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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주의자 Jun 29. 2021

퇴근길, 한국의 미세먼지가
지긋지긋하다면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 ⑥ 인도의 델리


다른 국가보다 더 조심스럽다. 한국에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좋아하는 것을 넘어 인도의 매력에 푹 빠져 몇 번씩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미세먼지에 고통받고 있는 한국인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인도 여행이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한국보다 더 나쁜 공기 질 때문이었으니까. 



한국에서라면 청량한 가을 하늘을 만끽하고 있을 어느 날, 드디어 배낭 여행자들의 성지라는 인도에 도착했다. 현대적인 시설의 공항에 도착하여 쾌적한 공항 철도를 타고 30분쯤 달려 뉴델리 기차역에 도착, 오토 릭샤를 타고 숙소가 위치한 빠하르간즈 중심에 도착하고서야 느꼈다. ‘아, 이제야 내가 아는 그 인도에 왔구나’ 그곳의 첫인상이란 한마디로 ‘카오스’, 델리가 그 직전에 여행한 카트만두보다 1.5배 더 정신없다고 들었는데 정말 그 말이 딱 맞았다. 그야말로 이 혼돈의 도시에서는 사람, 동물, 오토 릭샤 등등 모든 물체가 제멋대로 움직여 잠시라도 정신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길 한가운데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야성의 남자와 그 옆을 우아하게 걸어가는 육중한 소의 뜬금없는 조화를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은 이 예측 불가능함이 인도의 매력이라고 했다. 독특한 것을 좋아하는 나 역시 ‘나쁜 남자’와도 같은 인도와 사랑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다음 날 숙소 테라스에 올라 온 시내가 먼지에 잠겨 앞이 보이지 않는 회색 빛 전망을 보니,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걸으면 침을 삼키기가 힘들 만큼 목이 칼칼해졌고, 적어도 30분에 한 번씩은 연속으로 재채기가 나왔다. 카트만두의 매연으로 인해 발병했던 다래끼가 재발했고 잠깐만 밖에 나갔다 와도 콧속에서 시커먼 먼지가 묻어 나왔다. ‘도대체 현지인들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숨 쉬고 살지?’ 알고 보니 델리는 중국 도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최강의 매연 도시였다. 2020년 11월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허용 수치를 무려 30배나 초과했고, ‘2018년 세계 공기질 보고서’에 따르면 (초)미세먼지가 심한 도시 3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서울은 27위) 그런데 델리만큼은 심하지 않으니까 그나마 조금이라도 한국이 그리웠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다. 어느덧 우리의 비교 대상이 중국과 인도가 되다니. 



델리를 비롯한 인도의 다른 도시들을 여행을 하며 ‘자유롭게 길을 걷는 즐거움’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정해진 차로가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고, 앞 뒤로 빽빽하게 뒤섞인 오토바이와 오토 릭샤가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아슬아슬 멈출 때마다 움찔했다. 가끔은 느리지만 묵묵하게 전진하는 소를 흠칫 피해야 할 때도 있었다. 마음 편히 두 팔을 흔들며 씩씩하게 걷는 행위가 그리워졌다. 실제로 한 달 간의 인도 여행 후 다음 국가인 스리랑카에서 도보를 걷는데, 오랜만에 사지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해방감을 느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한번, 이것은 인도에서 영적인 깨달음이나 다이내믹함을 즐기기보다, 숨 쉬고 먹고 자는 일차원적인 욕구에 더 집중했던 한 개인의 불호임을 밝힌다. 사실 먹는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현지에서 먹는 인도 음식은 입맛에 정말 잘 맞았다. 걸쭉한 ‘라씨’와 온갖 향신료를 넣고 냄비에 끓여서 만든 ‘마쌀라 차이’, 화덕에서 갓 구운 쫄깃한 ‘난’과 향긋한 ‘커리’, 처음 먹어 보고 반한 ‘오크라 튀김’과 아이스크림 ‘사프란 쿨피’까지... 이 음식들을 먹으러 인도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악명 높은 인도인들에 대해서도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영악해질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애초부터 기대치를 낮추고 가서인지 오히려 ‘오, 이 사람은 진짜 착하고 진실하네’ 하고 느낀 적도 많았다. 물론 좋은 인도인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말이다.  



엘살바도르와 쿠바, 인도에서뿐만이 아니었다. 선진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도 한국이 그리웠던 적은 많았다. 인내심을 시험하지 않는 세계 최고 속도의 인터넷, 24시간 환영해주는 편의점과 어떤 물건이든 원하는 곳으로 믿기지 않는 속도로 배달받을 수 있는 편리함, 두뇌 회전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편안함, 늦은 밤에도 마음 놓고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 건강식이면서도 맛있는 한식…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서려 있으며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기에, 내 조국 한국은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나라였다. 


☆ 2018년 10월에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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