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누엘 로이체 Emanuel Leutze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엠마누엘 로이체 Emanuel Leutze
1851
Oil on canvas
378.5 x 647.7 cm
작가인 엠마누엘 로이체는 이 작품을 총 3가지 버전으로 그린다. 앞으로의 일을 예상했던 걸까? 1848년 유럽의 혁명 기간에 이 그림에 대한 구상을 하고 첫 번째 버전은 1850년에 완성하였으나 같은 해 스튜디오 화재로 인해 손상되었다. 이후 독일의 브레멘 쿤스트할레 미술관에 의해 복원되고 인수되었지만 또다시 1942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없는 상태이다. 1850년 두 가지 버전을 그리기 시작하여 1851년에 모두 완성한다. 그중 두 번째 버전은 첫 번째 그림과 똑같은 크기의 복제품으로 1851년 뉴욕에 전시된 후 미국의 금융가이자 사업가였던 마샬 O. 로버츠 Marshall Owen Roberts 가 당시에는 꽤 큰 금액인 $10,000 (현재 금액으로는 약 35만 달러, 약 4억 9천만 원)에 구매하였다. 그 후 몇 번의 주인이 바뀐 후 1897년 금융가이자 사업가였던 존 스튜어드 케네디 John Stewart Kennedy 의 기증으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되고 있다.
세 번째 버전은 위 앞 작품들보다 사이즈가 더 작은 101.6 x 172.7 cm 로, 1979년 - 2014년 동안 백악관의 리셉션 룸에 걸려 있다가 미네소타 해양미술관 설립에 기여한 메리 부리히터 Mary Burrichter 와 밥 키얼린 Bob Kierlin 소유로 그 해양미술관에 전시되었다가 2022년 5월 크리스티 경매로 나와 자그마치 4,500만 달러(약 630억 원)에 낙찰되어 팔렸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 중인 2번째 버전의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 Emanuel Leutze,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1851), on view at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오늘은 국뽕이다. 미국 국뽕이다. 이 그림을 보고 아무 감정이 없다? 당신은 한국인 또는 미국외 외국인이다. 이 그림 앞에서 뭔가 막 차오른다? 가슴 벅참이 있고, 먹먹해진다? 당신은 미국인! 우리로 치면 이순신의 노량 대첩? 명량 대첩 급의 그림이다. 이순신 장군이 가지고 있던 배 12척 중 맨 앞에 서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해 보라! 가슴 벅차지 않나? 딱 그 느낌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그림이지만 미국인들에게는 학교 때부터 교과서, TV 등에서 수도 없이 만나는 그림이다. 어렸을 때부터 봐 왔던 그 그림을 이렇게 직접 만나면 얼마나 반갑겠는가? 히스토리 책에서만 보던 이 그림을 직접 보다니~ 이런 느낌이다. 내가 이 땅 미국에서 편하게 살고 있다는 게 다 이런 우리의 영웅 때문이지, 너무나 감사하지 라며 혹 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훔치는 분들을 만날 수도 있다. 이런 그림이다. 우리에게는 와닿지 않겠지만 이런 감정으로 우리도 이 그림 한 번 봐 볼까?
일단, 너무 크다. 가로 6.4m, 세로 3.7m 이다. 그림 크기부터 압도당한다. 경외로움 마저 느끼게 한다. 그냥 나, 이렇게 큰 미국이요-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큰 패트리어트 Patriotism
(애국심) 한 번 들여 부어 볼까요? 라고 말하는 듯하다. 한쪽벽을 이 그림이 다 차지한다. 그림 안의 인물들이 실제 우리들 키와 비슷하다. 그래서 더 실감 난다. 프레임 액자의 번쩍번쩍 금색이 유독 눈에 띈다. 프레임에도 엄청 신경을 썼구나. 테두리 정 중앙에 미국의 상징인 독수리가 그 당시 쓰였던 군수품 뭉치들 위를 날아오르고 있다. 나 미국이요, 이다. 독수리 바로 아래 리본에는 ‘전쟁에서 처음, 평화에서 처음, 그의 국민들 마음에 처음 First in war, first in peace, first in the hearts of his countrymen’ 이라고 쓰여져 있다. 사각 테두리에는 또한 미국 국기의 별모양이 사방을 휘감고 모서리에는 네 개의 방패가 씌워져 있다. 나무로 깎아 만든 뒤에 금박을 입혔다는데 금박만 12,500장 이상이 쓰였다고 한다. 프레임 무게만 1,360kg, 1톤이 넘는다고? 이렇게까지?
작품명이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 이다. 워싱턴는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미국 건국의 아버지’ 라 부르는 그 조지 워싱턴 George Washington 이다. 미국에는 정치색과 상관없이 무조건 전 국민이 인정하는 두 정치인이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이 조지 워싱턴과 에브라임 링컨이다. 우리로 치면 그냥 세종대왕 급이다. 조지 워싱턴에 대한 리스펙이 얼마나 크냐면, 인위적인 수도를 새로 만들면서 지은 도시명에 미국의 두 영웅 이름을 넣게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조지 워싱턴의 워싱턴 Washington 이고 또 하나는 아메리카 땅에 처음 도착했다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이름에서 따온 D.C 곧 District of Columbia 의 콜럼버스이다. 그래서 수도 이름이 워싱턴 D.C 이다. 워싱턴 이름은 수도명만 있는 게 아니라 시애틀 도시가 있는 주의 이름 또한 워싱턴 주이다.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미국 독립전쟁에서 대륙군 Continental Army 총사령관으로 워싱턴 장군이기도 하였다. 이 그림은 1789년 워싱턴 대통령이 되기 전 1776년의 워싱턴 장군의 이야기이다. 또한 델라웨어는 델라웨어 주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뉴저지 주와 펜실베이니아 주를 나누는 델라웨어강을 말한다.
매년 12월에 펜실베이니아 벅스카운티에서는 델라웨어 강을 건너는 워싱턴의 역사적 재연 이벤트가 열린다. The historical reenactment of George Washington's crossing of the Delaware River is held every December in Bucks County, Pennsylvania. From abcnews.go.com
이 작품은 미국 역사화이다. 역사화이다 보니, 히스토리를 조금 알고 보면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때는 바야흐로 1776년 12월 25일-12월 26일인 이틀간 이루어진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1776년 7월 4일이 미국 독립기념일이니, 같은 해 겨울이다. 미국 독립선언 후, 독립을 원하는 군대인 대륙군 Continental Army 과 미국 독립을 원치 않는 영국군 British Army 과의 독립전쟁 중인데, 대륙군의 수장이 워싱턴 장군이고 반대편인 영국군은 독일 용병인 헤센 Hessian 군의 수장 요한 랄 Johann Rall 장군이다.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이 그림 이해하는데 충분하다. 독립 전쟁 초반 시기라, 전쟁 초반에 독립을 원하는 대륙군은 정규군이 아닌 주로 일반 시민들로 이루어지다 보니 전쟁 기술도 떨어지고 군사력도 떨어져 뉴욕에서부터 계속 전투에 지고 뉴저지를 넘어 델라웨어 강 건너편까지 밀려왔다. 군의 사기도 바닥이다. 이러다간 독립은 커녕 우리 모두 다 죽겠는데 싶다. 워싱턴 장군은 전세를 역전시킬 뭔가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기획한 게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때의 기습 공격이다. 설마 크리스마스까지 무슨 일 있겠어? 싶었던 영국군의 헤센 군대는 트렌턴 Trenton 이라는 곳에 주둔하면서 정찰병, 대기병도 없이 크리스마스날 모두들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전투의 이름이 트렌턴 전투 Battle of Trenton 이다. 워싱턴 장군의 의도는 적중했다. 곧바로 대륙군의 승리로 가져간다. 작은 전투였지만, 이 전투의 승리가 대륙군 사이에 소문이 퍼지고 군의 사기도 오르면서 이후 여러 전투의 승리를 이끌게 된다. 이 그림이 바로 그 크리스마스 저녁에 준비하여 다음날인 12월 26일 그 추운 겨울 새벽에 작은 배를 타고 강의 얼음을 깨며 델라웨어강을 건너고 있는 늠름한 워싱턴 장군의 모습이다. 이 이야기만 들어도 얼마나 가슴 벅찬 전투의 승리인지 감이 오지 않는가? 우리 이순신 장군의 명량 대첩을 생각해 보라. 딱 그 감정이다.
자, 이제 그림 한 번 볼까? 역사화이다. 보통 역사화라고 하면 역사에 기반하여 대단히 사실적으로 표현되는 그림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작가의 의도가 대단히 많이 내포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작가의 의도대로 왜곡하여 그려지기도 한다. 작가가 생각하고 보고 싶어 하는 역사의 장면을 그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사실과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고, 작가의 생각을 과장하여 그리기도 한다. 이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이 그림의 작가인 엠마누엘 로이체는 1816년 독일에서 태어나 10살 때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과 워싱턴 D.C 에서 살면서 미국의 역사 그림을 많이 그렸다. 로이체는 이 역사적인 장면을 어떻게 생각한 걸까?
일단, 대단히 웅장하게 그렸다. 완전 조지 워싱턴의 영웅화이다. 하늘의 햇살도 조지 워싱턴을 강하게 비추고 있다. 그의 지휘하에 모두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다. 최고의 군대 모습니다. 하지만 다른 해석으로는 이때가 이렇게 일사불란하고 힘차게 강을 건너지 않았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패색이 짙은 사기가 떨어져 있는 병사들이 강한 강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정신없이 헤치고 가지 않았을까, 저 작은 배에 저렇게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나? 그럼 싸울 무기들은 다 어디에? 이렇게 생각하며 좀 더 사실에 기초하여 그렸다는 그림도 있다.
역사 예술가 모트 쿤슬러가 2011년에 그린 맥코니키의 페리에서의 워싱턴의 횡단 Washington’s Crossing at McKonkey’s Ferry, a 2011 painting by renowned historical artist Mort Künstler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그 날씨에 노 젓는 보트에서 일어서지 않을 거야.
그러면 전복되었겠지.
No one in his right mind would have stood up in a rowboat in that weather.
It would have capsized.
- 모트 쿤슬러 Mort Kunstler -
워싱턴 장군을 보라. 너무나 늠름하게 바람을 가르며 승리를 향해 돌진하는 영웅 조지 워싱턴의 모습 아닌가? 자신감 있는 모습이 너무나 믿음직스럽다. 흡사 미국이라는 거대한 배를 이끌고 가는 영웅적인 면모를 가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이런 리더라면 새롭게 시작하는 미국을 맡겨도 충분히 잘 이끌어 갈 것 같다. 새로운 비전과 행동하는 리더십의 표본이다. 그런 국민의 바람을 온몸으로 담고 전진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긍정 또는 비평적인 대통령의 모습으로 패러디해서 만평 등에 많이 등장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행정부 장관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늪지대에서 헤매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패러디인 존 맥너프튼의 ‘늪을 건너다’ 이다. Crossing the Swamp by Jon McNaughton
정중앙에 바람에 휘날리는 미국 국기이다. 이 그림의 하이라이트이다. 이 배가 곧 미국이다. 그 리더가 조지 워싱턴이다. 그런데, 이 미국 국기가 시대적으로는 맞지 않다. 이 장면은 위에 얘기했듯이 1776년이다. 1776년부터 1777년까지의 미국 국기는 지금의 미국 국기 모양과는 다른 영국 문양이 들어가 있는 그랜드 유니언 플래그 Grand Union Flag 였다. 지금의 국기는 그 시기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럼 로이체는 몰랐을까? 에이, 아닐 거다. 이 정도의 대작을 그 정도로 고증을 하지 않고 그리지는 않았을 게다. 일부러 지금의 국기 모습으로 그린 걸 거다. 왜? 이 그림은 옛날 그림이 아니라, 이 그림을 보는 동시대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의 작품이니까. 지금의 미국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양한 인종들을 한 배에 태웠다.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 원주민 등 모두 한 배에 탔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만들어낸 미국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또한 일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원주민 모카신, 레깅스, 어깨 주머니, 농부 모자 등을 착용하고 있는 일반 원주민들이 평상복을 입은 채로 전투에 참여하였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피와 땀으로 함께 만들어낸 미국임을 시사하고 있다. 독립 전쟁 중에는 미국이 독립 후 원주민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해 주겠다는 약속과 조약을 통해 원주민들은 함께 전쟁에 참여하여 많은 피를 흘리며 싸웠다. 양쪽 진영에서 원주민들을 회유하여 전투에 참여시켰다. 이 힘든 독립 전쟁 후에는 원주민 국가가 완성될 줄 알았다. 하지만, 원주민들에게는 독립 전쟁 이후가 더 잔인한 전쟁이었다.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조약 위반뿐만 아니라 대학살도 서슴치 않았다. 미국의 많은 원주민들이 비슷한 운명을 겪었다.
이런 일을 겪은 아메리칸 네이티브 입장에서 이 그림은 너무나 불편한 그림이다. 영웅은 백인인 조지 워싱턴뿐이다. 나머지 원주민들은 모두 역사 속에 죽어 사라져 갔다. 그래서 원주민 시각에서 이 그림을 다시 그려낸 작품들이 있다.
캔트 뭉크만의 국민의 부활 Kent Monkman, Resurgence of the People, 2019. Photo by Joseph Hartman. Courtesy of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1965년 캐나다의 크리 Cree 라는 아메리칸 네이티브의 아티스트인 캔트 뭉크만 Kent Monkman 이 그린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워싱턴’ 재해석이다. 원주민이 주인공이다. 원주민이 만들어낸 미국이다. 그런데 자애로움도 갖추고 있다. 물에 빠져 있는 백인도 모두 보살핀다. 원주민의 미래인 갓난아기도 함께 있다. 속 시원한 그림이다.
제이콥 로렌스의 투쟁 시리즈 넘버 10 Jacob Lawrence Struggle Series—No. 10: Washington Crossing the Delaware, 195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흑인 아티스트인 제이콥 로렌스의 투쟁 시리즈 10번째 작품이다.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위싱턴’ 작품에 대한 그의 해석작이이다. 원래의 작품명은 좀 길다. 이 당시 밤에 건넌 사람들의 위태로운 경험을 기록해 둔 워싱턴 장군의 군사 보좌관인 텐치 틸먼의 기록에서 따왔다. ‘우리는 트렌턴에서 9마일 떨어진 맥컨케리 페리 McKonkey's Ferry 에서 강을 건넜습니다. 밤은 지나치게 가혹했습니다. 아무도 불평도 없이 버텼습니다.’ 그 힘든 과정의 불편함을 표현한 듯하다. 배에는 핏자국이 흘러내리고, 모든 것들이 뾰족해서 앉아 있기도 힘들고 날카롭고 파도에 심하게 흔들리는 배이다.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니라 이런 힘듦을 다 함께 이겨낸 그 배 안의 모두가 영웅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로버트 콜스콧의 ‘델라웨어를 건너는 조지 워싱턴 카버: 미국 역사 교과서의 페이지’ Robert Colescott, George Washington Carver Crossing The Delaware: Page From An American History Textbook, 1975, Seattle Art Museum
와, 이건 뭐 설명이 필요 없네. 그냥 흑인이 미국의 영웅이다. 흑인 없이는 미국도 없다. 작품명에 ‘미국 역사 교과서의 페이지 From An American History Textbook’ 라고 쓰여 있다. 교과서에서 자주 쓰이는 유명한 그림이라는 거겠지. 또한 조지 워싱턴이 아니라, ‘델라웨어강을 건너는 조지 워싱턴 카버 George Washington Carver’ 이다. 카버는 20세기 초 가장 저명한 흑인 농업 과학자이자 발명가, 농업 지도자로 살짝 비틀어서 조지 워싱턴만 이 나라를 세운게 아니라 조지 워싱턴 카버 같은 사람도 이 나라를 세우는데 기여했다 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 재밌지 않나?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광고에도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 자동차 보험 회사 가이코 Geico 광고가 하나 있는데 너무 재미있다. 정말 기발하다. 델라웨어 도로를 지나가는 워싱턴은 놀랍지? 그런데 자동차보험을 가이코로 갈아타서 세이브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냐! 이 광고가 그 유명한 작품을 패러디했다는 스토리를 알고 보는 거니 더 재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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