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를 찾아가는 길, <절해고도>

김미영 감독 <절해고도> 리뷰

by Dowon

“어떻게 사람이 자기가 살아온 세상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겠어요. 새로운 세계가 오면 본인은 낡은 사람이 돼버리는 건데.”

어쩐지 세상을 바꾸지 못한 사람의 무력감이 느껴진다. 그 세상은 윤철 자신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윤철은 10년 전 청년 조각가상을 받을 정도로 촉망받았으나 현재는 의뢰받으면 뭐든 만드는 업자이다. 윤철은 오랫동안 길을 잃었다. 미술가의 꿈이 좌절된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길을 잃은 윤철은 중요한 순간마다 도망치는 삶을 살아왔다. 도망치는 사람에게 외로움은 필연적이다. “무의미. 다 무의미. / 넌 평생 외로워. / 인간은 다 외로워.” 그가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의 가사이다. 미술가가 되지 못하면 스님이나 신부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윤철은 셋 중 어떤 것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윤철은 여전히 길을 잃거나 도망치는 삶을 산다.

그래서일까. 좌절의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절에 들어간 딸 지나를 보며 윤철은 “도둑맞은 기분”을 느낀다. 나를 닮았으나 나와는 달랐다. 자신이 가지 못한 길을 가는 지나가 윤철은 걱정스럽다. 지나를 믿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믿지 못한다. 믿을 용기가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에 가깝다. 나도 내 세상을 바꾸지 못했는데, 나를 닮은 저 작은 아이가 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럼에도 윤철은 믿기 위해 뒤에서 묵묵히 지나를 따라간다. 그 덕에 지나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그 덕에 윤철도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그들이 길을 찾아가는 여정을 영화는 많은 여백을 두고 보여준다. 틱틱대고 날 서 있던 지나는 어느새 부드럽고 평온한 도맹(지나의 법명)이 되었다. 돈만 되는 일이면 어디든 떠났던 윤철은 어느새 절에 눌러앉아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리고 또 어느새 덥수룩하게 자랐던 머리를 짧게 깎고 국숫집을 차려 자리 잡는다. 영화는 많은 시간을 뛰어넘고 있으나 어쩐지 비약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이렇게 보여지는 것일까.

시간이 흐르며 무뎌졌던 감정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오곤 한다. 윤철이 손에 쥐여 준 열매에 터져 나오는 눈물, 잘못을 했던 친구에게 삐져나오는 원망, 울컥하는 마음에 언덕을 내달리던 순간. 평온에 접어든 것 같던 도맹에게도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흔이 있으며, 그럼에도 평온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 아직 우리는 길 위에 있다.

“인생에서 원해서 얻게 된 것이 뭐가 있었을까. 원해서 얻으면 기쁨이 더 컸던가. 지금의 나도 내가 되려고 해서 된 것은 아니었다.”

윤철의 깨달음은 어느 오후 법당에서의 옅은 잠에서 깨며 찾아온다. 천방이의 부드럽고 따뜻한 핥음처럼 서서히. 그도 잠시, 평화로운 나날 속에서 갑작스러운 멧돼지의 출현은 평정을 깨트린다. 힘들게 쌓아 온 것들이 한순간 무너질 수 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이처럼 삶엔 언제나 예기치 못한 위험이 도사리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은 가득하며, 회복은 어렵다. 그럼에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평화는 찾아오기에, 함께 했던 순간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지금을 기억하기로 한다.

도맹은 스님이 되기 위해 금우 스님을 따라 떠나기로 결정한다. 이제 윤철은 지나를 믿는다. 지나는 지나의 길을 정진하고, 윤철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국숫집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윤철의 뒷모습은, 그들의 삶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리고 나 역시 생각했다. 그들이 멀리 있어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기억하며 살아가듯, 나도 삶의 순간순간 이 영화를 떠올리며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을 느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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