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k Rothko
RM (중앙)
윌 데이비슨 Will Davison
(왼쪽, Manager of Communications and Visitor Engagement)
애슐리 클레머 Ashley Clemmer
(오른쪽, Director of Programs and Community Engagement)
Rothko Chapel 로스코 채플, Houston 휴스턴, Texas 텍사스, U.S.A
로스코 채플은 2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은행가이자 사업가였던 존 드 메닐 John de Ménil 과 석유 장비 회사인 슐룸베르거 Schlumberger Limited의 상속인인 도미니크 드 메닐 Dominique de Menil 부부가 1971년에 미국 텍사스주의 휴스턴에 오픈하였다. 로스코 채플로부터 걸어서 약 5분 거리에는 백만장자인 드 메닐 부부가 평생 동안 모은 약 17,000여 점의 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메닐 컬렉션 Menil Collection 이 자리 잡고 있다.
도미니크(가운데)와 존 드 메닐(왼쪽), 1968년 11월 6일 휴스턴 미술관에서 열린 "젊은 교육 컬렉션" 개막식. 사진: Hickey-Robertson, Courtesy of Menil Archives, The Menil Collection, Houston.
채플이라고 하면 우리나라 말로는 ‘예배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로스코 채플은 어느 한 종교 또는 종파가 아닌 전 세계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컨셉으로 이 세상 어떤 종교든 이곳에서 각자의 예배와 기도, 명상을 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새롭다. 그래서 로스코 채플에는 성경, 코란 등 여러 종교의 성서가 놓여져 있고 뿐만 아니라 공연, 국제 문화, 철학적 이슈에 대한 공유의 공간 등으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로스코 채플의 ‘로스코’는 색면추상화가의 대가인 마크 로스코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인데, 건물 내부는 팔각형의 형태로 둘러싸여 있고 각 벽면에 마크 로스코의 큰 작품 14점이 걸려 있다. 1964년에 드 메닐 부부의 의뢰로 로스코는 이 작품들을 그렸는데 로스코 자신은 정작 1971년에 완성된 이 공간을 보지 못하고, 1970년 2월 25일 뉴욕의 스튜디오 안 자신의 빨간 작품 앞에서 심한 우울증 끝에 자살로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더한다.
여행자나 방랑자가 한 시간 동안 작은 방에 매달린 그림 하나 앞에서 명상할 수 있는, 작은 예배당과 같은 공간을 전국에 세울 수 있으면 좋겠소.
It would be good if little places could be set up all over the country, like a little chapel where the traveler, or wanderer could come for an hour to meditate on a single painting hung in a small room, and by itself.
- 마크 로스코, 1954 -
저 위에 있는 건물 지붕의 천장은 텍사스 사막의 강한 빛에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직사광선은 피하고 부드러운 자연 채광이 그대로 들어와 작품에 고르게 비출 수 있는 루버 Louvers 시스템과 라미네이트된 유리로 되어 있어 평온함을 더한다. 로스코는 이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에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데 처음의 건축가인 필립 존슨 Philip Johnson과 의견 충돌로 하워드 반스톤, 유진 오브리 등으로 교체하여 진행하였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이 은은하게 로스코의 작품에 내려앉은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평온하게 만든다. 가운데 놓여져 있는 의자에 앉으면 놀랍게도 사방이 로스코 작품으로 빙 둘러져 있어 작품 속으로 푹~ 안긴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의 작품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대단하여 이내 곧 실내는 신성함과 정적인 고요함에 빠지게 되고 나 또한 감정의 동요를 느끼며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명상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너무나 신기한 경험이다. 로스코가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1903-1970,
나의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은,
내가 그림을 그릴 때 가졌던 신성한, 종교적인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The people who weep before my pictures are having the same religious experience I had when I painted them.
- 마크 로스코 -
마크 로스코는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아홉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가 되었다. 그는 ‘색면 추상’이라는 독특한 양식을 개척한 선구자로 불리는 반면에,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이 왜 유 명하고 비싸게 팔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동시에 듣기도 한다. 로스코는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사랑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잡스는 로스코의 ‘복잡한 사고의 단순한 표현’에 깊이 공감하며 좋아했다고 한다. 미국 내셔널 갤러리에서 조사 한 바에 따르면, “당신은 미술 작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에 약 60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놀랍게도 그중 70퍼센트가 마크 로스코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로스코의 작품이 눈물을 흘리게 되는 작품으로 유명한 이유이다. 미술 작품을 통해 마음을 치유받고, 신성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로스코는 안타깝게도 1970년, 그의 나이 예순일 곱에 뉴욕 자신의 작업실, 자신의 빨간 작품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떠난다. 항상 자신을 ‘빨강’이라고 말하던 로스코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듯이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내 인생에서 두려운 한 가지는,
어느 날 검정이 빨강을 삼킬 것이라는 점이다.
The only thing I fear in life is that one day the black will swallow the red.
-마크 로스코-
부러진 오벨리스크 Broken Obelisk,
로스코 채플 야외 플라자 전경. 왼쪽 작품: 부러진 오벨리스크 Broken Obelisk, 바넷 뉴먼 Barnett Newman, 1963-1967 Photo by Elizabeth Felicella/Courtesy Rothko Chapel.
로스코 채플의 야외에는 작은 인공호수가 하나 놓여 있고, 그 한가운데에는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가 중 한 명인 바넷 뉴먼 Barnett Newman의 ‘부러진 오벨리스크 Broken Obelisk’ 작품이 놓여 있다. 일반적인 오벨리스크는 하늘 위로 길게 뻗어 있는 탑 형식으로 사각의 면이 하늘로 올라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꼭대기에는 뾰족한 피라미드 모양의 건축물을 말한다. ‘피라미드’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의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드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태양신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이집트에서 유럽으로 약탈되어 갔거나 이집트와 친분이 있는 국가에 직접 기증 또는 각 명소에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 만들어진 오벨리스크가 전 세계 곳곳에 많이 흩어져 있다.
바넷 뉴먼은 3톤의 코르텐 강철로 높이 약 25피트(약 760미터)의 ‘부러진 오벨리스크’ 작품을 총 4개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로스코 채플에 있고, 나머지 3개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시애틀 워싱턴 대학교 광장, 뉴욕 스톰 킹 아트 센터에 있다. 아래의 뾰족한 피라미드 위에 하늘로 뻗어 있어야 할 오벨리스크가 부러져 거꾸로 처박혀 있다. 위태롭기 이를 데 없어 보인다. 바넷은 무슨 의미로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 보는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기? 불안해 보이게 만들기? 피라미드와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두 상징물인데, 하나는 땅 위 최고 신인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이고 또 하나는 하늘의 태양신 라의 상징물이 오벨리스크이다. 그런데 이 둘이 만났다? 더욱이 너무나 불안하기 짝이 없는 상태로 만났다? 저 위의 부러진 오베리스크가 곧 쓰러지는 순간 우리는? 이 작품을 만들었던 1960년대의 인권, 전쟁, 심각한 인종차별 등 불안한 우리의 사회를 이러한 아이콘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보기도 한다. 저 멀리 하늘 높이 솟아 있던 오벨리스크가 부러진 것처럼 우리의 이상과 꿈 또한 부러진 것으로 본 게 아닐까 싶다. 물 위에 비치는 ‘부러진 오벨리스크’처럼, 우리들 자신도 물 위에 비쳐보며 뒤돌아 보라는 얘기인 듯하다. 정작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가인 버넷은 말이 없다. 버넷은 이 조각품을 특정한 장소나 역사적 인물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었다고 말한다. 여러분의 생각은?
드 메닐은 이 작품을 1968년에 암살로 세상을 떠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념하기 위해 휴스턴 시가 연방 보조금으로 구매하여 시청 앞 분수대에 놓고 받침대에는 ‘마틴 루터 킹에 대한 헌정’이라고 써 놓기를 제안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너무나 급진적인 제안이라 생각한 시의회에 의해 거부당하였다. 다시 타협하여 이번에는 시청 앞 광장에 놓고 아래 문구는 이전보다는 더 순화한 성경 구절 중에 하나인 ‘그들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에 용서하십시오 Forgive Them, for They Know Not What They Do’라고 쓰기를 제안하였지만, 또다시 거부된다. 예술 애호가일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와 인도주의적인 활동을 많이 했던 드 메닐은 부러진 오벨리스크의 모습이 사뭇 암살로 부러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모습으로 투영한 게 아닐까 싶다. 모두 거부당한 드 메닐은 결국 지금의 로스코 채플에 설치하기로 결정한다. 드 메닐은 그 당시 $90,000 (약 1억여 원)에 ‘부러진 오벨리스크’ 작품을 구매하고 또한 마크 로스코의 14개 작품을 함께 기부하겠다고 발표하고 그 이후 새로 지어진 이곳, 로스코 채플에 놓이게 된다.
인생에서 한 번은 예술이 주는 기쁨과 위안을 받아 보시길 바라는 작은 바람입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저작권은 해당 자료의 저작권자에 있음을 알립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게시 중단 등을 원하시면 shaan@daum.net 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즉시 삭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