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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Apr 19. 2022

삼재

이제 삼재는 끝났다.

"우리가 올해는 나가는 삼재래."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아니면서도 삼재, 아홉수라는 말은 미신이라며 믿지 않았다. 한 해에 띠 하나가 아니라 여러 띠가 삼재나 아홉수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그 말은 대한민국 전 국민의 절반은 힘들다는 거라 터무니없다 생각했다. 나가는 삼재는 뭔지 모르는 내게, 친구는 삼재가 끝나가는 거라 좋은 거라고 했다. 삼재에 대한 믿음이 없던 나는 별생각 없이 웃고 넘겼다.


   연말에 코로나 밀접 접촉으로 아이들만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어느 날 동네 엄마가 아이들 격리에 들어간 걸 알아채고는 우스갯소리로 "큰 아이가 올해 삼재 아니야?" 했다. 그 말에 다시 떠오른 '삼재', 찾아보니 1년도 아니고 무려 3년간 안 좋은 일이 생긴다 하여서 삼자래 부른다고 한다. 첫 시작하는 삼재는 들어가는 삼재라 들 삼재, 그다음은 묵 삼재, 마지막 해는 나가는 삼재로, 날 삼재라 한다.


   천천히 지난 3년간 내게 어떤 일들이 스치고 지나가는지 생각해봤다. 들 삼재가 시작될 무렵에 아이들은 아팠다. 두 아이 모두 39도 넘는 고열로 열흘 정도 아팠다. 큰 아이는 고열 5일 후에 폐렴에 독감 양성 판정이 나왔다. 꼬박 열흘 연속으로 아이는 39도 고열을 오가며 아파다. 큰 아이와 함께 독감과 폐렴에 걸린 둘째 아이는 독감 이후 어린이집에 등원한 첫날, 다시 고열과 복통으로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뒤늦게야 아데노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걸 알았다. 병원에서는 두 아이가 가 각각 다른 바이러스(독감과 아데노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다가 서로 주고받은 거 같다고 해다. 큰 아이를 시작으로 작은 아이의 바이러스가 끝나기까지 보름이 걸렸다. 보름 동안 밤새 열나 잠 못 이루는 아이들을 돌보며 출퇴근했다. 그때만 해도 그 해 겨울이 가장 지독하게 힘든 겨울인 줄 알았다.


   그다음 해 새해 이튿날 아침, 아이들 방에 앉아 있던 나는 일어나는 순간 몇 초간 정신을 잃었다. 몇 초 후 나는 소리 지르며 이마를 바닥에 찧고 있었다. 달려 나온 가족들은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홈 카메라로 확인한 나의 모습은 내 기억에 존재하지 않았다. 일어서다 손을 뻗으며 바닥으로 쓰러지면서 다리는 주저앉은 채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무거운 머리를 가눌 힘이 없어서 머리를 계속 바닥에 박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기립성 저혈압 증상이 의심되지만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고 했다.


   그날, 나는 앞니 하나를 잃었고 또 다른 앞니는 죽어버렸다. 깨져버린 앞니는 임플란트 시술을 했고, 그 옆에 있던 다른 치아는 흔들리다가 간신히 자리에 붙어있지만 제기능을 못해 색조차 까맣게 죽었다. 아팠다. 지독하게 아팠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몸과 마음 둘 다 아팠다. 처음엔 몸이 아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마음이 더 아프기 시작했다. 어느 게 더 아픈 건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내가 쓰러졌던 아이 방을 볼 때마다, 양치를 할 때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왜 힘없이 쓰러졌던 걸까? 왜 기억을 잃었던 걸까? 왜 자세를 바꾸지 못했을까? 한없이 무능력했던 그날 나에 대한 자책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앞니 두 개가 문제가 되면서 치과 치료는 끝이 보이지 않았다. 치과에 가서 앉아있을 때마다 다쳐서 처음 치과를 찾았던 기억이 떠올라 계속 눈물 흘렸다. 잊은 줄 알았을 때도 치과에 가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날 사고 이후로 내 모든 악몽은 이 빠지는 거였다. 한없이 많은 이가 수 백개, 아니 수천 개가 우르르 다 빠지면서 입 안에서 계속 빠진 이를 빼내다가 숨 가눌 수 없을 만큼 힘들면 그제야 잠에서 깨곤 한다.


   나가는 삼재라 좋다던 그다음 해에도 지독하게 아픈 순간의 연속이었다. 코로나로 육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순간들이 지난 몇 년간 나를 집어삼켰다. 괜찮아질 무렵이면 또 다른 어딘 가에 멍이 들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내가 PTSD,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인 걸 알게 되었다. 망가져버린 치아와 코로나까지 모두 PTSD로 자리 잡았다. 얼마나 시간이 더 흘러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내게서 사라지게 될지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한다.


   지난 3년간 날 지독하게도 힘들게 했던 순간들이 정말 '삼재'때문이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삼재가 다 끝난 지금은 차라리 그 모든 게 삼재라는 이름 하에 벌어진 거였기를 바란다. 운명을 믿지 않는 내게, 정확히는 불운을 믿지 않는 내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일어난 거였더라면 지난 나의 아픔에 자그마한 위로가 될 것이다. 이제 삼재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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