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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희 Mar 21. 2022

아침의 손길

등원 길 구세주

   누구에게나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가족도, 친구도,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아이를 키우기란 상상 그 이상으로 더 힘들기도 하다. 아이를 낳기 직전에 아무 연고도 없는 수원으로 이사를 왔다. 수원에 살면서도 직장은 다른 도시들이어서 처음 몇 년간은 수원에 아는 이 하나 없어서 육아로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가슴에는 열 달 정도 된 튼실하게 잘 커서 아기띠에서 곧 탈출할 것 같은 아기를, 등 뒤에는 출근해야 하는 나의 가방이, 한 손에는 두 아이들의 가방이, 그리고 또 다른 손에는 내 손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큰 아이 손이 있었다. 늦어도 9시 30분까지는 어린이집에 도착해야 한다는데, 시간은 어느새 9시 28분..... 달려가도 아슬아슬한데 자꾸만 뒤로 줄행랑치는 아이와 다시 잡으려는 나의 끝없는 실랑이는 3월의 꽃샘추위도 잊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등원 길에 같은 반 아이와 엄마를 만났다. 그 아이 엄마와는 얼굴은 살짝 알면서도 평소에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서먹한 사이였다. 그런데 그 엄마가 갑자기 자신의 아이에게 내 딸아이 손잡고 같이 어린이집에 들어가라며 떠밀어주었다. 선생님이 달려 나와도 보통은 꿈쩍도 안 하던 아이가 웃으면서 친구 손을 잡고 원에 그대로 들어가는 진기한 경험을 난생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다음 날에는 그 엄마와 아이들은 나와 울 아이가 어린이집에 도착할 때까지 어린이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보자 우리 아이 손을 잡고는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집 문 앞까지 갔다. 아이는 친구를 만나서 반가워하며 정신없는 사이에 자기도 모르게 엄마랑 떨어져서 어린이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아이가 혹시라도 다시 뛰어나오거나  울까 봐 조마조마해서 살짝 문틈으로 쳐다보려는 내게 손짓을 하며 아이가 우는지 안 우는지 대신 살펴봐주기까지 했다.


   내가 아이 등원시키는 게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는 그 엄마는 여러 번 내가 아이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날 도와주었다. 나보다 육아 경험이 많은 선배 맘의 직감으로 내 마음을 알아챘던 걸까? 아니면 어린 둘째까지 안고 발 동동거리는 내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던 걸까? 그때 그녀의 도움은 수원이라는 타지에서 살아가던 내게 큰 힘이 되었다. 멀리 살던 친정언니보다도 등원 길에 그녀를 마주치면 더 반갑기까지 했다.


   이제는 어린이집 등원 길에 버티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그때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본다. 엄마, 아빠의 말에는 완강하게 버티던 아이조차도 낯선 이가 어린이집 가자고 한마디 건네주면 갑자기 씩씩하게 어린이집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혹은 울음을 뚝 그치기도 한다. 그러면 그 아이의 부모는 그 순간을 기회삼아 아이를 얼른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면서 내게 고맙다고 인사하기도 한다. 내가 받았던 도움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금은 숨 돌릴 틈이 생기길 바라는 마음에 수줍게 살짝 손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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