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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포 리피 님, 둘이 뭐 하시는 거예요?

메트로폴리탄, 프라 필리포 리피의 여닫이에 있는 남자와 여자의 초상

by SUN 작가

여닫이에 있는 남자와 여자의 초상화 Portrait of a Woman with a Man at a Casement

프라 필리포 리피 Fra Filippo Lippi

ca. 1440

나무 위에 템페라 Tempera on wood

64.1 x 41.9 cm


1929년에 영국 런던의 존 샌포드 John Sanford 목사가 플로렌스에서 구입한 후 1847년 프레드릭 헨리 폴 2대 남작에게 넘겨진다. 다시 1883년 미국의 금융가이자 초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설립 50인 위원회의 한 사람이었던 헨리 거든 마리콴트 Henry Gurdon Marquand 가 구매한 후 1889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한다.



이런 구도 너무 재미있다. 실내에 서 있는 여인의 옆모습도 재밌고, 다 드러나지 않은 모자 쓴 남자가 창문 사이로 빼꼼히 머리와 손만 내밀며 여자와 눈을 맞추고 있는 모습도 재밌고, 저 뒷 창문 사이로 바깥 풍경이 보이는 것도 재밌다. 둘이는 무슨 관계일까?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는 걸까? 처음에 딱 보기에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품이니 만큼,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은 혁신적인 그림이다. 일단 위 그림은 이탈리아 회화 중에 현존하는 가장 최초의 더블 초상화 double portrait 이자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집 안에 여성이 주인공으로 보이는 최초의 그림이며 또한 풍경을 배경에 포함시킨 최초의 그림이라고 한다. 아, 이걸 더블 초상화라고 하는구나.


이 그림을 처음 보고 든 생각이 한 여성이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보통 고해성사 할 때 남자인 신부님이 저렇게 얼굴을 내밀고 하지는 않지 않나? 그래서 그 생각은 틀렸음을 바로 깨달았다. 그다음 드는 생각이 그럼 사랑하는 사람? 그러고 손을 보니 둘 다 화려한 반지를 끼고 있다. 저렇게 화려한 반지는 결혼반지임에 틀림없다. 신부와 신랑이구나. 신부의 소매 끝에 둥글게 lealtà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충실한’이라는 뜻으로 신부의 절개를 나타내는 문구라고 한다. 반대편 신랑의 손을 보니, 살짝 들어 올리는 제스처를 하고 있는 오른손이 왜 이렇게 이쁘니? 여자 손이라고 해도 믿겠다. 신랑의 왼손 아래에는 사선 모양의 문장이 있는데 이게 스콜라리 Scolari 가문의 문장이라고 한다. 이 작은 단서를 가지고 사람들은 이 부부가 누구인지 또 찾아낸다. 1436년경에 결혼한 로렌조 디 라니에리 스콜라리와 안지오라 디 베르나르도 사피티 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1,400년대에 피렌체 사는 김서방을 이렇게 찾아낸다고? 대단하다, 정말. 신랑이 쓰고 있는 모자는 그 당시 15세기 유행했던 베레타 알라 카피타네스카 Berretta alla capitanesca라는 모자의 실루엣으로 본다. 살짝만 나와 있어 전체 모양이 어떤지 궁금하여 찾아보았다.

필리포 리피의 남자와 동일한 모자를 쓰고 있는 남성 Portraits of the Duke and Duchess of Urbino, Federico da Montefeltro and Battista Sforza, between circa 1473 and circa 1475,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 우피치 갤러리 Uffizi Gallery, 피렌체


여성의 의상을 한 번 볼까? 소매의 위쪽 한 면이 훤히 뚫려 있는 오픈 솔기의 옷이 조금 특이하다. 후펠란데 Houppelande 라고 하는 그 시대 유행하였던 프랑스풍의 아우터 튜닉으로 앞 뒤로 긴 주름이 있는 원피스 형태의 고급스러운 의상이다. 그러고 보니 진주 목걸이와 어깨 위의 보석 브로치, 머리 장식에 있는 장신구, 화려한 반지 등이 그 당시 ‘나, 좀 사는 집의 여성이야’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아르놀피니의 초상 The Arnolfini Portrait, 1434, 얀 반 에이크 Jan van Eyck,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 런던

다른 그림 vs. 같은 느낌

리피의 그림보다 약 6년 앞서 그린 그림이다. 조금 닮은 느낌이 있지 않나? 남녀의 더블 초상화 느낌이 리피의 그림과 많이 닮아 있어서 가져왔다. 리피가 이 그림에 영감을 받고 그린 건가? 위 그림의 작가인 얀 반 에이크는 네덜란드 화가로 15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데 11-12세기부터 소극적으로 써오고 있던 유화를 얀 반 에이크가 획기적인 기술적 발전을 가져오도록 유화 기법을 완성한 화가로 찬사를 받는다. 어느 정도로 유화를 잘 가지고 놀았는지는 이 그림의 중앙에 걸려 있는 거울에 비친 두 사람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디테일에 그냥 입이 쩍 벌어질 정도이다. 그 작은 거울을 볼록 거울로 만들어서 방 전체를 비출 수 있도록 하였고 두 남녀의 앞에 서 있는 사람까지도 디테일하게 모두 표현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 거울의 테두리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 메달 안에 그리스도의 수난을 하나씩 하나씩 모두 그려 넣었다. 얼마나 세밀한 붓으로 그린 거야? 그 거울 왼쪽에 걸려 있는 투명한 구슬들의 벽에 비친 그림자 표현까지 가히 압도적이다. 또 여인의 발아래에 있는 강아지 털 표현은 어떻고? 이 정도는 그려야 그림 좀 그린다고 하지 않을까? 잠깐, 여기 두 남녀는 또 누구일까? 제목이 ‘아르놀피니의 초상’이니 저 남자의 이름이 조바니 아르놀피니로 비단, 직물, 테피스트리등올 돈을 많이 번 부자였다고 한다. 그의 아내와 함께 서 있는 결혼식 장면으로 예상하는데 부인의 배가 불룩하여 임신한 게 아닐까 예상도 하지만 그 당시 옷이 저런 디자인이 많았다고 보기도 한다. 얀 반 에이크, 이 그림 하나로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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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필리포 리피의 모습 Scenes of the Life of the Virgin – Funeral of the Virgin, fresco, Fra Filippo Lippi, 스폴레토 대성당


프라 필리포 리피 Fra Filippo Lippi (이탈리아, 플로렌스 Italian, Florence ca. 1406–1469)

갹! 이름이 너무 귀여운 거 아냐? 쁘라 삘리뽀 리삐, 헤이 삘리뽀 리삐, How are you? 그냥 만나면 이름 한 번 불러보고 싶고, 인사하고 싶고, 말 걸고 싶은 이름이다. 어쩜 이름이 이렇게 이쁘지? 그냥 부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걸? 얼굴은 또 어떻고? 위의 작품 속 얼굴이 필리포 리피라고 한다. 지금은 작품 속에 자신의 이름 또는 서명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렇게 서명이 일반화되기 전에는 작품 속에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어 ‘이게 내가 그린 그림이요’라고 표시하였다고 한다. 얼굴은 과학이라고 했던가? 귀엽고 장난꾸러기 가득한 얼굴인걸? 이름에 있는 프라 Fra 라는 말은 ‘수도사’ 라는 의미라고 한다. 맞다. 수도사였다고 한다. 피렌체에서 정육점 아들로 태어나 2살 때 고아가 되어 이모가 키우다 너무 가난해서 8살 때 이웃의 카멜 수도원이라는 곳에서 지내게 된다. 여기서 그림 공부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들도 하나 있었는데 아들 이름도 너무 귀엽다. 아들 또한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운 화가였는데 이름이 필리피노 리피 Filippino Lippi이다. 잠깐, 필리포 리피가 수도사라고 하지 않았나? 가톨릭 수도사가 결혼해서 아들을 낳을 수 없었다고 하는데 그럼 필리포 리피는 자유로운 영혼이었구나. 조금 더 와닿게 이야기하자면 난봉꾼? 맨날 술에 여자에 웁… 일화 중에 하나가 필리포 리피가 1456년, 그의 나이 50 즈음에 피렌체 근교에 있는 산타 마르가리타 수도원에 재단화를 그리러 갔다가 그곳에서 수녀 수련 과정을 받고 있던 루크레치아 부티에게 첫눈에 반하고 사랑에 빠져 그녀를 모델로 성모 마리아를 많이 그리고 또한 더해 그녀를 데리고 피렌체로 도망쳐 강제로 관계를 맺고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필리포 리피가 그 이후 그린 작품 속의 성모 마리아 얼굴은 모두 부티를 모델로 한 얼굴로 그렸다고 한다. 이 둘 사이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필리피노 리피이다. 나중에 이 둘 사이의 결혼을 교황이 인정하였다고 하는데 똘끼 리피는 결혼에 얽매이기 싫다고 필리포 리피는 끝내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네. 당대에도 그림 잘 그렸다는 평가는 받았는지, 메디치 가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중에 한 명이 되어 후원도 받았지만 방탕한 생활 때문에 방문을 걸어 잠그고 그림을 그리라고 했는데도 침대 시트로 밧줄을 만들어 탈출하여 술과 여자에 또 빠지고 도망가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빠지는 등 난리가 아니었다고 한다. 으이그…


아들인 필리피노 리피가 12살 때 아버지인 필리포 리피가 죽자 이 시대 르네상스 초기의 거장인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 아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 보티첼리 하면 우리 어렸을 적 미술책에서 수없이 보았던 ‘비너스의 탄생’을 그렸다는 그 보티첼리 아닌가? 그 대단한 보티첼리가 왜 리피의 아들을 제자로 받아들였지? 필리포 리피의 제자 중에 한 명이 이 보티첼리였다고 한다. 우와, 필리포 리피 대단하네. 그래서 보티첼리가 그렸던 비너스의 얼굴이 필리포 리피가 그린 성모 마리아의 얼굴과 비슷한 느낌이다. 그 얼굴이 리피의 와이프인 수녀 준비생 부티의 얼굴이었다. 재미있네.


비너스의 탄생 The Birth of Venus, circa 1485, 산드로 보티첼리 Sandro Botticelli , Uffizi Gallery, 피렌체 Florence

왼쪽: 필리포 리피의 그림 속 성모 마리아의 얼굴, 오른쪽: 보티첼리의 그림 속 비너스의 얼굴


두 천사와 함께 즉위한 마돈나와 아이 Madonna and Child Enthroned with Two Angels, ca.1440, Fra Filippo Lippi,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마지막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필리포 리피의 성모 마리아 작품이다. 필리포 리피, 정말 그림 잘 그렸구나. 실감 나게 그렸네. 정중앙에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양 옆에 두 천사가 있는데 천사가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는 ‘나를 원하는 자 들아, 너희는 나에게로 와서 나의 열매로 가득 차라(전도서 24:19)’라고 쓰여 있다. 삼부작 그림의 중앙 부위라고 한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화를 볼 때 옛날 그림이라고 하여 조금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기본적인 몇 가지만 알고 보면 재밌게 볼 수 있다. 얼굴 주위의 금은 진짜 금으로 후광을 표시한 것으로 아주 고귀한 분에게만 붙이게 되는데 주로 성인들이다. 또한 여러 성인들이 등장하다 보니 특정 성인을 나타내는 아이템들을 가지고 구별하게 되는데 파란색 옷을 입고 있는 성모 마리아, 지팡이 모양을 한 십자가를 들고 있는 세례 요한, 열쇠, 닭,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의 베드로, 성서를 집필하는 모습의 사도 바울 등이다. 성모 마리아가 안고 있는 아이는 당연히 아기 예수를 나타내는데 예수는 너무나 성스러운 대상이라 그냥 우리가 보는 어린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으로 표현되지 않고 성스러운 아이의 모습으로 표현하다 보니 조금은 나이 든 아기의 모습, 어른 아기 느낌으로 종종 그려진다. 그리고 이 시기의 종교화는 캔버스 위의 유화로 그림 그리기 전으로 주로 나무 위에 달걀노른자를 섞은 안료로 그린 그림들이 많고 실제 금박을 사용해서 표현했기에 자세히 보시면 나무 위에 그린 표현 등이 유화에 익숙한 우리에게 조금 새롭게 다가온다. 이제는 조금 어려울 수 있는 종교화도 이렇게 발을 디뎌 두려워하지 말고 재미있게 감상해 보자.


왼쪽: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 세례 요한 St John the Baptist, 1513~16. 오른쪽: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십자가 Crucifixion of Saint Peter,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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