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온전한 수용
오늘은 오후 내내 비가 시원하게 내렸다. 집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언제나 좋다. 퇴근 시간에는 비와서 도로가 막히고, 버스에서 내려 걷는 동안 바지 자락이 모두 젖었지만 지금은 에어컨의 품속에서 그 불쾌를 모두 잊었다. 집에 가면 쾌적하게 빗소리를 듣게 될 것을 알지만, 비가 쏟아지는 동안은 비를 사랑하기 어렵다. 비는 아무 의도 없이 내리는 건데, 나는 비를 미워도 했다가 사랑도 했다가 변덕을 부린다.
내가 하는 일들이 어쩌면 내리는 비처럼 쏟아지는데 어떤 날은 사랑스러웠다가, 어떤 날은 지긋지긋하다.
나는 내 감정에게 완벽한 일관성을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비를 맞는 동안은 비를 사랑할 수 없고, 그런 일관되지 못한 나를 못나고 무능하고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으려고 한다. 어떤 날은 지붕 없는 곳에서 비를 맞이해야 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유독 힘들고 지치는 오늘 같은 날은 일에서 맞이하는 불쾌를 견디며, 지붕을 찾아 계속 걸어가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지금은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은 지붕이 없어서 비를 맞고 있다. 그러나 비는 때가 되면 멈출테고, 나는 걷고 있으므로 언젠가 지붕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냥 어쩔 수 없는 날도 있는 것이다.
이런 순간에 나를 지켜주는 말은 아주 모호하기 짝이 없다.
'그냥' 이라고 말해버리는 가벼움.
'때가 되면'이라는 기다림과 버팀.
어떤 때는 무심하고 모호한 말들이 가장 지혜로운 말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