥집이 더 문제였다.  악착같이 문을 열어야 했고, 뉴스를 이겨내야 했으며 , 재료의 신선함에 눈알 빠지게 모니터를 보면서 해법을 찾아야 했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고, 자영업자들 특히 식당을 하는 많은 이들이 문을 닫고 먹거리 팔던 일을 멈추고 먹거리를 찾아 떠난다는 소식만 귀로 들었다.


예전 빵이 생각나서 두어 달 만에 원래 다니던 골목으로 출근했다. 다행히 빵은 있었고, 아침의 운은 반정도 잘 썼다. 후진하면서 사이드 미러로 보니 간판 색은 같은데 , 원래 있던 그 간판이 아니다. 포장 배달 깃발도 없어졌고 , 가게 앞에 개업 할인으로 붙어있던 배너도 사라졌다.  후진할 때 소비하는 그 시간 정도만 시선을 주고 내 가게로 갔다. 나와는 아무 연도 없는 곳. 오후가 되어 다시 슬쩍 가보게 되었다. 동양 패스트푸드를 팔던 가게는 폐업을 한 것은 아니고 , 원래 간판 위에 아스테이지 같은 작업을 해서 파는 음식 이름만 바꿨다. (처음부터 상호에 별 의미는 없었다. 음식 이름이 중요하지) 어차피 배달 음식을 파는 곳이니 오프 매장의 겉 꾸밈보다 온라인 어플에 '서비스'와 '리뷰'가 정갈하면 된다.  다행이다. 폐업은 아니다.

무엇을 팔던 , 정통성 없이 혹은 역사도 생각 안 하고 오늘 이것을 팔고 내일 다른 것을 판다고 해서 음식장사하는 이를 욕할 것은 없다. 무엇이던 팔던 되는 것. 팔아서 살고 , 팔아서 살아남고, 그렇게 팔다가 잘 안 팔리면 남은 식재료를 모두 먹어치우는 일이 있더라도 살아남으면 되는 것 아닌가.


너무 러프하게 잡은 생존 데이터에 따르면 , 자영업을 하는 이들이 한해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는 이들이 90퍼센트에 가깝다고 한다. 말이 안 되는 통계다. 모두 뛰어들어 모두 익사하고 한 명이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심지어 구직활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어느 시점이 되면 모두 이 물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말이다.


운을 모두 끌어다 쓰고, 가족의 노동을 끌어다 쓰고, 기껏 살면서 배워온 모든 것들이 혹여나 도움 될까 전전긍긍하면서 하루를 배열해도 몇십만 원의 매출을 올리기 힘든 요즘이다. 식당에서 '이 맛을 전해드리고 싶어서' ' 이 음식을 너무 사랑해서 모두와 나누고 싶어서'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사라졌다.

노동을 넣고 노동을 사 오고 노동을 줄여가는 노동의 밥상을 '누가 더 잘 미분해서 뭉쳐내는가' 하는 것이 요즘의 식당이다.  식당에서 눈물 섞인 짠한 밥상을 전하는 것도 사치니까 그것은 드라마에게 넘기도록 하자.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라는 실존 인물의 생존분투기의 내용처럼 , 할복하고 야쿠자가 되지 않아도 충분히 잔혹하고 건조한 것이 지금의 식당업이다.  무엇을 어떻게 팔던 , 음식 장르가 바뀌어도 좋다. 어쩠던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더 아름다운 시절이다. 눈물로 충분히 맛을 담고 있으니 간판을 바꾸더라도

색칠을 덧대더라도 버티고 살아남는 오늘이 아름답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자"


나중에 맛있는 식당을 꼭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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