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빈센트 반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Self-Portrait with a Straw Hat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87
Oil on canvas
40.6 x 31.8 cm
반 고흐의 선물로 파리 근교인 아스니에흐 Asnières에 살고 있던 클라라 르바이앙 드라 부아시에 Clara Levaillant de La Boissière 백작 부인이 소유하고 있다가 1927년 갤러리 샹팡티에 Galerie Charpentier에 팔린 듯하고, 1929년에 독일의 아트 딜러인 탄하우저 Justin Thannhauser 가 사업가인 리처드 로헤 Richard Lohe와 5:5 지분으로 소유하였다가 1936년 미국 뉴욕의 예술가이자 컬렉터였던 애드레이드 밀턴 드 구르트 Adelaide Milton de Groot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 1967년 그녀의 사망 후 그녀가 소유하고 있었던 212점의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하게 되는데, 그중에 포함되어 있었던 작품이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아를, 생레미, 오베르 쉬 아즈 등에서 작품 활동하였던 반 고흐였기에 대부분의 작품이 유럽에 많이 머물고 있는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유럽을 벗어난 대륙 중에 가장 많은 작품수인 28여 점의 반 고흐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 2022년에도 반 고흐의 희귀한 판화 4점을 구매하는 등 메트로폴리탄의 반 고흐에 대한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상시 전시 또한 15점 이상의 반 고흐 작품을 항상 만날 수 있어, 처음 반 고흐의 전시실에 들어서게 되면 ‘이렇게 많은 반 고흐 작품을 여기에서 만난다고?’ 하며 깜짝 놀라게 된다.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 또한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Wheat Field with Cypresses(1889)’, ‘지누 부인 L'Arlésienne: Madame Joseph-Michel Ginoux (Marie Julien, 1848–1911) (1888-1889)’, ‘아이리스 Irises(1890)’, ‘장미 Roses (1890)’, ‘룰랭 부인과 아기 Madame Roulin and Her Baby(1888)’ 등 너무나 좋은 작품들이 많아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Self-Portrait with a Straw Hat’이다.
그런데, 다른 작품은 모두들 벽에 걸려 있는데 왜 이 작품은 유리관 안에 덩그러니 홀로 놓여져 있는 걸까? 사람들이 많이 붐비니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 미술관의 배려일까? 아니면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니 손상될까 봐 사방이 모두 막혀 있는 유리관으로 커버한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다가 우연히 자화상의 뒷면으로 돌아가 보는데 깜짝 놀랐다. 뒷면에 또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캔버스에 앞 뒤로 모두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다. 뒷면에 있는 그림도 함께 볼 수 있도록 사방을 오픈한 유리관으로 전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감자 깎는 사람 The Potato Peeler (반대쪽: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reverse: Self-Portrait with a Straw Hat), 1885,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파리로 넘어오기 1년 전인 1885년 2월에서 3월 사이에 네덜란드 뉘넨에서 그린 작품으로, 이러한 각각의 사람들을 그리면서 쌓은 실력으로 완성한 작품이 반 고흐 미술관에 있는 ‘감자 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1885)’이다. 그러고 나서 1887년 여름, 이 그림의 캔버스를 뒤집어서 반대편에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그림을 그린다. 반 고흐의 감자 시리즈는 초창기 그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유럽풍의 묵직하고 어두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 당시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과 같은 감자를 정성스레 깎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투박한 감자색과 일치하게 그려져 있어 어둡고 힘든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초기부터 반 고흐는 보이는 대로 그리기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담아 표현하는 표현주의 기법을 자연스레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다.
감자 먹는 사람들 The Potato Eaters, Vincent van Gogh, Nuenen, April-May 1885, Van Gogh Museum, Amsterdam
그럼, 왜 이렇게 반 고흐는 캔버스 양쪽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가난, 지긋지긋한 그놈의 가난 때문이다. 캔버스를 살 만한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쪽면의 너무나 어둡고 묵직한 그림의 ‘감자 깎는 사람’과 다른 면의 노란색 황금빛 모자와 얼굴을 하고 있는 반 고흐의 자화상이 극명하게 대비되어 우리의 감정을 더욱 복받치게 만든다. 살았을 때 빛을 보지 못했던 그의 어두운 모습과 그가 꿈꿨던 밝은 모습의 반 고흐가 이렇게 한 캔버스 안에서 머물고 있다. 이렇게 이전에 그렸던 캔버스를 뒤집어 뒷면에 다시 그림을 그릴 만큼, 가난 따위도 그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던 걸까?
그 지긋지긋한 가난 때문에 그가 또 많이 그렸던 작품들이 그의 자화상이다. 반 고흐는 약 36여 점 이상의 자화상을 남겼다. 일반적인 예술가들은 한두 점 또는 10여 점 이하의 자화상을 그리곤 하는데 대단히 많은 숫자가 아닐 수 없다. 그 보다 더 많은 자화상을 그린 유일한 화가는 약 100여 점을 그린 램브란트 말고는 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그림 그릴 모델 살 형편이 안 되었던 반 고흐는 자기 자신의 얼굴을 모델 삼아 그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나는 모델이 없어서 나 스스로 작업하기에 충분한 좋은 거울을 샀어.
I purposely bought a good enough mirror to work from myself, for want of a model.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를 Arles, 1888년 9월 16일
이렇게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걸까? 얼마나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지 느낄 수 있어 더욱더 안타깝다. 이러한 시기별로 많은 그의 자화상 그림을 통해 우리는 그의 그림 기법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어 너무나 재미있다. 우리가 열광하는 그의 그림 기법이 한 번에 완성된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그만의 독특한 기법을 찾아간다. 이런 것을 보면 그도 처음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재 화가가 아니라 하루하루 노력 끝에 발전해 간 모습 같아 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구나 싶어 조금은 위로가 된다.
위쪽 왼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1886, 파이프를 물고 있는 자화상 Self-Portrait with Pipe, Van Gogh Museum. 1887, 자화상 Self-Portrait, Art Institute of Chicago. 1888, 폴 고갱에게 바치는 자화상 Self-portrait dedicated to Paul Gauguin, Fogg Art Museum. 1889, 자화상 Self-Portrait, Musée d'Orsay
그의 자화상을 여러 점 보고 있어 보니 갑자기 드는 생각이, 반 고흐의 실제 모습은 어떠했을까 궁금해진다. 그의 실제 모습과 자화상은 닮았을까? 아니면 차이가 있을까? 다행히 그 당시의 반 고흐 사진이 남아 있어 그의 실제 얼굴을 볼 수 있다. 그의 사진과 그가 그린 자화상과 비교해서 한 번 보자. 어떤가? 반 고흐, 그림 정말 잘 그리는 친구구나 싶다.
왼쪽: Possible photo of Vincent van Gogh, 1886, Victor Morin Artiste-Photo. / 자화상 Self-Portrait, 1887
1887년 파리에서,
본격적인 전업화가로 그림을 그리고자 지금의 벨기에인 앤트워프에서 프랑스 파리로 넘어온 반 고흐는, 이 시기 파리에서 총 28여 점의 자화상을 그리는데 그중 상당히 많은 비중인 5점이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자화상을 그린다. 21살 때 런던 구필 화랑에서 일할 때 처음 접한 밀레의 만종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은 반 고흐는 이후 자신도 밀레처럼 소박한 농민들의 모습을 그리는 농민화가로 헌신할 것을 다짐하는데 이러한 의지가 자신 스스로가 가장 농민스럽게 보이게 만드는 밀짚모자를 쓴 모습의 자화상을 그리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자화상’이란 하나의 주제에 다양한 여러 가지 붓터치를 선보이고 있어,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그림에 대한 연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이 당시 점묘법을 처음 선보인 조르주 쇠라의 열렬한 제자인 폴 시냑을 개인적으로도 알고 있었던 반 고흐가 점묘법의 영향을 어떻게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할지에 대한 연구로 여러 시도들을 해 본 것으로 읽힌다. 그의 붓터치는 단지 점을 찍는 것이 아닌, 붓을 좀 더 길게 끊어치는 기법으로 발전해 나간다.
위 왼쪽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Self-Portrait with Straw Hat, Summer 1887, Van Gogh Museum /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 Van Gogh Museum /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Self-Portrait with Straw Hat, Summer 1887, Detroit Institute of Arts / 아래 왼쪽부터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 Self-Portrait with Straw Hat, 1887, Metropolitan Museum of Art
반 고흐의 자화상을 볼 테면, 꼭 그의 눈을 자세히 들여다 보길 권한다. 우리가 보통 검정과 흰색으로 구성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눈동자 안에 이렇게 다양한 컬러를 담았다는 게 너무나 놀랍다. 세상의 모든 컬러를 눈에 담았구나 싶다. 얼마나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까지 표현할 수 있을까? 예술가는 정말 우리가 보는 눈과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보고 있노라면 뭔가 우리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와 대화를 시도해 보자. 그 눈동자 속에서 우리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는지 그와 함께 얘기를 해 보자. 어느덧 그를 조금은 더 이해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에 흠칫 놀란다. 자화상의 매력이 이런 걸까?
붓터치의 강렬함이 어마어마하다. 툭툭- 붓을 던지듯이 짧게 아무렇게나 그린 듯한데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색으로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반 고흐의 작품은 멀리서 보기보다는 한 발 앞으로 다가가 붓터치 하나하나를 따라가면서 보길 권한다.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전체 선율을 따라 듣기도 하지만 그 음악 속 연주되는 악기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들을 때 다른 느낌인 것처럼, 그의 붓질과 나의 눈동자가 하나가 되어 그려 나갈 때 어느덧 전율이 느껴진다. 이 천재 화가는 이렇게 그림을 그렸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살아 있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툭 나온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반 고흐 작품을 몇 점 더 보자.
이 그림, 자화상만큼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이다. 하늘의 구름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모습과 오른쪽에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와 아래의 노란 밀밭이 너무나 좋다. 그런데 이 그림, 딱 봤을 때 반 고흐의 어떤 작품과 닮았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는가? 맞다. 같은 뉴욕의 모마 미술관에 있는 ‘별이 빛나는 밤’과 많이 닮은 작품이다. 두 작품을 반으로 접은 듯이 대칭으로 그려진 것도 재미있다. 왼쪽 사이프러스 나무 vs. 오른쪽 사이프러스 나무, 밤하늘의 역동적인 별 vs. 낮 하늘의 역동적인 구름,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올라가는 산 라인, 그래서 이 그림을 ‘별이 빛나는 밤’ 낮 버전으로 많이 불린다. 너무 좋은데? 반 고흐는 낮, 밤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이 두 작품은 모두 1889년에 그려진 작품으로 반 고흐가 아를에서 귀를 자른 사고 이후 머물렀던 생레미의 정신병원 방에서 바라보던 풍경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으로, ‘별이 빛나는 밤’을 먼저 그리고 가까운 시기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이프러스, 밀밭, 올리브나무, 밤, 하늘 반 고흐가 좋아한 요소들은 모두 들어가 있는 듯하다. 키 큰 사이프러스 나무는 그 당시 공동묘지를 가리기 위해 벽처럼 빙 둘러져서 많이 심어져 있어서 가까운 자신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하는데 그보다는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저 높은 하늘과 현실의 땅에 머물러 있는 나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더욱더 사랑한 게 아닐까?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 나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사이프러스 나무만 따로 그린 그림이 메트로폴리탄에 있으니 같이 한 번 보시길 바란다. 사이프러스의 세세한 표현력이 어마어마하다. 다양한 색상과 붓놀림이 바람 불면 나무가 흔들흔들거릴 것만 같다. 이 처럼 반 고흐 작품을 만날 때는 가능하시면 가까이서 보시길 권해 드린다. 붓질과 색 뭉치가 모두 살아 있어서 반 고흐가 어떻게 표현했는지 날 것 그대로 읽을 수가 있고 물감 또한 엄청 많이 써서 캔버스 위로 튀어나오고 그 사이사이로 비추는 그림자들을 보면 전율 그 자체이다. 반 고흐 그림의 시그니처 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이 우리가 보통 ‘반 고흐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임파스토 Impasto 기법’인데 이탈리아어로 ‘반죽하다’라는 뜻으로, 램브란트의 임파스토 기법 따라 하다 자기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반 고흐 그림은 가까이!’ 이거 하나만 기억하자.
세상에나, 이렇게 이쁜 정물화를 본 적이 있나? 아이리스의 보라색 꽃도 꽃이지만 그 꽃을 더욱더 돋보이게 하는 하얀색 배경이 너무나 이쁜 거 아냐? 정물화에서 배경이 이렇게 이쁜 그림, 아니 꽃보다 더 이쁜 배경은 또 처음이다. 신선한 충격이다. 원래는 핑크색 안료를 사용했는데 핑크색이 많이 빠져서 하얀색에 가깝게 보이는 거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핑크빛이 살짝 감돌고 있네. 난 이것도 너무 좋은데? LA 게티 센터의 ‘아이리스’만 알고 있던 나는 이렇게 화병의 꽂힌 아이리스를 보고 ‘반 고흐, 아이리스를 참 좋아했구나’ 싶다. 반 고흐는 잎에도 꽃에도 테두리 라인 넣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그가 그 당시 빠져 있던 일본의 풍속화인 목판화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러고 보니 일본풍 느낌이 있고 에잇… 1890년 5월 생레미 정신병원을 떠나기 직전에 4개의 정물화를 그렸는데 그중에 2개가 지금 보는 아이리스와 아래의 장미 정물화이다. 장미 또한 기존에 우리가 접했던 그런 장미가 아니라 이 또한 신선하다. 정물화 또한 어쩜 이렇게 자기 스타일 대로 뽑아냈을까? 자기 색깔 분명한 반 고흐이다.
아르레지엔느: 마담 조셉-미셀 지누(마리 줄리앙) L'Arlésienne: Madame Joseph-Michel Ginoux (Marie Julien), 1888-1889,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노란 배경의 이 그림이 ‘나 반 고흐, 여기 있소’ 라며 부르는 듯이 자꾸 눈이 간다. 지누 부인의 초상이다. 지누 부인은 본명이 마리 줄리앙인데 조셉 미셀 지누와 결혼하면서 지누 부인으로 불리게 된다. 작품명에서 말하는 아르레지엔트는 ‘파리지엔느’처럼 프랑스 남부 아를 Arles에 사는 여성을 일컫는 말이다. 지누 부인은 아를에서 카페 드 라 가르 Café de la Gare를 운영하였는데 여기 카페의 방을 빌려 1888년 5월부터 9월까지 머물게 되면서 서로 알게 된다. 그 해 11월 반 고흐와 함께 머물렀던 폴 고갱의 끈질긴 부탁 끝에 지누 부인은 모델을 서게 되고, 처음 1시간 만에 반 고흐가 그린 지누 부인의 초상은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작품으로 탁자 위에 장갑과 양산이 놓여 있다. 이 작품은 두 번째 버전으로 책상 위에 책을 올려놓은 그림으로 그리게 된다. 반 고흐가 좋아하던 지누 부인을 술집 카페 마담보다는 마 좀 더 지적인 여성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자장가 (요람을 흔드는 여인; 아우그스티누나 룰링 La Berceuse (Woman Rocking a Cradle; Augustine-Alix Pellicot Roulin), 1889,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뉴욕
이 여인은 룰링 여사님으로 아를에서 반 고흐의 친구였던 아를 우체국장 조셉 룰링의 와이프이다. 반 고흐가 조셉 룰링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조셉 룰링의 초상화뿐만 아니라 그의 아기와 와이프까지 많은 그림들을 그린다. 반 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녀는 좋은 눈을 가졌고 난 그것을 최고로 그렸어 she had a good eye and took the best.’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의 눈을 자세히 보니 내 눈에는 조금 사납게 그린 것 같기도 하고? 재밌다. 작품명이 ‘자장가, 요람을 흔드는 여인’라고 하여 왜 자장가지? 했는데 손을 자세히 보니 요람 흔드는 끈으로 보이는 줄이 보인다. 저걸로 아이가 누워 있는 요람을 흔들며 재우는 거구나. 뒷 배경의 꽃 그림이 있어 ‘사람 정물화’ 같기도 하고 색감 표현에 또 한 번 놀란다. 잠깐,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의 오른쪽 팔걸이에 써 있는 ‘빈센트 아를 89 Vincent Arles 89’ 그리고 바로 옆 빨간색 배경에 ‘La Berceuse’ 보았나? 안녕 빈센트? 여기 숨어 있었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953년 네덜란드 북부지역인 그르트-준데르트 Groot-Zundert에서 태어난 빈센트 반 고흐는 그의 나이 33살인 1886년 프랑스 파리에서 본격적인 전업 화가로 시작해, 귀를 자르는 자해를 한 아를과 정신병원 생레미를 거쳐 오베르 쉬아즈에서 너무나 짧은 생애인 만 37살에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기고 간 작품의 수는 총 2,100여 점으로 결코 적지 않다. 1888년 아를에서부터 오베르 쉬아즈까지 약 2년여 동안 그린 작품의 수가 약 470여 점이다. 이는 단순 계산으로 이틀에 한 점 이상 그려낸 걸로 볼 수 있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짧은 생애였지만 보통 사람이 한평생 이룰 성과를 충분히 모두 이루고, 그의 열정을 모두 불태우고 미련 없이 떠난 빈센트라 부르기도 한다.
평생 동안 벗어나기 힘들었던 경제적 어려움과 아를에서 예술가 공동체를 이루어 꿈을 펼치고자 했지만 그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고, 너무나 설레어했던 고갱과의 만남도 2개월의 짧은 생활 끝에 결국은 자신의 귀를 자해하는 사건으로 끝나고, 생레미의 생 폴 정신병원에서 세상과 단절하고 고독한 예술가의 혼을 모두 불태우다 결국은 오베르 쉬아즈에서 자살인지 타살인지 아직도 논란이 많은 권총 사고로 너무나 힘든 생을 마감한 위대한 천재, 빈센트 반 고흐는 살았을 때 힘들었던 삶을 보상이라도 받는 건지 그의 사후인 현재 우리는 그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화가 중 한 화가로 빈센트 반 고흐를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빈센트 반 고흐, 왜 좋아하세요?
왜요?..... 그냥 요…
이유 없이 그냥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왜일까?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감성을 시각적으로 가장 잘 표현하는 작가’라고 말한다. 감성을 건드리는 작품이 많기에,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이 ‘그냥요’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그냥 딱 봤을 때의 그 느낌, 우리의 감성을 건드리는 색채와 표현력 때문에 우리는 빈센트 반 고흐를 사랑한다. 많이 사랑한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진정한 예술은 없습니다.
There is nothing more truly artistic than to love people.
-빈센트 반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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