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희 Sunghee Tark Jul 31. 2022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시작점.

인생의 반을 해외에 살면서 고민하는 나의 뿌리. 

2007년 1월 10일, 만 13살에 난 인도를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지극히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인도였다. 아니, 해외였다. 2000년도 초에 미국과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를 향해 가는 조기 유학 열풍에 이어 필리핀, 베트남, 인도로 가는 한국의 청소년의 수가 증가하고 있었다. 2006년과 2007년엔 조기 유학을 가는 학생들의 수가 1995년부터 가장 많았는데 그 이유는 서울과 경기도 외, 경남 마산에 사는 나도 그 열풍에 합류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해본다.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00501062900004 


1월 10일, 인천 공항은 무척이나 추웠다. 중학교 1학년도 마치지 않은 내겐 첫 인천공항이었다. 


그전에 가본 해외라고는 부모님과 갔던 상해 패키지 투어. 김해공항에서 출발해서 3박 4일을 보낸 상해에서는 도심의 큰 전광판과 소매치기를 보았다. 그 후론 처음으로 경험할, 거기에 부모님 없이 혼자 경험할 해외여행(?)에 나름 긴장 반 설렘 반. 부 푸른 가슴을 안고 가장 아끼는 옷과 책들을 캐리어에 넣었다.


마산 시외터미널에서 부모님, 동생과 함께 새벽 버스를 타고 5시간의 긴 시간이 지나 공항에 도착했다. 아빠가 공항에 미리 도착한 고모에게 연락을 하는 사이, 나는 오랜만에 보는 고모에 대한 긴장감을 추슬렀다. 군인이셨던 고모부와 교사였던 고모는 큰 아들을 일찍이 인도로 유학을 보냈고, 유학원의 케어를 못 마땅하게 여기신 고모가 둘째 아들과 함께 인도로 직접 가시는 길이었다. 


"어머, 동생!" 고모가 특유의 콧소리와 함께 우릴 향해 손을 저으셨다. 


경기도에 살고 계셨기에 일 년에 많아도 한 번, 두 번 밖에 보지 못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나오는 어색함은 오랜만에 보는 고모와 작은 사촌 오빠를 보고서도 숨길 수가 없었다. 내 특유의 장난스러움을 숨기고 조용히 인사했다. 고모와 사촌 오빠 외에도 두 명의 또래 아이들이 있었다. 나와 오는 몇 달을 같이 보낼 친구들이라고 했다. 




공항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줄을 서서 체크인을 하고, 짐 무게를 쟀다. 아빠가 올린 나의 슈트케이스 무게는 25kg. 분명 어제도 여러 번 쟀는데 가정용 체중계라 정확하지 못했나 보다. 허용되는 23kg를 넘었다. 당황한 표정으로 승무원 언니를 바라봤는데, "유학을 가나 봐요. 어머니 아버지가 챙겨주신 것들일 텐데, 이번에는 보내드릴게요. 다음번엔 꼭 무게 확인해서 준비해주세요." 라며 옅은 미소와 함께 슈트케이스에 태그를 달아주셨다. 분명 오는 십여 년 세월 동안 이 말을 몇 번을 반복해서 들을지 상상도 못 하고 나는, '꼭, 무게는 23킬로. 꼭' 꽤나 진지하게 (미래의 무게 초과는 미래의 나 자신에게 맞긴 후) 다짐했다. 


내 몸 크기 만한 슈트케이스를 보내고 나니 몸이 가벼워져 조금은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인천 공항 안에는 식당이 여럿 있었고 가면 먹기 힘들 테니 한식을 먹고 가자던 고모의 제안과 함께 나를 포함한 4명의 아이와 그 가족들은 한식당으로 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비행기 시간을 2시간 남긴 채 출국장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이제 겨우 중학생이 된 아이들 4명을 데리고 가는 고모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이 시간적 여유가 필수라고 느끼셨을 거다. 엄마의 손을 잡고 있던 나도 놓고, 고모 옆으로 걸어갔다. 


"잘 갔다 올게, 몇 달만 있으면 다시 봐!"라고 말을 하며 엄마를 올라 봤는데 울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엄마의 눈물이었다. 엄마와 아빠 사이 조용히 서있던 동생의 까만 눈동자와 나를 바라보던 눈빛도 기억이 난다. 조그만 입을 벌리고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끔뻑 끔뻑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빠의 걱정된 눈빛과, 믿음의 눈빛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괜찮다며,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드는 세 명의 긴 팔이 멈추질 않았다. 엄마 아빠 은희를 한번씩 꼭 안고 고모 뒤를 따라 달려 들어갔다. 출국장으로 들어와서도 줄 서있는 내내, 자동문이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할 때마다 그 자리에 서있는 엄마 아빠 동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기분이 묘했다. 먹먹함과 설렘이 공존했다. 침을 삼킬 때마다 입 안쪽이 아팠다. 눈물을 참을 때 나는 느낌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공항 게이트를 거쳐 비행기에 앉은 후에야 깨달았다. 떠나는구나. 내가 꿈꾸던 곳으로. 이제 곧 만으로 14살이 될 내가 꿈꾸는, 나보다 더 큰 세상으로의 첫 여행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