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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루카 Dec 11. 2021

샐러맨더와 담뱃불


*90%가 픽션입니다

공인중개사와 함께 내가 살 집을 구경하러 다닐 때면 종종 모르는 사람이 활동하고 있는 집에 들어가 볼 때가 많다. 5년 전 예능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이던 오오기 히토시는 이를 두고 사생활 침해이자 일본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문화라며 거부감을 표시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이런 문화가 싱가포르에서는 낯설지가 있다. 적어도 내가 그 나라에서 살았던 1999년에는 그랬었다. 나와 어머니는 한인 교회의 지인이 추천해 준 공인중개사였던 미스터 싱(Mr. Singh)의 1980년대 벤츠 C클래스 모델을 타고서 아파트 이곳 저곳을 구경했었다.


우리는 바다와 배가 보이는 전망 좋은 집을 얻었고, 그 사이 나의 부모님은 미스터 싱과 친해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철저히 고객이었던 우리를 크리스마스 식사에 초대해 주기까지 했으니 보통 수준으로 친해진 것 아니었다. 부모님은 기념일을 잘 챙기지 않았기에 마침 크리스마스에 할 일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미스터 싱의 우정 표시에 감동하여 초대에 응하게 되었다. 우리는 선물을 잔뜩 사 들고 클락키(Clarke Quay)에 있는 그의 단독주택에 방문하였다.


나의 손에는 미스터 싱의 가족에게 건넬 선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중학생들이 푸는 수학 문제집도 들려 있었다. 과외 선생님이 내 준 숙제 때문에 가져 간 것이었다. 그런데 남들이 크리스마스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마당에 공부에 집중할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마침 미스터 싱의 아들 JD가 농구하자고 꼬드기는 바람에 나는 공부를 쉽게 포기하고 밖으로 나갔다. JD는 나보다 두 살 형이었고,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인사나 나누는 사이였다. 우리는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농구를 했다.


내 생에 처음으로 저체온증을 겪어 본 때가 바로 그 때였다. 분명 똑같이 젖은 JD는 멀쩡했는데, 나는 실내로 돌아와 몸을 말렸음데도 여전히 벌벌 떨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걸 본 미스터 싱은 뗄감을 들고 와 나를 화롯가로 안내했다. 동남아시아의 주택에 대체 왜 화로가 설치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내게 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했다. 나는 체온을 회복하며 불을 관찰했다.


그 날 따라 불은 유연하게 일렁이는 모습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와도 같다는 착각을 주었다. 곧 미스터 싱, JD, 나의 아버지도 화로 앞으로 다가와 함께 불을 관찰했다. 침묵을 깬 것은 JD의 휘파람 소리였다. 놀랍게도 그건 신호였고, 불 안에는 정말 생명체가 있었다. 샐러맨더가 휘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더니 입김으로 미스터 싱과 JD의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던 것이었다. 나는 입이 떡 벌어졌고, 미스터 싱과 JD는 그런 내 반응에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곧바로 질문했다. "JD는 미성년자인데 담배를 피나요? 그것도 아버지와 함께?" 더군다나 부자가 샐러맨더를 공유한다는 것은 한국으로 치면 부자가 재떨이를 공유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나의 아버지도 뜻밖의 상황에 당황한 눈치였다. 따라서 미스터 싱은 질문한 내가 아니라 아버지를 보고 대답했다. "딱히 JD가 담배를 피운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나이로 판단되기에 그냥 별 말 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자가 같이 필 때도 많죠."


게다가 일반 라이터보다 샐러맨더의 입김으로 불을 붙여야 담배맛이 좋다나 뭐라나? 불은 무엇으로 붙이든 결국 똑같은 산소로 인한 산화 현상이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미스터 싱의 주장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 요즘 구글을 찾아 봐도 샐러맨더의 불을 붙인 담배가 특별히 더 맛있다는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 미스터 싱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바로 믿음과 행복이었다. 그는 담배가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지만 아들과 정서적으로 이어 주는 매개체라는 점에 만족하고 있었고, (비록 유사과학에 근거하지만) 샐러맨더로 맛있는 담배를 필 수 있는 특권 덕분에 행복해 보였다.


미스터 싱의 가족은 가치관, 상식 면에서 우리와 다른 점이 매우 많았지만 그게 우정에 걸림돌로 작용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 쪽은 그 쪽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적응해 온 생활습관이 있었기에 서로 문제삼지 않는 게 관계 유지에 이로우리란 판단도 작용했던 듯 싶다. 상대의 특수성을 바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태도, 우리는 그것을 문화상대주의라고 부른다.


내가 남의 문화를 존중하는 게 마땅하다면, 남도 내 문화를 존중하는 게 마땅하다. 따라서 남이 내 문화에 거부감을 표현할 때는 당당하게 대응해도 된다. 모르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구경하는 우리 나라(및 싱가포르)의 부동산 문화에 대해 유식한 외국인이 비판했다고 해서 주눅들 필요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사생활에 대한 민감성이 떨어지고, 우리의 부동산 문화는 그러한 특수성, 사회 구성원들의 편리, 이해관계에 맞춰 굳어져 온 관례에 기반할 뿐이다. 그 점이 딱히 좋다거나 나쁘다고 평가받을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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