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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Jan 27. 2022

뮤지컬 '미드나잇'과 독재, 누가 악마인가

되돌리는 감상, 뮤지컬


때는 스탈린 독재정권의 냉전 시대다. 우먼은 아파트의 이웃이 비밀경찰인 엔카베데에게 끌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맨을 기다린다. 노크, 노크, 노크. 놀란 우먼이 문을 여니, 엔카베데 대신 남편이 서 있었다. 당의 간부로 일하는 맨은 실적을 올려 진급과 '프로텍션'이라는 자신들을 반역 의심에서 지켜줄 각하의 서명서를 받아 온 기쁜 날이다. 맨은 내일의 새해 첫날을 자축하고자 힘겹게 미제 LP와 보드카가 아닌 양주를 구해왔다. 이 불법 물건들에 놀란 우먼에게 각하도, 엔카베데도 모두들 아닌 척 암시장에서 비밀 유통을 한다고 안심시킨다. 이내 둘은 누가 엿듣지 못하게 소리를 줄인 미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미제 술을 마신다. 가슴 졸이며 다니는 바깥에서 벗어난 안식처다.


노크, 노크, 노크. 그날이 찾아왔어.


누군가 찾아왔다. 자신을 엔카베데라 칭하는 이 비지터는 맨과 우먼의 집을 제 집처럼 휘젓고 다닌다. 그리곤 둘의 비밀을 하나씩 흘린다. 방금까지 낙원이었던 안식처는 잡음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끌려가서 숙청당한 옆집의 착한 변호사와 몇몇 이웃들은 맨의 소행이었다. 그들을 팔아넘김으로 스탈린이 인정하는 프로텍션을 받았다는 말에 우먼은 분노한다. 마찬가지로 맨은 비밀경찰에게 끌려가 옆집의 변호사 아내를 반동자로 몰아넣은 우먼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배신감은 이내 서로가 서로를 팔아넘기지 않았나 하는 의심으로 번진다. 여기서 우먼의 과거도 들통난다. 올곧다고 생각해 맨이 존경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당의 반역자를 처단하는 냉혈한 장군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과거도 숨긴 우먼이 미웠을 수도 있지만, 둘은 낱낱이 까발려진 자신들에 대해서 아는 엔카베데인 비지터를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비지터를 죽인다. 하지만 그는 살아났다. 생각해보니 그가 왔을 때부터 시간은 멈춰있었다. 그는 엔카베데인 척하는 악마였다. 매일 채워야 하는 반동분자 할당량이 있는 엔카베데처럼, 악마도 마찬가지로 영혼의 수를 채워야 하는 할당령이 있었다. 이 비지터에게 우먼과 맨 둘 중 한 희생자는 할당량으로 쓰일 영혼이었다. 맨은 자신이 지키려 했고 믿어왔던 우먼을 살리기 위해 자처해서 창문으로 뛰어내린다. 그렇게 악마는 속임수로 맨을 데려가며 미드나잇 뮤지컬은 끝난다.



러시아 혁명을 통해 자유를 부르짖던 사람들은 스탈린의 독재정권이 오고 지하감옥으로 끌려갔으며, 피의 숙청을 당했다. 독재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유와 평등으로 인한 혁명은 주도권자 중 하나의 독식으로 무너진다. 독재에는 무력이 함께한다. 사람들의 반발심과 불만은 무력 앞에서 굴복당하며, 주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을 본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고자 하는 본능에 유순해진다. 독재는 배신을 이용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이용한다.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을 새가 듣듯이, 사람들의 생존본능과 인정 받고자 하는 욕구를 이용해 잡음을 제거한다. 독재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이용하기란 쉽다. 독재가 민주주의를 잠식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때로는 악마죠.

누구나 마음속에는 악마를 가지고 있다. 비지터는 자신을 악마라고 무서워하면서도 욕해대는 맨과 우먼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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