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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인 Nov 25. 2023

일기와 에세이 사이의 서성거림

늘 어려웠다.

내가 쓴 글이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구별하는 일은.


처음 글쓰기 수업을 들을 때는 적당히 속내를 드러내는 정도의 일기를 써냈다. 네다섯명의 작은 모임이지만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을 때는 밖에 있는 소재를 끌어다 썼다. 그러나 나는 우회도로를 몇 바퀴 돌아 내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글감이 주어지지 않은 글쓰기를 계속해나가는 일은 결국 내 속을 헤매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면 또 문제가 생겼다.

누가 내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할까라는 생각에 빠져 한참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저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다 내보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일기는 삼천포로 빠져도 되고, 상황과 인물을 세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된다. 감정에 푹 빠져들어 써도 되고, 이말했다 저 말했다 해도 나는 문맥을 이해한다. 일기를 쓸 때는 주로 답답하거나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기에 급급했다. 새벽 감성으로 쓴 글을 다음 날 보면 낯부끄러워도 일기장을 덮으면 그만이다. 나 혼자 볼 글이니 말이다.




“선생님,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는 뭘까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선생님께 물었다.


“자, 여러분이 쓴 글을 어딘가에 발표한다고 생각해 볼까요. 혼자 보는 글이 아니라 내 글을 읽는 독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쓰는 글은 꽤 차이가 있죠.”


나는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상상의 독자가 글을 쓰는데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지 못했다. 가까운 친구라도 내 글을 누군가 읽는다고 생각하면 창피하기만 했다.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가 공개와 비공개라면 블로그에 올린 일기는 에세이인가.

나는 지금껏 어떤 글을 에세이라고 느꼈을까. 유명한 작가가 쓴 글은 평범한 일상을 써도 에세이처럼 느껴졌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쓰는 일기는 어떨까.

한참 나와 다른 아이의 기질이 버겁게 느껴져 쓴 글이 있었다. 쓰고 나니 개운하기도 했고, 글 속의 엄마인 내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 글은 나의 반성문으로 끝났다. 에피소드는 나만 아는 이야기로 독자가 막힘없이 읽기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어 있었다.


내가 느낀 감정은 독자가 공감하기에는 추상적이거나 감정적이었다. 선생님은 나의 글을 읽고 모성애와 모녀 관계에 관한 책을 몇 권 소개해주셨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때 썼던 글이 에세이로 변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거나, 하루빨리 퇴사하고 싶다거나 남편이 바람을 피워 기가 막히다는 내용의 다른 이들이 쓴 글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면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충분히 공감이 되는데도 나에게 에세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글이 많았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속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들을 읽던 어느 날이었다.

〈유쾌한 오해〉라는 글을 읽었다. 때는 여름이요 장소는 지하철 안이었다. 지하철 속 두 사람의 외모부터 상황을 그림 그리듯 얼마나 세세하게 적었던지 그 풍경이 머릿속에 훤히 그려졌다. 그녀의 옆자리에 뚱뚱한 중년 남자가 앉았고, 하품을 크게 하질 않나 치맛자락을 깔고 앉질 않나 그 남자에게 불쾌감을 느끼던 중이었다.


화려한 모자를 든 젊은 여자를 바라보는데 그 남자가 엉거주춤 일어나며 여자에게 손짓을 했다. 나이 든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생각하는 중에 그 여자가 만삭의 몸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에세이의 마지막 두 줄을 보고 피식 웃었다. 세상 사람들이 나보다는 착해 보이는 그런 날은 살 맛이 난다고.


글쓴이의 오해와 시선이 나에게도 물었다. 혹시 너도 그런 적이 있지 않느냐고. ‘우리’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도 글쓴이의 시선과 감정이 나에게 와닿았다.


그 글을 읽고 나는 수업 중에 써놓은 메모가 떠올랐다.

나와 타인 사이에 연결선을 그어 놓았었다. 별표시와 함께 타인과의 소통이라고 써놓았다. 박완서 선생님의 에세이는 ‘나’에게서 시작해 어느새 ‘우리’로 저만치 가 있었다. 철저히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적었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무언가로 확장되어 공감을 자아냈다.


에피소드에서 끝나지 않았다. 글 속에서 글쓴이 자신의 모습은 타인이 된 듯했다. 자신을 멀리서 관찰하고 깨달았던 『크리스마스 캐럴』 속 스크루지 영감처럼. 그제야 나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에세이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로 시작해 당신에게 닿을 수 있는.      


에세이를 쓰기에 나는 세월에만 기대지 않고 부지런히 발효되어야 함을 느낀다. 더 많이 주위를 살피고, 부딪히고, 생각하고. 그러나 산책하듯 여유를 가지고.


기술을 부려 좋은 에세이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고유한 시선이 고스란히 글에 담겨야 에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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