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배와 나의 번뇌
부모님을 향한 나의 응어리진 마음
오늘 108배를 하는 동안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여러 생각들 중에 엄마가 떠올랐는데, 엄마를 생각하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잘 걷지도 못하고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엄마가 떠올랐다.
얼마나 힘들게 30여 년을 살고 계신 걸까. 엄마는 처음부터 걸음을 잘 못걷는게 아니었다. 제때 치료하지 않아 그렇게 되신 것이다.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잘 걷지도 못하고..
엄마가 걸음만 잘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 외에 다른 소원은 없다.
엄마는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발뒤꿈치로만 걸을 수 있다. 발로 가는 신경들이 죽어서 걸음을 걷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신경이 죽는다는 걸 다른 사람들은 먼지 잘 모를 것이다. 신경이 죽는다는 건, 몸이 있으나 그 몸이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30여 년을 발꿈치로 힘겹게 걷고 있는 엄마를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저 걸음으로 농사일도 하시고 시장도 보고, 요리도 하고, 김장도 하는 등 여러 집안일을 하신다. 나는 엄마가 몸도 불편하신데 힘든 일을 안 하고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부모님 집을 갈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난다. 엄마에 대한 아려한 마음도 있지만, 어릴 적 차별받고 자란 내 안의 상처들이 남아있어 부모님에 대한 내 마음은 양가적이다.
우리 집은 딸 4명에 아들이 1명 있다. 나는 셋째 딸이다. 내 밑으로 이란성쌍둥이가 있고, 쌍둥이 중 한 명이 아들이다. 엄마아빠는 늦게 낳은 아들을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우리 집의 중심은 남동생 중심이었다. 엄마아빠에게서 셋째인 나는 심부름시키기 좋은 자녀였다. 부모님은 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니 심부름도 시키고 집안일을 시켰다. 중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늘 엄마아빠의 심부름을 도맡았다.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따로 가정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아빠네 집의 소소한 일들을 처리해주고 있다.
아버지가 퇴직하신 이후부터는 아버지는 내게 종종 여행을 가자고 당당히 요구하신다. 엄마아빠의 심부름 처리뿐만 아니라 일 년에 몇 번 부모님과 바람 쐬러 야외를 다녀온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남편이 있어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버지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느껴졌다.
부모님과의 외출은 항상 남편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신혼초기에는 남편도 많이 협조해 주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시댁 부모님은 모시지 않고 처가 부모님만 모시고 나가는 야외 나들이에 남편의 심기가 나빠졌다.
이런 내 상황이 난처함을 7-8년 전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우리 부모님만 모시고 자주 야외 나들이를 가서 남편이 안 좋아하니 앞으로 나에게 여행을 가자느니, 야외로 바람 쐬러 나가자는 말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아버지는 나를 나무라셨다. '네가 대체 어떻게 말했길래 남편하나 설득을 못하나. 요즘 시대는 다 처가 부모님 모시고 놀러 가는 시대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도 황당했다. 어릴 때 자녀 5명 중 유독 내게는 한 번도 새 교복을 사준 적 없었고, 유독 나를 키울 때만 알뜰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의 모든 물건이 헌 것이였고, 내 생일날 케이크나 통닭도 잘 없었다. 나는 늘 내 생일이라고 투쟁 섞인 말이라도 해야 그나마 통닭이라도 받아먹을 수 있었다. (참고로 나는 80년대생이다. 그 시절 새 교복 한번 안 입고 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은 전교에 나 한 명밖에 없을 것이다)
결혼할 때 경제적으로 크게 지원해 주셔서 처가네로 기울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입장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딸이 최고라며, 딸이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 가야 하는 시대'라고 당당히 말하는 부모님을 내가 어떻게 받아야 들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아버지는 나에게 여행을 요구하는 자신이 당연하다는 태도에 변함이 없다. 7-8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며칠 전에도 앞으로 1년에 3-4번은 야외로 나가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자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점점 내속에서 화가 쌓인다. 그리고 이제 나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버지께 나의 불편한 마음을 짜증으로 표출한다.
이제 부모님과의 만남은 내 속에 움츠리고 있는 상처들의 폭발이다. 내 속에 숨기고 있었던 응어리 진 마음들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내 마음을 알아주거나 내 상처에 대해서 일체 아는 척을 하지 않는 부모님을 향해.
그래서 최근 들어 나가는 가족 나들이, 가족 여행은 결국 끝이 좋지 않게 끝난다.
나는 엄마에 대한 아련한 마음, 어릴 적 차별받아 상처받은 내 마음, 그리고 아버지의 뻔뻔함 때문에 늘 감정이 요동친다.
나는 부모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