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리는 감상, 뮤지컬
해바라기의 꽃말은 일방적인 사랑, 당신을 바라봅니다, 사랑의 열정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태양신 아폴론을 짝사랑하던 숲의 요정이 변한 해바라기는 베르테르의 짝사랑과 뒤늦게 사랑임을 알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롯데의 사랑이기도하다.
베르테르가 죽을 때 비쳤던 두 해바라기는 각각 롯데와 베르테르였다. 극 내내 바라만 보던 베르테르는 아스러진 꽃이 되었고, 이젠 반대로 롯데라는 꽃이 바라보고 있었다.
죽음은 또 다른 여정이라는 말처럼 베르테르의 마지막은 죽음이지 여행이었다. 극에서 롯데와 알베르토 부부의 자택 사랑방에 걸려있던 출항하는 범선 그림이 내내 눈에 밟혔던 이유는 베르테르의 결말을 담고 있어서로 해석된다. 해질녘 출항을 위해 돛 내린 범선 그림은 죽음으로 향하는 긴 여정을 표현하듯 담겨있다. 소설 ‘나니아 연대기’에서도 아슬란의 나라로 떠나는 이들은 출항을 했고, 죽음의 여정을 의미했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서 임무를 완수한 주요 인물들이 향하는 불사의 땅 '발리노르'로의 여정도 영원을 위한 마지막 항해인 것처럼.
"오, 황홀경이여! 오, 타올라 사라지는 세상의 생명들아 내 말에 귀 기울여라. 가령 말하자면 내가 죽을지라도, 죽어 사라질지라도, 오로지 그대는 나와 단 둘이만 함께 있어다오."
베르테르의 사랑과 죽음은 상관관계에 있다. 베르테르가 꿈꾸었던 롯데와의 사랑은 이루지 못한 짝사랑으로 결말이 보이지 않는 영원함을 담는다. 이루어질 수 없기에 여전히, 그리고 영원히 당신만을 바라는 그리움이다. 마찬가지로 죽음은 종교와 예술에서 영원한 내세를 표현하는 단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스틱스 강을 건너 도착하는 죽은 사람들의 세상처럼, 또는 저승의 신인 오시리스가 다스리고 아누비스가 맞이하는 이집트 신화 속의 저승과 같이, 죽음은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또 다른 관문으로 문학에서 이야기 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의 끝은 죽음에서 자유로워지고 영원해짐을 이야기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인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 속에서 사랑의 영원을 찾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문학적으로 찬미해오던 클리셰였다. 어쩌면 짝사랑도 죽음도 영원함을 담은 베르테르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당신을 바랍니다."
알베르토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베르테르가 빌린 권총 한 자루는 속죄와 알베르토 부부를 떠나는 작별 여행인 것을. 처음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온 베르테르가 자택을 방문해 권총을 꺼내 자살 소동을 일으킨 것을 잊었을 리가 없다. 사라질 베르테르에 안도하며 우정의 의미라는 명목 하에 쥐어 줬을 것이다.
그리고 롯데는 알고 있었을까. 알베르토가 선물했던 금단의 꽃이 베르테르와 자신의 사랑 같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