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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도슨트북 Dec 10. 2024

메트로폴리탄,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다리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수련이 있는 연못 다리 Bridge over a Pond of Water Lilies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1899

Oil on canvas

153.7 x 190.2 cm


모네와 피사로, 르누아르 등 인상주의 화가들을 후원하고 그들의 그림도 많이 사고팔았던 아트 딜러 듀랑-루엘 Durand-Ruel 은 1900년 1월 25일에 이 작품을 모네로부터 직접 구입한 뒤 다음 해인 1901년 1월 9일 미국의 설탕 정제 사업가이자 프랑스의 인상주의 작품을 후원한 최초의 미국인인 헤이비마이어 Havemeyer 에게 판매한다. 1929년 헤이비마이어의 부인인 루이진 헤이비마이어가 사망한 뒤 남편의 이름으로 이 작품을 포함한 142점의 작품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증한다. 이후 그녀의 세 자녀인 호레스 Horace, 엘렉트라 Electra, 애들린 Adeline 의 기증까지 거의 2,000여 점의 작품을 메트로폴리탄에 기증한다.


모네를 보여줘 Show Me The Monet, 2005, Banksy, Sotheby’s London: 21 October 2020

영국의 그래피티 아티스트인 뱅크시의 2005년 전시 ‘크루드 오일 Crude Oils: A Gallery of Re-mixed Masterpieces, Vandalism and Vermin.’에서 발표되었던 ‘모네를 보여줘 Show Me The Monet’ 작품은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다리’ 작품을 재해석해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뱅크시의 기발하고 절묘한 표현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어떻게 모네의 수련 작품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모네의 수련 다리 아래에 우리의 현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마트 카트와 도로의 주의 표시 고깔이 둥둥 쓰레기처럼 띄워져 있다. 현대의 과도한 상업성의 부산물인 쓰레기들이 우리 환경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너무나 잘 표현해서 감탄과 웃음이 함께 나오는 작품이다. 뱅크시의 이 작품은 2020년 10월 21일 소더비 런던 Sotheby’s London 경매에서 자그마치 $9,968,112 (약 135억 원)에 낙찰되어 또다시 한번 더 우리를 놀라게 했다.

현재 모네의 지베르니 가든 Monet’s garden at Giverny. From tammytourguide.wordpress.com

지금으로부터 약 140여 년 전인 1883년 44세의 모네는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 재정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파리 서쪽의 차로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지베르니 Giverny 에 정원이 함께 있는 큰 집을 렌트하여 살기 시작한다. 아트 딜러인 듀랑-루엘이 모네의 그림을 점점 더 많이 판매하면서 더욱더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고 그러면서 1890년 살고 있던 이 집을 구매까지 하게 된다. 완전히 자기 집을 가지게 된 모네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가든을 정비하여 꾸민다. 정원사가 많을 때는 7명까지 고용하였다고 하니 모네가 가든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가든의 디자인과 레이아웃을 직접 구상하여 그리고, 꽃과 식물에 대한 구매 송장까지 모네가 직접 작성하였다고 한다. 1902년에 이전의 가든보다 더 확장하여 4,000㎡ 까지 늘리고 물이 없던 공간은 멀리서부터 배수공사를 해 물을 끌어와 채우기도 하였다. 가든의 여러 곳에는 다른 관점의 가든을 작품 속에 담을 수 있도록 여러 개의 이젤을 설치하였다. 그렇게 모네는 수련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빛을 머금고 있는 수련을 하나, 둘 미친 듯이 그려냈다. 한 작품을 한 번 그리고 끝내는 게 아니라 계속 다시 손을 보고 수정하고 다시 그리고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작품은 12년 이상 그린 작품도 있다. 1890년 후반부터 1926년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모네는 수련 시리즈에 붓을 놓지 않고 약 250여 점의 어마어마한 작품을 남긴다. 그가 가든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그가 했던 말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는 갑자기 내 연못이 마법에 걸린 것을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모델이 없었다.

I saw, all of a sudden, that my pond had become enchanted...
Since then, I have had no other model.

-Claude Monet-

1920년에 스튜디오에서 수련 대작을 그리고 있는 모네. Monet in his studio in 1920.Credit. From "Mad Enchantment"
수련 Water Lilies, 1919, Claude Mone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수련 Water Lilies, 1914-26, Claude Monet, 뉴욕 현대미술관 MoMA

모네의 지베르니 가든 다리 Lilla Cabot Perry, Bridge in Giverny, France, 1899-1909, photograph, 3 7/8 x 5 1/8 inches (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수련이 있는 연못 다리 Bridge over a Pond of Water Lilies, 1899, Claude Mone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1893년 모네의 집에서 철도 선로 건너편에 있는 작은 땅을 추가로 구매하여 가든을 확장한다. 그 해 말 일본식 정원에서 많이 보이던 가든을 서로 연결하는 구름다리 형태의 인도교를 설치한다. 그리고 이 다리가 포함되어 있는 그림을 1895년에 세 점 그리고, 1899-1900년 사이에 18개의 연못 위의 다리가 있는 수련을 그린다. 물 위에 떠 있는 수련들 위에 과감히 그림의 정 중앙을 가로지르는 아치형 다리를 얹으면서 모네의 수련 그림은 왕관을 씌워준 느낌이다. 모네는 이렇게 너무나 사랑하는 지베르니 가든에 자신의 마음처럼 왕관을 씌워준다.

일본 인도교 The Japanese Footbridge, 1899, Claude Monet,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일본 인도교 The Japanese Footbridge, 1918, Claude Monet, Musée Marmottan Monet, Paris
일본 인도교 The Japanese Footbridge, 1920-24, Claude Monet,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처음의 선명하게 보이던 다리와 가든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고 형태의 윤곽이 흐릿하게 사라지는 모습으로 모네는 수련 그림을 그린다. 처음의 구상화가 추상적인 형태의 그림으로 점점 변해간다. 이러한 작품의 변화를 보고 모네가 추상화의 문을 열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모네의 수련 다리 그림은 가든을 넘어 이제는 그의 감정을 쏟아부어 놓은 것 같아 나의 마음도 덩달아 같이 불타오른다. 왜 이렇게 색이 더 빨갛게 격렬해지고 형태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표현한 걸까? 작품 연도가 1920년-24년이면 그의 나이 80세-84세, 세상을 떠나기 2년 전…


1879년 첫 번째 부인인 카미유 모네 Camille Monet 를 자궁암으로 먼저 보내고, 1911년 모네의 두 번째 부인인 앨리스 Alice 가 또 먼저 죽고, 그녀의 딸인 블랑쉬 Blanche 와 결혼한 그의 첫 번째 부인의 아들 진 Jean 도 1914년 먼저 떠나보낸다. 재혼한 와이프의 딸과 첫째 부인의 아들이 결혼까지 한다고? 나의 상상력은 아직도 한계가 많은 듯하다. 암튼,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낸 모네는 심한 우울증에 빠지고 이 시기에 백내장의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더니… 백내장 수술을 하면 되는데 모네는 1913년 안경만 처방받고 백내장 수술을 거부한다. (1923-4년에 결국 수술을 받게 된다.) 그 후 색에 대한 인식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림의 색 또한 더 붉고 어둡게 표현한다. 백내장을 앓게 되면 장파장인 붉은 계열의 빛이 혼탁해진 수정체를 더 잘 통과하여 망막에 도착하기에 빨간색을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빨간색 계통의 색이 더 많이 보여지게 그려진 작품들이 많은 거구나! 이 정도면 작품 활동을 쉼 직도 한데 모네는 멈추지 않고 이러한 어려움에도 작품을 한 층 더 다양하게 표현하고 새로운 예술로 승화시킨다. 예술에 대한 열정과 애착이 대단하다. 내 일에 대한 나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된다. 




Portrait of Claude Monet, by photographer Nadar, c. 1899


클로드 모네 1840 - 1926

지금은 우리가 모네를 인상주의의 대가라고 부르지만, 사실 처음부터 그런 그림을 그리던 화가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은 정말 잘 그리던 친구였는데, 11살 때부터 약 4년 동안 르아브르의 지역 미술학교에서 수업을 들었던 그때부터 그는 학교의 선생님과 친구들의 캐리커쳐를 잘 그려주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가 15살, 18살 때 그렸다는 캐리커쳐 한 번 볼까?

왼쪽: 책상에 서 있는 렉토 선생님의 캐리커쳐 Claude Monet, Caricature of a Man Standing by His Desk (recto), 1855-1856, Art Institute Chicago, Chicago.

오른쪽: 나비맨이라 불리는 쥘 디디에의 캐리커쳐 Claude Monet, Caricature of Jules Didier (Butterfly Man), c. 1858, Art Institute Chicago, Chicago, IL, USA.


이런 걸 보면 재능은 정말 타고 나는 걸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좌절이다. 모네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 당시?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 봐도 우리가 보통 잘 그리는 그림이라 말하는 클래식한 그림도 끗발 나게 그렸다. 이게 모네 그림 맞나 싶을 정도로 입이 쩍 벌어진다. 얼마나 잘 그렸는지 어디 한 번 볼까? 아래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모네의 대표 그림 중에 하나이니 놓치지 말고 꼭 보시기 바란다.


생트-아드레스의 정원 Garden at Sainte-Adresse, 1867, Claude Mone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이게 모네가 그린 그림이라고? 바다 지평선의 정확한 수평 맞추기, 땅, 바다, 하늘의 정확한 가로 3등 분할, 깃발의 정확한 수직 맞추기, 적당히 떨어진 곳의 약간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내려다보는 각도 등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지금의 인스타그램 사진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사진 같다. 모네가 살고 있던 르아브르의 근처 해변 휴양지인 생트-아드레스에서 가족과 함께 휴가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맨 앞에 중절모 쓰고 앉아 있는 분이 모네의 아버지인 아돌프, 그 오른쪽에는 모네의 이모인 마리-잔 레카드레, 그리고 중앙에 서 있는 두 커플은 이모의 조카인 아돌프-에메 레카드레와 아내인 소피 라고 한다. 그 당시 평화롭게 휴가를 즐기는 프랑스의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오른쪽의 파랑, 하양, 빨강 깃발은 프랑스의 국기이고, 오른쪽은 아마도 그 지역의 세일링 클럽 또는 스페인 국기일 거라 예상한다. 이 그림의 구도는 그 당시 유럽에 처음 들어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요에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 그림이 그려진 지 12년 후인 1879년 제4회 인상파 전시회에 첫 전시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이 그림 앞에서 휴가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아- 나도 휴가차 뉴욕에 왔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같이 휴가를 즐기는 기분으로 업 되는 느낌이다.

From flickr.com

이러한 클래식한 그림을 그리던 모네에게 그림의 대변화가 찾아온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터지고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약 1년간 런던에서 생활한다. 그곳에서 모네 그림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주는 영국의 화가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의 템즈 강의 안개를 묘사한 작품 접하고 터너의 빛 처리에 큰 충격의 깊은 감명을 받는다. 터너의 그림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가 했던 말을 빌어 설명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내가 느낀 것을 그린다.

I do not paint what I see, but what I feel.

-J. M. W. Turner-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 모네는 그 전과는 완전히 다른 빛 표현의 그림을 그린다. 이 빛을 가지고 모네는 인상주의라는 거대한 사조의 문을 연다. 그래서 우리가 모네를 ‘인상주의의 문을 연 화가’라고 부르고, 터너는 ‘인상주의보다 50년 앞 선 화가’라고 부른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이 두 대가의 그림을 비교해서 한 번 볼까?

워털루 다리 위의 템즈강 The Thames above Waterloo Bridge, 1830-35, 윌리엄 터너 Joseph Mallord William Turner, Tate
해돋이 Sunrise, 1872, Claude Monet, Getty Center, Los Angeles

내가 느낀 것을 빛으로 표현한다는 게 이런 그림이구나. 그 당시 클래식한 그림만 잘 그린 그림이라고 평가받던 그 시대에 터너의 그림도 그렇고 모네의 그림도 그렇고 인정을 받지 못한다. 특히나 모네는 물감으로 그린 스케치겠지, 미완성 작품이겠지, 모네도 이젠 감 떨어지고 한 물 갔네, 벽지로도 쓰지 못할 그림 등으로 엄청난 폄하를 받는다. 하지만 모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이 빛의 그림을 밀고 나간다.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unrise, 1872, Claude Monet, Musée Marmottan Monet, Paris

모네는 이 그림의 제목을 그냥 르아브르의 해돋이가 아니라 흐릿한 느낌으로 내가 받았던 인상적인 해돋이라는 의미로 ‘인상 Impression’ 이라는 단어를 넣어 ‘인상, 해돋이 Impression, Sunrise’ 라고 짓는다. 그리고 이 작품을 1874년 전시회에 출품하는데 함께 전시회를 주관했던 드가, 피사로, 르느와르, 시슬리와 함께 대표적인 화가였던 모네에게 전시회의 제목을 요청했고 모네는 주저함 없이 ‘인상이라고 넣어! Put Impression’ 하면서 이 첫 전시회의 이름이 ‘인상주의 전시회’로 되면서 그 거대한 인상주의 사조의 문이 열린다.

1874년 인상주의 전시회의 카탈로그 Catalogue for the 1874 Impressionist Exhibition

1874년 첫 번째 인상파 전시회에 대한 Charles Amédée de Noé의 캐리커처. 그림 속 아래 문구는 ‘미술의 혁명, 그리고 끔찍한 시작 Revolution in Painting! And a terrorizing beginning'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모네 작품들 From The Met.


건초더미(눈과 햇빛의 효과) Haystacks (Effect of Snow and Sun), 1891, Claude Mone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1891년 지베르니에 살고 있던 모네는 집 근처 들판에 쌓여 있는 건초더미를 약 30여 점 그린다. 어떻게 보면 참 특별할 것 없는 시골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건초더미를 이렇게 멋진 그림으로 그리다니 예술가는 시각은 다른 걸까? 처음에는 화창한 날씨와 흐린 날씨의 두 개 작품만 그릴 생각으로 캔버스를 준비하였는데, 그리다 보니 끊임없이 변화하는 빛과 공기의 흐름을 두 개로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이내 느낀다. 그래서 더 많은 캔버스를 건초더미처럼 스택으로 쌓아 올려놓고 다양한 빛과 분위기를 담아낸다. 캔버스 스택스 Canvas Stacks… 1차로 야외 현장에서 그리기 시작하고,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수정, 완성한다. 이렇게 모네는 ‘똑같은 그림이더라도 빛에 따라, 공기에 따라, 날씨에 따라, 구도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이게 바로 인상주의라는 거다’라고 말하는 듯이 작품으로 표현해 낸다.

모네의 건초더미 작품 시리즈

이 건초더미는 1891년 5월 미술 딜러인 듀랑-루엘에 의해 15 작품이 전시되자마자 약 한 달 만에 모두 판매된다. 경제적으로 모네에게 큰 성공을 안겨준다. 지베르니의 저택과 부지를 완전히 사고 수련 연못 공사도 모네 뜻대로 작업할 수 있게 된다.  30여 개의 작품 중 20여 개가 미국에 판매된다. 여러분들이 여행하다 보면 모네의 건초더미 작품을 많이 만날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게티 센터,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는 무려 6점 등 전 세계 미술관에 퍼져 있고 그중에 하나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작품이고 개인 소장품으로도 많이 있다. 저 오르세 미술관 다녀왔는데 못 봤는데요? 너무나 흔한 주제이다 보니 아마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눈에 들어오고 반갑게 여기도 있네? 라며 인사를 나누게 될 것이다. 최근까지도 경매로 거래가 되고 있는데, 2019년에 소더비에서 거래된 모네의 건초더미는 무려 1,400여 억 원이다. 그럼, 다른 건초더미 작품들 못해도 1,000억 썩은 하겠지? 1,000억 X 30여 점 = 3조 원??!! ‘장사는 모네처럼’….

모네의 건초더미 6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Fro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루앙 대성당: 정문(햇빛) Rouen Cathedral: The Portal (Sunlight), 1894, Claude Mone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파리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의 서쪽 노르망디 주의 루앙이라는 도시에 자리 잡고 있는 고딕 양식의 최고봉이라고 일컬어지는 루앙 대성당이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세 개의 탑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성당은 약 800여 년에 걸쳐 프랑스 종교전쟁과 2차 세계 대전, 번개와 허리케인 등으로 건설과 재건을 반복하여 초기의 고딕 양식과 후기의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처음에는 그 크기와 웅장함에 압도당하고 나중에는 성인 한 명 한 명을 빼곡히 새겨 넣은 벽면의 디테일에 또 한 번 놀란다.

루앙 대성당의 정면 모습 From expedia.com
정면과 조각 갤러리 From Herbert Frank from Wien (Vienna), AT
서쪽 정면의 대주교와 사도들 From Herbert Frank from Wien (Vienna), AT

모네는 1892년-93년 겨울 1월 말-2월 초 성당 정면 맞은편 그랑퐁 거리에 있는 2층 방을 빌려 봄까지 머물면서 창문을 통해 아침 해뜨기 전부터 저녁 해질 때까지 다양한 시간과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햇빛에 비치는 성당 정문을 그리고, 지베르니의 작업실로 가져와서 약 30여 점을 완성한다. 처음의 시리즈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그림들을 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여 년 전에 어떻게 저렇게 그릴 생각을 했지? 지금의 핸드폰 카메라의 필터 사진들을 보는 느낌.

모네의 루앙 대성당 시리즈 From anniejackboutique.com
지금의 휴대폰 카메라의 필터 사진

이 모네의 루앙 대성당 작품 역시 약 30여 점의 시리즈로 있기에, 전 세계 미술관 여행 다니다 보면 자주 접하게 될 것이다. 여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에도 있고, 루앙 대성당에는 가장 많은 16점, 파리 오르세 미술관, LA의 게티 센터 등에서 뜻하지 않게 만날 것이다. 여기도 있네? 반갑게 인사 한 번 해 주시길. 처음 작품 앞에 서면 뿌옇고 희미하고, 흐릿하고 이게 뭔가? 싶을 것이다. 루앙 대성당은 디테일이 너무나 놀랍다는데 모네의 루앙 대성당 작품에서는 다 날려 버렸네? 왜 이렇게 그렸지? 너무 대충 그린게 아닌가, 싶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모네 작품 감상법!


모네의 시리즈 작품들이 많기에 여행하시다 보면 정말 자주 만나는 모네의 작품들, 가까이에서 보는 것도 좋지만, 모네 작품의 진가는 최대한 뒤로 가서 멀리에서 보기를 권해 드린다. 멀리 떨어져 봤을 때의 전율! 가까이에서는 희미하게 보였던 작품이 멀리에서는 전체적인 윤곽이 선명해지고 그림 안에 드리워진 햇빛이 눈에 들어오면서 확 달라진다. 나도 모르게 아, 탄성이 나온다. 이래서 사람들이 그림 보러 다니는구나 싶다. 모네는 이 느낌을 주려고 그림을 이렇게 그렸구나. 그림 안에 빛을 넣었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아, 작품명에 그래서 Sunlight 이라고 써 놓았구나. 모네는 말한다. ‘내 작품에 빛을 이렇게 담았습니다.’ 우리는 말한다. ‘빛의 화가, 모네’라고.


팝아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이 모네의 루앙 대성당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Rouen Cathedral, Set 3, 1968-69, ROY LICHTENSTEIN, The Broad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모네 작품들 From The Met


그림을 그리러 나갈 때,
당신이 전에 가지고 있던 대상에 대한 생각은 잊도록 노력해라. 나무, 집, 들판…

단지,
작은 파란 정사각형, 핑크 직사각형, 노란 선들이라 생각하고,
당신에게 보이는 그대로 정확한 컬러와 모양을 그려라.

-Claude Monet-

네 나무들 The Four Trees, 1891, Claude Mone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The Met

이 작품 너무 좋다. 처음에 딱 봤을 때, 길게 늘어져 있는 철조망 사이로 보이는 풍경쯤으로 보았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재미있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품명을 보니 네 그루의 나무들, 나무가 어디 있지? 아, 저 긴 게 나무구나. 하늘 높이 길게 뻗어 있는 나무, 하늘 높이 솟은 나무의 끝이 보이지 않게 그린 것도 재미있고, 풀숲 아래 강가의 물에 비친 모습으로 아래까지 연결해서 그린 것도 재미있다.

일반적인 포플러 나무의 모습. From suryamachinery.in

1891년 여름과 가을 즈음 모네는 지베르니의 모네 집에서 몇 킬로 떨어져 있는 엡테 강의 포플러 나무들을 약 10여 점 그렸다. 이 나무들을 그리던 중 마을이 포플러 나무를 경매로 팔아 베어질 위기에 처했는데 그림 그리는 시간을 더 벌고자 모네는 그 지역의 목재 상인들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하였다. 돈이 많긴 많았나 보다, 이렇게 까지 한 것을 보면. 모네가 그림들을 모두 다 그린 다음에 목재 상인들이 작업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영국 런던의 국회 의사당 (안개효과) The Houses of Parliament (Effect of Fog), 1903-4, Claude Monet,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영국 런던의 템즈 강 너머로 보이는 국회의사당의 모습이다. 이 그림 또한 약 20여 점의 시리즈로 그린다. 프랑스 루앙 대성당의 영국 버전으로 보인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중 징집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모네는 런던의 도시에 매료되고, 산업 혁명의 분위기와 영국의 대화가 윌리엄 터너의 작품에 푹 빠져 언젠가 다시 오리라 결심한 후, 1899년 런던의 사보이 호텔 방을 빌려 그 방에서 보이는 넓은 전망을 캔버스에 담아낸다. 보통 직접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고 지베르니 집에 가져와서 완성하던 그 전의 관행을 깨고, 모네는 이 그림 시리즈의 경우 사진사를 런던에 보내 사진을 찍어오게 한 후 그 사진을 보고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태도에 대한 비판에 대해 모네는 작품을 완성하는 수단만 달라진 것일 뿐 최종 판단은 관람자 판단의 몫이라 말한다. 멋있네, 자신의 작품에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겠지?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 전망 Photo by Diliff
모네의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시리즈 From thomaschazelle.fr


모든 그림의 진정한 주제는 빛이다.

The real subject of every painting is light.

-Claude Monet-


모네가 자신의 예술 활동에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보여주는 작품이 하나 있다. 이 정도까지 한다고? 이렇게 까지 해야 이름 하나쯤 남길 수 있나, 싶다. 1879년 모네의 첫 번째 부인인 카미유가 병으로 죽었을 때 그 모습을 모네는 그림으로 그린다. 대단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후 곡이 가장 잘 써진다는 작곡가의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화가도?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림 그릴 생각을 하다니, 이게 예술가의 숙명인가? 그 당시 모네의 얘기를 한 번 들어보고 작품을 보면 더 눈물 난다. 


새벽녘에 나는 내가 가장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한 죽은 여인의 옆에 앉아 있었네. 그녀의 비극적인 잠을 응시하고 있었지. 그리고 문득, 내 눈이 죽은 사람의 안색의 변화를 좇고 있음을 깨달았네. 파랑, 노랑, 회색의 색조.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내 곁에서 사라져 가는 그녀의 모습을 마음속에 새겨두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더군. 하지만 소중한 사람을 그려보겠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그 색채가 유기적인 감동을 불러일으켜서 나는 반사적으로, 내 인생을 지배해 온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거야. 연자매를 돌리는 동물처럼 말일세. 나를 동정해 주게, 친구.

- Claude Monet -


임종을 맞는 카미유 모네 Camille Monet on her deathbed, 1879, Claude Monet, 오르세 미술관 Musée d'Orsay




인생에서 한 번은 예술이 주는 기쁨과 위안을 받아 보시길 바라는 작은 바람입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저작권은 해당 자료의 저작권자에 있음을 알립니다. 본 저작물에 인용된 자료의 게시 중단 등을 원하시면 shaan@daum.net 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즉시 삭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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