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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희 Sunghee Tark Jul 31. 2022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시작점 II

2007년, 만 13살 인도에 도착하다. 

경유는 싱가폴에서 했다. 중학교 1학년 사회 시간에 배운 싱가폴은 작은 도시 국가. 고모가 미리 시티투어를 알아봐 둔 덕에, 장시간 경유가 덜 지루할 것으로 예상했다. 시티 투어를 하기 위해선 일단 싱가폴로 입국을 해야 했는데 첫 입국 심사였다.

이 날을 대비해서 막내 이모가 사준 <박경림의 영어 성공기>를 달달 외우지 않았던가. 비행기 안에서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그의 생생한 공항에서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최악의 상황에 대비했고 표현을 익혔다. 그래서 사실 입국 심사 줄에 서서 긴장보다는 실전에 써볼 수 있다는 설렘이 더 가득했다.


내 차례였다. 막내 이모가 책과 함께 준 갈색 여권 가방에서 여권을 꺼냈다. 어렸을 때 일본 장난감 회사에서 일을 하던 이모의 출장을 좋아했다. 출장 갔다 오는 이모는 항상 초콜릿과 텔레토비 인형 등, 나와 동생을 위한 선물을 한가득 가져왔었다. 수 차례 출장의 경험에서 오는 센스 있는 이모의 선물과 함께 나가는 나의 첫 해외여행이라니. 나 자신이 조금 더 멋있다고 느껴졌다. 


"Hello, what are you here for?" 가장 첫 문장이었다. "Tourism. City Tour."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그러곤 고모를 가리켰다. "My aunt." 한 단어였지만 어린아이 혼자 여행하고 있고, 시티 투어를 간다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하던 입국 심사관의 표정이 풀렸다. 그리곤 내 여권을 돌려줬다. 


시티 투어를 위해 올라탄 버스에는 지루한 장기 경유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영어 학원에서 보던 외국인 선생님이 내 인생 유일한 외국인이었는데, 버스 안에서는 철저히 내가 외국인 같았다. 아니, 버스 안 우리 모두가 다 외국인이었다. 오는 10여 년간 계속 깨닫게 될 또 다른 배움이었다.




경유 시간이 지나고,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인도에 도착했다. 뭄바이 공항은 당시 공사 중이었고, 인천의 화려한 공항과는 다소 다른 행세였다. 입국 심사를 거치고 나오자 벽이며 문이며, 모든 것이 <나 공사 중>을 알리는 것 같았다. 뜨거운 공기가 가득한 홀로 이어졌다. 지붕이 없었다. 짐을 찾고 특유의 향기와 습도에 피곤함이 씻겨나갔다. 입고 온 패딩을 벗어 손에 들었다. 온 사방에서 나를 향한 손이 나왔고 그 손을 뿌리치며 앞에 걷고 있는 고모를 따라 나갔다. 유리 문이 개방되고 한껏 더 뜨겁고 축축한 공기에 눈을 찌푸렸다. 


누가 내 짐을 들었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내 몸 쪽으로 짐을 당겼다. 눈을 쳐다볼 용기도 없었다.


"승희야, 괜찮아. 놓아봐 ㅎㅎ" 


놀라 쳐다보니 사촌오빠와, 택시 기사님이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지도 못한 것이다. 


여전히 습도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추운 겨울의 한국에서 출발해 도착한 인도는 내게 너무 더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계속 손을 뻗고 말을 걸었다. 못 알아듣는 말들과 분위기 사이로 어색함, 새로움, 두려움 그리고 내면에서 찾은 작은 용기 하나와 함께 나의 첫 해외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의 인도에서의 생활은 4년이 넘는 시간, 5년이 안 되는 시간이 지난 후 막을 내렸다. 그중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은 고모와 살았고 그 후의 2년은 united world college (UWC)라는 기숙학교에서 보냈다. 


원래 계획은 겨울방학을 보내고 마산의 중학교로 복귀하는 것이었으나, 2007년 1월에 가서 느낀 새로움과 배움은 너무 짜릿했다. 영어 문법을 책으로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나가서 사용해볼 수 있다는 것, 내가 쓰는 문장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단어를 더 많이 알아야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신문을 펼쳐놓고 모르는 단어를 형광펜으로 칠했다. 처음에는 한 칼럼의 모든 문장을 빼곡히 채우던 형광펜도 점점 줄어갔다. 형광펜으로 하이라이트 된 단어는 무조건 몸으로 익혔다. Sprint라는 <짧은 구간을 빠르게 달리기>라는 단어를 익히기 위해 방의 좁은 공간을 빠르게, 달렸고, 몸을 그려 장기 하나하나에 영어 단어를 붙였다. 새로운 단어를 잊지 않기 위해 배운 날 친구나, 선생님에게 그 단어를 써봤고 그렇게 그 단어가 일상생활에서도 쓰이는지, 혹은 학술적인 단어인지 체감해갔다. 인도에 가서 태어나 처음으로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하기를 해봤다. 한국에서도 중학교 1학년을 마칠 때까지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이었지만 아침잠이 많아 밤샘을 더 선호했다면, 인도에서는 일단, 일어났다. 아침에 단어 몇 개를 더 외우고 시작하는 하루엔 대화가 더 풍부해질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고모가 학교를 등록해보지 않겠냐-라고 제안을 주셨고 나는 덥석 좋다고 했다. 부모님은 단기 유학을 생각하셨을 테지만, 나는 장기 유학도 나쁘지 않을 거라 내심 짐작했다. 학교 등록 상담을 가는 날에는 특히 더 단정히 입고 단어를 몇 가지 더 외우고 갔다. 박경림 영어 성공기의 숙어도 몇 외웠다. 


중학교 1년을 끝내고 온 나는 7년의 공식 교육 과정을 마친 셈이었다. 인도는 영국식 Cambridge IGCSE 프로그램을 따르는 곳이 많았는데 이 학교 대부분은 초중고 가 통합되어 있는 학교였다. RIMS International School이라는 주변에서 평이 좋은 곳을 고모와 함께 갔다. 상담을 해주시는 분께서는 지금은 벌써 봄학기가 시작되었고, 공부를 혼자 하다가 8월에 다시 와서 8학년으로 제대로 맞춰 등록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가능하다면 시간을 아끼는 것이 좋지 않겠냐-라는 고모와의 이야기 끝에, 지금 8학년을 한 학기의 반만 하고 졸업하고 싶은 내 의사를 표현했다. 이렇게 된다면 오는 8월엔 8학년이 아닌, 9학년으로 입학을 할 수 있는 거였다. 잘할 수 있을 거란 욕심, 그리고 부모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드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꼭 그러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상담 선생님이 절레절레 고민을 하셨지만 그럼 성취 평과를 해보고 하자고 시험지 한 장을 주셨다. 


시험은 딱히 어렵지 않았다. 지금 기억나는 내용으로는 얼룩말이 나오는 창의적인 문제를 풀어야 했던 것, 간단한 수학과 과학, 영어 질문에 답을 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험지를 다시 건네받았을 때는, 상담 선생님이 웃고 계셨다. 해보자. 지금 학년으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확신을 받고 내일부터 입을 교복을 건네받았다. 




RIMS라는 국제학교에서 8학년 봄학기의 반을 다니고, 9학년 10학년을 수료했다. 작은 학교였지만 전교 부회장 선거에도 나가서 선출되어 활동하고, 10학년을 수료하고 치는 IGCSE 보드 시험에서 성적을 학교에서 가장 높게 받았다. 비법이라는 것은 없었다. 영어 표현이 부족했기에 교과서를 아예 외웠었다. 외우다 보니 문장력이 늘었고, 외우다 보니 쉽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하루에 무조건 복습과 예습을 함께 했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책을 베껴 쓰고 문장력을 늘려갔다.


하지만 내 생활이 무조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의 생활은 가족이 아닌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고모가 사업을 키워가시면서 사촌오빠들과, 나와 함께 온 2명의 아이들 외에도 다양한 친구들이 고모의 홈스테이를 거쳐갔다. 넓은 집이었지만 그래도 북적북적했고, 식사를 두 팀에 나눠서 하고 도우미 선생님들을 여럿 둘 정도로 사업은 확장했다. 


친구들 사이에 경쟁도 있었고 시기와 질투, 그리고 우정과 사랑도 있었다. 작은 공동체에서 만나 처음 부모님 곁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함께 적응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목표는 뚜렷했다. 가고 싶은 학교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United World College. 200명의 전교생 중에 80개가 넘는 문화와 국가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만큼 입학하기도 아주 어려운 학교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당찬 포부를 가지고 지원한 학교에 합격하고, 내 삶의 지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성공의 모습이 명예, 돈이 아닌 다른 가치로 형 체화되기 시작했으며 다양한 문화와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해, 그리고 공동체의 힘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학교 생활의 하이라이트는 인도를 여행하고 삶에 직접 부딪히며 느끼고 배움을 몸소 했던 것이다.

다양한 문화의 친구들과 닮은 점, 다른 점을 매 초, 매 분, 매 시간 느끼며 다양성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고, 다양성이 중요시 여겨져야 하는 이유도 배웠다. 내가 보고 자라온 것들이 항상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 어떤 문화와 국가에서는 법이고 규정인 것이 다른 곳에선 불법일 수도, 혹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왼쪽: 기숙사 생활하며 내게 많은 즐거움과 공동체 생활,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해 가르쳐 준 친구들 몇몇 // 오른쪽: 한국에서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온 엄마와 큰 이모.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준 친구들과 생활한 2년. 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시각은 180도 바뀌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여전히 나에게 좋은 나침반이 되어주고 있는 친구들>

//Friends that taught me the important values in life, and the importance of communities. After meeting them, my life's purpose has transformed, and to date, each of them are guiding lights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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